씨네21 1995-2008 영화 베스트 10

Filme 2008. 4. 22. 19:31 posted by srv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렉스님의 포스팅과 D게시판의 여러 분들의 글에 자극을 받아 저도 한번 목록을 만들어 봤습니다.

1995년은 제가 한국을 떠난 해인데 그동안 아무래도 한국에 있었을 때처럼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고 특히 아시아권 영화는 접하기가 쉽지 않아 - 시네마테크를 애용할만큼의 정성이 부족했죠 - 비교적 대중적인 서양 영화들을 주로 많이 접하다 보니 꽤나 편협한 리스트가 만들어지는군요. 하지만 틈틈히 씨네21을 통해 한국 영화에 대한 소식을 접했던 것은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집에 씨네21 창간 몇주년 CD-Rom이 아직 있는데 나중에 한번 꺼내봐야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리스트를 보면서 정리하다보니 제가 놓친 영화들이 무척 많아 보여 앞으로 심심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걸! 할만한 영화가 너무 많아서 사실 좀 창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시아권 영화들은 여전히 볼 길이 막막해서 방법을 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매년 한편씩 고르면 제일 좋겠지만 그럴 능력이 안되어 오래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열 편의 영화를 골라봤습니다. 당연하지만 결국은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영화들로 채워지는군요. (간단한 코멘트를 추가했습니다.)

1995 - Se7en
심상치 않은 오프닝에서부터 거의 끝까지 계속 내리는 비. 등장인물들은 모두 외로웠고, 이국땅에 혼자 있는 저도 외로웠습니다. 브렛 핏을 배우로 생각하기 시작한 영화이고 데이빗 핀처라는 이름을 확실히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븐-파이트 클럽-조디악은 사실 모두 이 목록에 넣고 싶었던 영화들입니다.

1996 - Fargo
혼자 여행을 떠나 어느 도시의 작은 극장에서 봤습니다. 하얀 눈 위에 뿌려진 붉은 피. 그리고 묻더군요.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대답이 영화 속에 너무 분명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게는 많은 여운을 남겨줬습니다.

1999 - Eyes Wide Shut
이 영화의 캐스팅 단계부터 흥분하며 지켜본 영화입니다. 당시 큐브릭과 히치콕에 푹 빠져있던 때라 더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미완성 유작인데다 비교적 소품이지만 거장의 손길은 언제나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 영화입니다. 니콜 키드먼이 가장 아름답게 나온 영화이기도 합니다.

1999 - The Matrix
세기말이라는 분위기와 잘 어울렸던, 거기에 수많은 (개똥)철학을 첨가시켜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데 성공한 오락 영화이죠. 하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좋아해서 몇 번을 봤는지 모릅니다. 일종의 전환점 같았던 영화입니다.

1999 - Magnolia
사람끼리의 인연과 관계 그리고 죄와 벌과 용서에 대해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영화는 만나기 쉽지 않죠. 제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고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랑 비슷한 나이의 사람이 만든 것이라뇨. 신은 정말 불공평합니다.

1999 - 박하사탕
전 아직 이 영화보다 나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영화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봐도 이 영화가 말하는 한국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이창동 감독 같은 이야기꾼이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한국에서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제게는 행운입니다.

2000 - 화양연화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제 때 못보고 거의 대부분을 독일에 와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도 제 때 만나지 못하고 극장에서 내려진 뒤 시네마 테크에서 볼 수 있었죠. 사랑이란 덧없는 것이기만 할까요. 꼭 그렇기만 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매우 느슨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놀랍도록 인텐시브합니다.

2002 - Cidade de Deus (시티 오브 갓)
이 영화는 충격충격충격이었습니다. 형식도 내용도 그리고 마지막 여운도 모두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실화라뇨! 세상은 너무도 험하고 잔인합니다.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말이죠.

2003 - 살인의 추억
훌륭한 희극은 언제나 슬픈 법이죠. 우리의 80년대는 그만큼 말도 안되게 웃긴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그래서 화가 날 정도로 슬프기도 했습니다. 훌륭한 연기와 섬세한 디렉팅이 만들어 낸 우리 영화의 수작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정서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2004 - Million Dollar Baby
동림선생은 이제 역작만 만들기로 작정하신 모양입니다. 이분은 타석에만 들어서면 장외 홈런을 날리는 타자 같습니다. 이분의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력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군요. 미스틱 리버-밀리언 달러 베이비-아버지들의 깃발/이오지마에서의 편지 모두 걸작들입니다. 이분이 좀 더 오래 사시길 바랄 뿐입니다.

아쉽게도 후보에만 오른 영화로는 Twelve Monkeys(1995), Usual Suspect(1995), Trainspotting(1996), Lock, Stock and...(1998), Lola rennt(1998), Fight Club(1999), The Sixth Sense(1999), Snatch(2000), 와호장룡(2000), High Fidelity(2000), Billy Elliot(2000), Amelie...(2001), Kill Bill(2003/2004), 올드보이 (2003), Eternal Sunshine of...(2004), King Kong(2005), Das Leben der Anderen(2006), There Will Be Blood(2007) 등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