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nt Eastwood 인터뷰 - Spiegel Online

Filme 2009. 2. 26. 21:34 posted by srv
비록 발번역이지만 슈피겔 온라인에 올라온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인터뷰를 올려봅니다.

어색한 표현과 문장들이지만 눈감아 주시길..

동림 선생의 삶과 영화에 대한 자세가 무척이나 인상적이군요.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들과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너무 민망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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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피겔: 이스트우드씨, 올해의 오스카 후보에 당신의 새 작품 '그랜 토리노'의 주연으로 노미네이트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하셨나요? 당신은 이미 네번의 최우수 감독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하지만 최우수 남자배우상은 아직 없으신데요.

이스트우드: 아뇨. 그런 오만함은 제게 낯선 것입니다. 전 어떤 의미가 있는 영화들을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각각의 영화는 많은 창의력 있는 사람들의 공동 작품이죠. 그중 단 한 사람만을 집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전 평론가들이 제 작업에 대해 뭐라 이야기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단계는 벗어났습니다.

슈피겔: "그랜 토리노"는 금융 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예전에는 영광스러웠으나 지금은 쇠락하기 직전의 미국 자동차 산업이 위치한 미쉬건 같은 지역의 어려운 현실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사회 비판적인 영화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군요.

이스트우드: 이 영화에서 현재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여러 분야의 문제를 반영하게 된 것은 사실 우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연이 제가 이 작품을 꼭 만드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래 시나리오의 배경은 미네아폴리스였습니다. 하지만 전 이 이야기의 장소를 죽어가는 자동차 산업으로 심각하게 어려워진 도시인 디트로이트로 옮기는 것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수십년 전부터 사회적인 이슈였고 영화의 내용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경제는 불황을 겪고 있고, 실업률는 매우 높으며, 갱들은 해악을 끼치고 있죠. 범죄와 폭력은 일상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씁쓸한 참전군인 출신이자 50년 이상 포드사의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월트 코왈스키가 살고 있는 것이죠.

슈피겔: 당신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군요.

이스트우드: 뭐, 코왈스키는 구식으로 뭉쳐진 미국의 애국자입니다. 그는 힘없이 자신 주위의 것들이 변해가는 것을, 그러니까 이웃집들이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민자들로 채워져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죠. 그리고 코왈스키는 변화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미워하는 새 이웃들로 인해 그는 생각을 바꾸기 시작하죠. 이런 이야기는 영화 제작자로서 제 취향에 딱 맞는 것입니다.

슈피겔: 당신은 사회 앞에 거울 하나를 세워놓고 "여길 봐라, 이것이 우리가 무시하면 안되는 진정한 미국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요?

이스트우드: 그것이 제가 도달하고자 하는 효과입니다. 전 순수한 오락만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제 나이에서 저는 진심에서 우러나와 이야기하는 프로젝트들만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내 영화를 위한 투자자를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헐리웃에서는 많은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 비판적인 배경의 영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78살의 나이에도 제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스튜디오 사장들의 문지방을 뻔질나게 드나들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습니다. 저는 관객들에게 생각할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라도 제 요구를 줄일 생각은 없습니다.

슈피겔: "그랜 토리노"가 관객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스트우드: 사람은 배우는 데에는 나이가 상관없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월트 코왈스키가 자신의 선입견을 버리고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인종차별적인 사고는 천천히 호감과 이해로 발전합니다.

슈피겔: 코왈스키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경험이 있으며 전선에서 다른 이를 죽여야 했던 것으로 괴로워합니다. 당신은 경미한 부상만 입으며 살아났던 비행기 추락 사고 덕분에 젊은 군인임에도 전쟁터에 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전쟁에 참가해 어쩌면 스스로 다른 이를 죽여야만 했다면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 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스트우드: 그럼요, 그런 질문은 제 스스로 한번만 던졌던 것이 아닙니다. "그랜 토리노"를 촬영하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계속 했더랬습니다. 그 누구도 어떻게 되었을 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월트 코왈스키와 다른 참전 군인들처럼 전쟁에서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면, 제 삶이 그때문에 오랫동안 매우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본 참전 군인 출신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 또한 똑같은 죄책감으로 오랜 시간동안 힘들었기 때문에 코왈스키와 자신을 동일시 시킬 수 있었다고 썼습니다. 전 누군가가 다른 인간의 삶을 소거했을 때 얼마나 무거운 짐이 그 영혼을 짓누를 수 있을 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 제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매우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슈피겔: 그리고 젊은이들의 폭력 또한 이 영화의 주제중 하나입니다. 여러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갱들이 각각의 미국의 대도시에서 격렬히 싸우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놀라운 결과중 하나가 수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의 감옥에 있다는 것이죠.

이스트우드: 이것은 매우 침울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왜라고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갱들은 언제나 있어 왔고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인종간의 증오는 이 문제를 새로운 측면으로 만들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갱에 들어가는데 그것은 거기에 대한 소속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집에서는 받지 못한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그들 자신의 약점과 불안함은 그들보다 약한 이들에게 표출되는 것이죠. 갱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사회의 표상입니다.

슈피겔: 당신의 영화들에서 당신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그다지 좋지 않은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스트우드: 전 (영화상의 언어가) 정치적으로 옳아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길거리의 언어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욕을 하고, 'Fuck'나 'Shit' 같은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물론 헐리웃 제작자들은 이런 표현들을 영화에 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Fuck'이 영화 속에 자주 사용될 수록 관람 제한 등급이 올라가기 때문이죠.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삶의 모든 면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 이제는 일상 생활 속에서까지 대단히 오버하고 있습니다. 우린 누군가가 말때문에 시비를 걸지 않을까 언제나 불안 속에 살고 있죠.

슈피겔: 그게 그렇게 잘못되었나요?

이스트우드: 사람들은 유머를 잃었습니다. 예전에는 언제나 다른 인종에 대한 농담을 하곤 했죠. 요새 그런 농담을 숨어서 해야 하는데 이는 인종주의자라고 욕먹을까봐 불안해서 그런 것이죠. 전 이런 것을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친구들 모임마다 "유태인 샘"이나 "멕시코인 호세" 이 있었지만 그런 표현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인종차별적인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우리들의 국적이나 핏줄에 대한 농담들을 통해 서로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슈피겔: 당신의 나라는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월말에 있었던 바락 오바마의 취임은 미국 전역을 기쁨에 넘치게 했죠. 당신도 그런가요?

이스트우드: 전 제 열광에 대해 좀 더 신중하고 싶습니다. 그는 우선 스스로 진짜 어떤 능력을 가졌는 지부터 증명해야만 합니다. 엄청난게 높은 기대가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고, 그가 정치적으로 이루려 하는 많은 것들이 아마도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엄청난 재정적자가 오바마와 그의 정부를 한계로 몰아넣고 있죠.

슈피겔: 오바마가 좀 과대평가 받고 있나요?

이스트우드: 시간이 보여줄 것입니다. 전 몇 년전 '우리 아버지들의 깃발'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단 한장의 사진이 어떻게 전쟁중에 있는 한 나라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희망을 주게 되는 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사진은 2차 세계 대전때 태평양에 있는 이오지마라는 섬에서 전투에 이긴 후 미국 국기를 높이 세웠던 6명의 병사를 찍은 것이죠. 당시 이 사진은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현재의 시간으르도 잘 옮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슈피겔: 어떻게 말인가요?

이스트우드: 사진 대신 지금은 그의 카리스마와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고 있는 오바마 라는 이름의 인물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현재 우리는 굉장한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경제 위기는 미국과 그외의 세계를 아주 어렵게 만들었죠. 전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이 위기가 앞으로 긴 시간동안 지속되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중에도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이 침체를 1930년대의 대공황과 비교하고자 하는 것이죠.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신 더 심각합니다.

슈피겔: 당신은 1930년 5월에 태어나 어린 시절 대공황을 경험했습니다. 무엇에 대해 기억하고 계신가요?

이스트우드: 전 그때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저와 누이는 대공황을 의식하며 경험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우리 가족이 경제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은 가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몇달에 한번씩 이사를 해야 했는데 내 아버지가 계속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지 못했고 최소한으로 견디는 법을 배웠습니다. 장난감이 없을 때는 어디선가 구한 나무가지나 낡은 담배각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무언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야 합니다. 게다가 전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당시 언제나 쉽지 않았음에도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려 노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죠.

슈피겔: 하지만 당신에게 그런 생계의 문제는 벌써 해결이 되었죠. 당신의 12살짜리 딸 모건에게는 돈에 대해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요?

이스트우드: 그건 사실은 언제나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세대는 과잉지출의 시대에 살고 있고 항상 과다한 자극 속에 있습니다. 제가 그걸 바꿀 수는 없겠습니다만 전 이와 반대의 극점 같은 것을 제 딸에게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살아있는 예가 사람은 (돈이) 적음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제 딸에게 기회가 되는대로 예전에 크리스마스나 생일 때에 우리집 아이들이 저마다 고작 한 개의 작은 선물만 받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20개의 선물을 받는데도 아이들은 실망스러운 눈길로 선물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제가 모건에게 가르치려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은 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는 만큼만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건은 자신의 돈을 나눠 쓰는 것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전 그녀에게 우리 나라가 침체기에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설명합니다. 또한 그녀는 특혜 받은 삶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동시에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슈피겔: 당신은 5월 31일 79세가 됩니다. 은퇴라는 단어는 당신에게 여전히 낯설다고 보여집니다만?

이스트우드: 예, 은퇴는 견딜 수 없습니다. 전 그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것을 그만두고자 했다면 벌써 그만두었겠죠. 제 어머니는 2년 전 97살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만약 제가 어머니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여전히 상당한 창작력이 남아 있겠죠. 2주 후에 전 남아프리카에서 새 영화 'The Human Factor'의 촬영을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첫번째로 취임한 시기에 어떻게 럭비 세계 선수권 대회를 통해 인종차별로 힘들었던 나라를 일으키려 했는 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모건 프리먼이 만델라 역을 맡습니다.

슈피겔: "그랜 토리노"에서 월트 코왈스키 역이 당신에게 배우로서 마지막 역할로 남게 될까요?

이스트우드: 아, 전 벌써 "밀리언 달러 베이비"때에도 얘기했습니다. 어쩌면 정말 저의 마지막 역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일단은 그냥 두고 보고 싶습니다. 늙은이에게 어울리는 역할은 엄청나게 많다고 말하기는 힘들죠. 전 아마도 어디선가 집사 역을 맡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 그가 어떤 변화를 겪는 인물이어야만 흥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이런 역을 만나게 된다면 기꺼이 다시 카메라 앞에 서겠습니다. 그밖에는 전 카메라 뒤에 있는 것이 매우 편합니다.

인터뷰는 슈피겔의 안드레아스 렌너와 다그마 둔레비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원문 보기 (Quelle: Spiegel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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