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70 (2008)

Filme 2009. 3. 24. 23:05 posted by srv



감독: 최호
주연: 조승우, 신민아, 차승우


때는 70년대초, 당시 수많은 미군부대 주둔지중 하나였던 경상북도 왜관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클럽에서 연주하는, 각자 뭔가 아쉬움이 있던 두 밴드가 합쳐져 '데블스'라는 밴드를 결성합니다. 이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플레이보이컵 로-크 구룹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나름대로 고생을 하지만 곧 이름을 날리고 서울 밤문화의 주역이 됩니다. 그러나 당시는 군사 정권의 어두움이 극을 달하던 시기였기에 이들의 신나는 딴따라 인생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합니다....

좋은 인상을 받았던 사생결단을 만든 바 있는 최호 감독이 내놓은 음악 영화입니다. 작년 우리나라 극장가에는 몇편의 우수한 음악 영화가 나왔는데 이 영화는 그중에서 가장 음악 영화다운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연주가 가능한 멤버들을 모아 연습을 시켜 실제로 연주를 하게 했다는 점에 더욱 주목을 하고 싶군요.

이 영화에 대한 저의 감상은 이동진 기자의 평과 거의 비슷합니다. 사실 저라면 그렇게 쓰지도 못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멋지게 다 써놓으셨더군요. 특히 알란 파커 감독의 '커미트먼츠'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커미트먼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중에 리뷰들을 찾아보면서 엉뚱한 영화들과 비교한 글들을 보고 혼자서 난감했더랬습니다. 제게는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지 않다는, 나름대로 소중한 인생의 교훈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데블스'라는 70년대 실존했던 밴드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 이동진씨는 '케릭터화했다.'고 적절한 표현을 하셨습니다. - 영화 속의 데블스는 실제의 데블스와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영화의 극적인 구성을 위해 선택적으로 소재를 사용했다고 하는 편이 옳겠군요. 실제 데블스에서는 1) 70년대, 2) 왜관 등에서 미군상대 클럽 출신의, 3) 소울음악을 하던, 4) 데블스라는 이름의 밴드라는 특징과 5) 시민회관에서의 밴드 경연대회때 무대에 관을 끌고 나오는 퍼포먼스를 했고, 6) '닐바나'라는 클럽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는 사실 정도만 따왔을 뿐 그밖의 나머지는 거의 픽션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에 70년대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몇가지 인물과 에피소드를 양념으로 집어넣어 시대적 배경을 보강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와는 달리 실제 데블스와 와일드캐츠는 전혀 무관했던 관계였습니다.)

영화 속의 연주는 매우 만족스럽고 공연장면 등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확실히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70년대라는 시대를 적극적으로 고증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감독은 너무도 많은 현실적인 타협을 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작비에서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너무 지금의 시점에서 그때를 바라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감독의 욕심이 많았는지 영화의 촛점이 확실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씨네21에 있는 최호 감독과 조승우의 인터뷰를 통해 원래의 시나리오는 두 개의 밴드가 서로 경쟁을 하는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내용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포기해야 할 부분은 과감히 뺐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영화의 흐름이 매끈하게 흐르지 못하고 중간중간 방향을 잃고 헤메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렇다 보니 영화를 끌고 나가야 할 시대와의 갈등이나 멤버 간의 갈등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더군요. 여기에 다분히 흥행을 의식해서 그랬겠지만 흥미를 위해 집어넣은 요소들까지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했다면 70년대라는 시대나 데블스라는 좋은 소재를 좀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사실 전 영화보다 사운드트랙을 먼저 들었는데, 처음 듣는 순간 조승우씨의 목소리에 매우 놀랐습니다. 어울리냐 안어울리냐를 떠나 발성부터 훌륭하고, 많은 훈련을 받은 목소리라는 것이 티가 나더군요. 차승우씨의 기타는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러웠고 - 텔레캐스터의 매콤한 톤이 잘 살아나는 사운드는 일품! - 의외로 연기도 잘 하시더군요.
이 영화 속에서 연주되는 곡들은 소울계의 거장들인 윌슨 피켓('Mustang Sally', 'Land of 1000 Dances'), 오티스 레딩('I've been loving you'), Isaac Hayes('Soul Man') 등이며 연주의 수준은 매우 만족스러울 정도로 높습니다. 물론 정통적인 소울의 연주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울 지 몰라도 충분히 신나고 감정도 잘 살아 있습니다. 어쩌면 건반이 없는 대신 기타의 비중이 높은 악기 구성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80년대 인기가 많았던 '블루스 브라더스'의 연주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형님들의 연주를 충분히 들어봤다는 확신은 가질 수 있었습니다.


Wilson Pickett - Mustang Sally


Wilson Pickett - Land of 1000 Dances

http://www.youtube.com/watch?v=y1ehMrK3itM
The Blues Brothers - Soul Man
(embed를 막아놨군요. 영화 속의 연주와 닮은 점이 아주 많습니다.)


Otis Redding - I've been loving you

다분히 뒤죽박죽한 성향은 CCR의 'Proud Mary'를 연주하는 데에서 드러나는데 실제 데블스의 음악도 소울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진짜 소울 음악은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로-크'밴드적인 연주는 적당한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특히 '새타령'에서 달리는 연주는 아주 백미입니다. :-)


Creedance Clearwater Revival - Proud Mary
(오리지널보다는 조영남씨의 목소리로 더 익숙하긴 합니다만.)

2장의 CD로 구성되어, 한장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데블스의 연주가 그리고 다른 한장은 말그대로 '사운드트랙'이 실려있는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솔직히 영화보다 사운드트랙쪽이 더 마음에 드는군요. 지금도 청소할 때나 운동할 때 자주 꺼내 듣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여곡절 끝에 멤버들이 다시 모여 마지막으로 붉은 배경의 '닐바나'의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은 U2의 음악영화인 'Rattle and Hum'의 예고편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사무라이 픽션이 연상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전 오히려 한국의 수많은 U2 팬들이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 의문이었습니다.


U2 - Rattle and Hum - Trai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