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vs. 효돌 - Pride 남제 2006

Diverse 2007. 1. 4. 21:52 posted by srv

지난 12월 31일에 열린 프라이드 남제의 메인 경기였던 마크 헌트 vs. 에밀리아넨코 효돌의 경기를 보았습니다. 다른 경기들도 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인터넷 이외에는 볼 방법이 없는 곳에서 다른 경기까지 보기에는 시간과 여건이 허락을 하지 않는군요.

검증된 타격가인 헌트와 현재 가장 완벽에 가까운 종합격투가라고 일컫어지는 효돌의 경기는 시작 전부터 효돌의 압도적인 우세가 점쳐지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그래플링 실력이 타격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헌트인만큼 효돌이 얼마나 빨리 헌트를 그라운드로 데려가 게임을 끝내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이었습니다.

경기를 보고 난 한줄 감상은 위기 관리 능력이 뛰어난 효돌의 관록이 이끌어낸 승리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상대 선수의 약점을 자신의 강점으로 집요하게 파고 드는 효돌의 전술이 이번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나왔으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라운드에서 헌트의 분전으로 원래 예상되었던 원사이드의 경기가 아닌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되었습니다.

효돌이 경기 시작부터 입식에서의 타격전보다는 테이크 다운쪽에 훨씬 더 신경을 쓰는 모습에서 예상대로 그라운드 공방전을 목표로 경기에 임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효돌은 간간히 주먹이나 발을 내긴 했지만 타격을 목표로 한다기 보다는 전진 스텝을 밟으며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 클린치 상태로 가고자 하는 목적임이 드러납니다. 펀치-클린치-(다리 공격)-데이크 다운으로 이어지는 연속기술을 바탕으로 헌트를 그라운드로 모셔간 후 파운딩이나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관절기를 이용해 경기 초반에 승부를 내는 작전으로 나온 것이죠. 상대가 펀치력과 맷집이 좋은 헌트이기에 입식 타격에 승부를 거는 작전보다 이길 확률도 높은 작전임에 틀림이 없었구요.

하지만 헌트는 효돌이 들고 나온(어쩌면 너무도 확연하게 예상되었던) 이 작전의 허를 찌르는 전술을 구사합니다. 경기를 몇번 보고나서 추측해본 헌트의 작전은 아마도 이런 것이었겠죠. 입식에서 효돌이 타격전으로 나오면 당연히 한방을 노리며 타격으로 가겠지만 그보다는 도전자다운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설사 그라운드 공방전이 벌어지더라도 소극적인 방어가 아닌 적극적인 공격(그것도 관절기!)을 시도한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타격이나 서브미션에서나 효돌에게 절대 밀리지 않으며 최대한 공격적인 작전을 처음부터 들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경기는 초반에 쉽게 끝날 수도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효돌은 잠깐의 타격전 이후 헌트를 테이크 다운 시켜 완벽한 탑 포지션을 선점한 후 암록을 시도하여 승부를 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암록을 거는 순간 헌트가 상체를 일으키며 따라오는 바람에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걸지 못해 헌트의 양손 그립을 푸는 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결국 헌트의 팔이 펴지며 거의 완벽한 암록이 걸리지만 애당초 한쪽 다리를 제대로 위치시키지 못해 헌트가 몸을 돌릴 수 있는 틈을 남긴 완벽하지 못한 기술이 되어버렸고,여기에 몸을 돌리며 팔의 비틀림을 풀어 버리는 헌트의 멋진 방어술로 오히려 포지션이 바뀌면서 위기를 맞게 되죠.

이후 헌트는 사이드 마운트 자세에서 체중을 이용해 팔로 효돌의 목을 누르며 키록을 시도합니다. 만약 헌트가 처음부터 입식 타격을 주안점으로 두고 경기에 나왔다면 당연히 스탠딩 상태로 유도해야 되는 상황인데 오히려 관절기를 사용해 공격을 하는 장면은 이 경기에서 가장 의외의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집니다. 헌트는 무려 세번이나 키록을 시도하는데 번번이 효돌의 노련한 방어와 유연함에 막히죠. 여기에 헌트가 애당초 유술가가 아니기에 완벽한 기술을 거는데에 서툴렀다는 것도 작용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두번째 키록 시도는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자세였지만 팔과 어깨를 모두 비트는 것이 아닌 팔만 비트는데 그쳐 유연한 몸의 효돌에게 탭을 받아내기에는 2프로가 부족한 아쉬운 장면이었습니다. (첨부 사진을 참조하세요) 헌트가 몸을 효돌의 머리쪽으로 조금만 옮기면서 효돌의 왼손을 좀 더 밑으로 당겼다면 탭을 얻어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한편 효돌은 불리한 포지션에서도 매번 몸을 비틀며 돌려 스탠딩 상황으로 빠져나와 다시 테이크 다운을 시도하여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내겠다는 애초의 의지를 분명하게 고수합니다. 암록 실패에 이은 위기와 테이크 다운에서 되치기를 당해 불리해진 두 차례의 상황에서이어지는,불완전하긴 했지만상당히 위험했던 헌트의 키록을 잘 피해내며, 다시 스탠딩 상태로 돌아가는 효돌의 모습에서 챔피언다운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는근 7분여에 걸친 그라운드 공방전으로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헌트를 상대로 효돌은 경기의 주도권을 다시 잡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게임을 풀어 나갑니다. 비록 두어차례의 테이크 다운 시도가 실패하지만 재빨리 몸을 일으켜 스탠딩 상태로 돌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경기를 이어나가는 효돌의 체력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이때 헌트는 효돌과 클린치해 시간을 벌어 숨을 고르려 했지만 효돌의 연속적인 공격에 무기력하게 테이크 다운을 당하게 됩니다.

헐떡거리는 헌트의 발목을 걸어 수월하게 테이크 다운 시킨후 사이드 마운트 자세를 잡은 효돌은 헌트가 자신에게 시도했던 키록을 거의 그대로 구사합니다. 이때 헌트가 두 다리로 효돌의 오른쪽 다리를 완전히 잡아 방어를 시도했지만, 효돌은 오른손으로 헌터의 다리를 밀면서 몸의 중심을 단지 몇센티 앞으로 전진시키며 키록을 걸기 위한 포석을 단단히 준비합니다. 경험이 풍부한 효돌이 기술을 걸기에는 약간 모자른 상황에서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도 완전한 기회로 만들어 내는 모습에서 그의 공력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키록 또한 교과서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헌트의 왼쪽 겨드랑이로 왼손을 끼워넣은 효돌은 자신의 오른손목을 잡으며 키록의 형태를 만든 후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자세를 완성시켜 단번에 팔을 꺾으며 승부를 내어 버립니다. 체력적으로 지친 헌트로서는 제대로 된 방어는 시도도 못해본 채 완벽한 기무라 기술에 탭을 하고 맙니다.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흥미진진하면서 박진감 있는 경기였습니다.

마크 헌트는 약점이라고 지적되었던 그래플링쪽의 기술을 꽤나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지만 효돌의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뛰어 넘기에는 아쉽게도 좀 모자랐습니다. 의외의 기술로 경기를 풀어나가 상대를 놀라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승부를 결정짓기에는 서브미션 기술의 완성도가 좀 떨어졌다는 것이 패인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헌트가 서브미션보다는 원래 자신의 장점인 강력한 타격을 바탕으로 한 작전을 구사했다면 오히려 경기가 다른 양상으로 흐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군요. 효돌 대 노게이라의 세번째 대결에서 효돌이 구사했던, 철저하게 스탠딩에서 승부를 걸었던 작전을 응용했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하여간 기대 이상으로 발전한 서브미션 기술을 선보인 헌트의 다음 경기가 기대됩니다.

효돌은 자신보다 서브미션에 매우 약하다고 판단되어지던 도전자에게 오히려 관절기 기술이 걸리는 약간은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합니다만 여러 차례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위기를 벗어나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풀어나가 결국은 승리하여 역시 최강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조금은 상대를 얕보아 방심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효돌의 위기 관리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타 단체로의 이적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2007년에는 더 좋은 경기를 보여주길 기대할 뿐입니다.


<초짜와 귀신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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