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레시피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의 의도인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소개'와는 조금 멀 수도 있지만 조심스럽게 처음으로 (아마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독일 요리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음식문화의 꽃을 피운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이웃나라와 비교하면 독일의 요리는 사실 변변치 못합니다. 꽤나 척박한 풍토라서 이에 따른 한정된 식재료 자원과 오래 지속된 가난으로 인해 풍족한 식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역사적 배경까지 있다보니 독일의 음식들은 화려함이나 다양함 등과는 거리가 좀 있는 투박함과 소박함이 그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독일 하면 의례 떠오르는 소세지나 딱딱한 호밀빵, 맥주, 감자요리 등등은 이런 배경속에서 탄생된련 것이죠.
외국인들에게 독일음식이라면 보통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음식들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독일 전통음식의 양대 지존이라면 뷔르쯔부르크, 뉘른베르크 등의 도시가 유명한 프랑켄 지방과 (제가 살고 있는) 슈투트가르트의 슈바벤(Schwaben, 영어로는 swabian) 지방의 음식들입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케제슈페츨레도 슈바벤 지방의 음식으로 유명합니다.
전통적인 슈바벤 음식들은 기본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에 뿌리를 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풀많은 초원보다는 수많은 돌투성이 구릉으로 이루어진 동네이다 보니 가축을 기르기에는 마땅치 않아 고기나 유제품이 귀했고 - 이런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은 모두 귀족들의 음식이었죠 - 가난한 사람들은 동물의 내장이나 간단한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후 지역과 종교적 특징에 따라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며 음식문화가 발전했으며 17세기에 전해진 감자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쨌거나 이 슈바벤 사람들의 음식은 단순하고 기름지며 한편으로는 다른 독일지역에 비해 밀가루 음식과 스프/스튜 등이 발달한 것이 특징입니다. 슈페츨레 이외에도 유명한 슈바벤의 음식은 마울타쉐(Maultasche, 독일식 만두), 라우겐브레첼(Laugenbrezel, 원조(!) 브레첼), 가이스부르거 마르쉬(Gaisburger Marsch, 쇠고기와 감자 등의 야채, 슈페츨레를 넣은 스튜), 쯔비벨로스트브라텐(Zwiebelrostbraten, 볶은 양파를 듬뿍 얹은 슈바벤식 쇠고기 스테이크) 등이 있겠습니다.
케제슈페츨레(Kaesespaetzle)는 갈은 치즈(Kaese)와 일종의 밀가루 국수인 슈페츨레(Spaetzle)를 버터에 볶은 양파와 함께 켜켜이 쌓아 오븐에 넣어 구은 요리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슈페츨레(Spaetzle, 작은 Spatz 참새는 뜻인데 자세한 어원은 모르겠습니다)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현재는 남독일 전역에서 즐겨 먹는데 보통은 고기 요리의 side dish로 함께 먹지만 케제슈페츨레나 Linsen이라 불리는 (팥과 비슷하게 생긴) 콩요리와 함께 먹기도 하는 슈바벤 사람들에게는 아주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특히 모든 음식이 흥건할 정도로 듬뿍 소스를 끼얹어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소스를 잘 흡수하는 슈페츨레는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하겠습니다.
사랑받는 음식이다 보니 다양한 종류의 조리법이 있습니다만 가장 클래식인 계란과 밀가루를 넣어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략 4인분용 분량입니다)
아무래도 글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것 같아 사진과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1. 밀가루(500g), 계란(5-6개), 소금, 후추를 반죽할 수 있는 커다란 보울에 넣고 여기에 물(150-250ml)을 넣고 섞어서 반죽합니다. 만들어 지는 반죽이 워낙 끈끈하기 때문에 핸드믹서를 이용하면 좀 편합니다만 구멍이 뚫린 요리용 긴 주걱을 이용해 팔이 빠지도록 손으로 반죽하셔도 좋습니다. 반죽에서 공기방울 같은 것이 생기고 떠올리면 끈끈하게 흐르는 정도가 될 때까지 반죽하셔야 합니다. 만약 너무 뻑뻑하면 물을 조금 더 넣고 반대로 묽으면 밀가루를 더 넣어 농도를 조절하면 됩니다. 글로 적으면 쉽지만 사실은 핸드믹서를 이용해도 꽤나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이정도 수준까지 열심히 섞어야 합니다. (팔 진짜 아픔)
2. 1의 반죽을 축축한 천으로 덮어놓고 약 20-30분 정도 둡니다. 이렇게 두면 좀 더 쫄깃한 맛이 납니다.
3. 2를 하는 동안
1) 중간 크기의 냄비에 물을 끓이고 여기 소금을 적당량(3-4 숟가락) 넣습니다. 여기에 올리브 기름을 약간 넣으면 국수가 서로 붙지 않습니다.
2) 에멘탈러(약 300g) 등의 치즈를 잘 갈아놓습니다.
3) 양파(중간 크기 2개)를 세로로 반으로 자른 후 얇게 썰고,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여기에 양파를 넣고 갈색이 될 때까지 천천히 볶습니다.
4. 이제 반죽을 국수 모양으로 만들어 3의 팔팔 끓는 물에 넣어 익힙니다.
이때 국수 모양으로 만드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가 있는데 이중 두가지를 소개합니다.
1) 긁으면서 밀기 Schaben
물을 묻혀 촉촉하게 만든 손잡이가 있는 도마위에 2가 끝난 반죽을 조금씩 올려 칼 등을 이용해(이를 위한 도구도 있습니다) 얇게 펴서 긁으면서 밀어 끓는 물에 조금씩 넣습니다.
흔히 전통적인 '오리지널'의 방법이라 하는데 나이가 좀 드신 할머니들은 보통 이방법을 쓰시더군요. 슈페츨레의 크기를 고르게 만들 수 있기까지 다분한 수련이 필요한데 굵기, 길이 등을 각자 취향에 맞게 조절할 수 있지만 가늘게 만드는 것은 좀 어렵습니다.
2) 누르기 Pressen
마치 마늘 찧는 기구를 크게 만들어 놓은 듯한 도구(Spaetzlepresser 혹은 Spaetzleschwob이라 부릅니다)를 이용합니다. 이 도구를 물이 끓는 냄비위에 걸쳐 놓고 분량의 반죽을 기구에 넣어 힘있게 눌러 반죽을 물 속으로 밀어 냅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보시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것 같습니다.
저는 보통 2번 방법을 씁니다. 이쪽이 좀 더 씹히는 맛이 좋고 만들기도 수월하며 집에 관련 도구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2번 방법쪽이 좀 더 가늘고 긴 슈페츨레를 만들 수 있습니다.
5. 끓는 물에서 슈페츨레가 떠오르면 익었다는 겁니다. 틀채(--;) 같은 것으로 건져내어 적당한 용기에 옮깁니다. 만약 바로 케제슈페츨레로 먹을 것이 아니라 side dish로 먹을 것이라면 기름을 약간 떨어뜨린 찬 물과 더운 물에 차례로 넣어 서로 붙지 않게 식힙니다.
이렇게 둥둥 뜨면 되요.
6. 반죽 모두를 4, 5 과정을 반복해 슈페츨레로 만듭니다. 이와중에 오븐을 약 180도 정도로 예열합니다.
7. 오븐에 넣을 수 있는 용기의 안쪽 벽에 (나중에 음식이 너무 붙지 않게) 기름을 발라놓고 빵가루를 뿌려줍니다. 여기에 슈페츨레-3의 치즈-3의 양파 다시 슈페츨레-치즈-양파의 순으로 반복하며 켜켜이 쌓습니다. 중간중간 후추도 적당히 뿌려주세요.
8. 다 쌓은 맨위에 남은 치즈를 올리고 여기에 빵가루 약간을 뿌리고 몇개의 작은 버터 조각을 얹어 오븐에 넣어 맨 윗 부분이 옅은 갈색으로 구워질 때까지 약 20분 정도 굽습니다.
9. 8을 오븐에서 꺼내 다진 파슬리 등을 위에 얹습니다.
10. 적당한 양을 잘라 접시에 올려 대접하면 완성!
토마토와 푸른 잎의 채소가 들어간 샐러드와 잘 어울립니다.
마실 것으로는 맥주(정확히는 밀로 만든 Weizenbier)나 슈바벤 지방에서 나오는 트롤링거 Trollinger 포도주가 잘 어울립니다.
Guten Appetit! Tip1 반죽을 담었던 용기나 조리 도구들은 모두 찬 물로 설겆이를 해야 편합니다. (더운 물은 안좋아요) Tip2 반죽이 뻑뻑할 수록 슈페츨레는 단단합니다. Tip3 남은 슈페츨레는 전자렌지에 데워 먹거나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데워 먹어도 좋습니다. Tip4 오븐이 없을 경우 중간불의 프라이팬에 올려 치즈가 다 녹을 때까지 적절히 뒤집주기를 반복하면서 익히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