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초에 제가 사는 동네의 모형기차 클럽에서 음악학교 건물을 빌려 전시를 한다기에 아이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아무래도 동네 클럽의 동네 전시라 크게 놀랄만한 작품은 없었지만 독일의 건전한 오덕문화를 느끼기에는 충분할 것 같아 많은 사진과 함께 소개해 봅니다.

모형기차는 말 그대로 실제 존재하는 기차와 기차와 관련된 풍경 등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취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독일 내에서 모형기차의 인기는 예전같지는 않아도 여전한 편입니다. 작은 동네라도 한두개 정도의 관련 클럽은 존재하고 이런 클럽들이 모여 정기적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를 가집니다. 많은 클럽들은 일종의 순회전시도 하죠. 꽤나 오덕적인 취미로 발전할 수 있는 모형기차 수집, 디오라마 만들기 등이 클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모형기차 관련 제품들의 가격 때문입니다. 가격의 차이는 있지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관차 하나가 보통 수백 유로 정도의 수준이니 혼자 집에서 놀기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취미생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다 보니 나름대로의 노하우와 컬렉션이 모여 있는 클럽을 통함으로 좀 더 스케일이 큰 취미 생활이 용이해집니다. 이런 클럽들은 게다가 전시행사를 통해 나름대로의 수입을 올릴 수도 있어 이를 통해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자금력도 가집니다. 물론 개인이 집에서 나름대로의 '작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 보통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고 따라서(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여도) 규모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물론 오덕의 세계이니만큼 조금 맛이 간 팬들의 경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개인 작품을 소장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아무래도 보편적인 흐름이라고 보기에는 힘듭니다.
당연하지만 대단히 큰 규모의 상설 전시도 존재하는데 그중에도 유명한 함부르크의 Miniatur-Wunderland의 경우 이층에 걸쳐 700여대의 모형기차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독일의 주요 도시의 중앙역에만 가도 아이들을 위해 몇십 센트의 동전을 넣으면 자신이 원하는대로 기차를 움직여 볼 수 있는 일종의 디오라마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위키 독일판을 찾아보니 모형기차 제조의 역사 또한 대단히 오래되었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작이 18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거의 기차의 발명과 비슷한 수준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실질적인 '모형기차'는 19세기 초부터 잉글랜드에서 만들어 판매되었으며 현재 모형기차계를 군림하다시피 하고 있는 독일은 19세기 중후반부터 각종 장난감의 생산도시로 유명한 뉘른베르크를 중심으로 모형기차를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특히 매르클린(Maerklin)사는 현재 모형기차의 표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회사로 군림하고 있죠.

모형기차의 축척(Scale, Massstab)은 1:22.5 에서 1:220 까지 다양한데 1:22.5의 경우 실제 사람들이 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와 동력을 가집니다.(따라서 Gartenbahn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다양한 스케일들은 레일간의 간격을 기준으로 분류가 되며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이 퍼진 H0 (축척 1:87)의 경우 16.5mm의 간격이 보통(Normal)의 간격입니다.

위키 독일판에 따르면 모형기차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1. "Spielbahner"(유희형 팬) : 한마디로 모형기차를 가지고 '노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로 같은 것은 대충 만들어 놓고 기차를 움직여 보고 노는 것이 더 중요한 분들이죠. 모형기차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대략 이런 부류라고 하겠습니다. 현실적인 재현이나 실험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2. "Vorbildbahner"(재현형 팬) : 최대한 원래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차와 주변 역의 풍경 등이 실제와 비슷하게 보여야 하며 심지어 기차의 움직임이나 컨트롤까지 실제와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렇다 보니 집 전문가, 신호 전문가, 객차/화차 전문가 뿐만 아니라 최근 모형기차들의 디지털화와 관련한 IT 전문가까지 필요한 형편입니다. 실제로 좀 커다란 전시회를 가보면 디오라마의 컨트롤에 노트북 등을 이용해 진짜 기차들처럼 움직이게 하는 분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3. Sammler(수집형 팬) : 특정한 시대나 지역의, 혹은 제조사의 기차들이나 관련 제품들을 수집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수집한 것들을 전시하기 위한 유리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며 수집품들이 선로위에서 움직이게 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4. Bastler(공작형 팬) : 이분들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분들입니다. 복잡한 지형이나 선로 모양의 설계부터 기차들의 개조는 물론 컨트롤을 위한 복잡한 회로까지 설계하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모형기차의 디지털화는 이분들에게 큰 동기부여를 하고 있죠. 그러나 사실적 재현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저는 아직은 그 어디에도 해당사항이 없군요. :-) 어렸을 때 매르클린 사의 Beginner 세트를 선물받아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아직 별로 없습니다. 다만 구경하며 감탄하는 것만큼은 아주 좋아합니다.

사진이 너무 많아 접습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클릭하면 원래 크기(800x600)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쪽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얼마나 계실 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이런 전시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여간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갑자기 방문자수가 늘어 확인해 보니 달롱넷쪽을 통해 오시는 분들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오덕이라는 말을 썼지만 전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취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전 존경스럽거든요. 오해하시는 분이 없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