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냉전이 한창인 1977년 2월, 모스크바 시내 한가운데 있는 고리키 공원에서 세 구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모두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보여지며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하기 위해 얼굴가죽이 뜯겨져 있고;; 손가락 끝도 잘려 있습니다. 모스크바 경찰의 살인사건 전담반장인 아르카디 렌코는 내키지 않지만 수사를 맡게 되며 살인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나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미국인이 사이에 끼어 들어 렌코는 수사를 계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KGB에 넘겨줘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수사를 해갈수록 밝혀지는 것들은 점점 사건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최근 연달아 일련의 범죄 스릴러 소설들을 읽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이 작품 '고리키 공원'이 가장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습니다. 전체주의가 여전하고 쓸데없이 관료적인 구 소련의 사회를 잘 묘사하고 있고, 특히 주인공인 렌코 형사의 케릭터는 매우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매우 끈질기고 우직한, 하지만 형사로서의 자질 또한 뛰어난 렌코는 별 단서도 없고 외국인마저 개입되어 복잡해 보이는 사건의 내막을 한겹한겹 차근차근 벗겨냅니다. 모스크바 시내나 주변 인물들의 성격도 잘 표현되고 있고 무엇보다 사건의 전개가 박진감을 잃지 않고 끝까지 멋지게 진행됩니다. 말 그래도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 정도의 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자 출신의 마틴 크루즈 스미스는 바로 1981년에 발표한 이 작품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특히 그가 만들어 낸 주인공 아르카디 렌코가 활약하는 일련의 작품들은 모두 좋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매 작품 하나의 사건이 종결되는 형식이지만 1970년대 중반에서 현재까지 구 소련 -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아르카디 렌코가 활약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 안은 독일 제명입니다)
1981 - Gorky Park (Gorki-Park)
1989 - Polar Star (Polar Star)
1991 - Red Square (Das Labyrinth)
1999 - Havanna Bay (Nacht in Havanna)
2004 - Wolves eat Dogs (Treue Genossen)
2007 - Stalin's Ghost (Stalins Geist)
고리키 공원은 1983년 윌리엄 허트가 렌코의 역할을, 리 마빈이 잭 오스본의 역할을 맡아 영화화 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디테일에서는 소설과 약간 차이가 있게 각색이 되었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소설의 것을 그대로 갖다 썼습니다. 영화 자체도 나쁘지 않은 평을 받은 모양이군요. (전 아직 못봤습니다)
소설 안의 주인공들은 러시아인들답게 - 심지어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미국인들조차! - 보드카를 물 마시듯 마셔댑니다. 그것도 그냥 몇 잔이 아니라 몇 병을 마셔대는군요. 그렇게 마시고도 운전하고 수사 진행하고..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하긴 패트리샤 콘웰의 케이 스카페타 박사와 주변 인물들은 열심히 담배를 피워대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