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에서 제 닉네임에 대한 재미있는 코멘트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닉네임으로 빌리고 있는 '그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SCV도 SRC도 SUV도 아닌 SRV는 1954년 텍사스 오스틴에서 태어나 1990년 위스콘신의 알파인 벨리에서 유명을 달리한 80년대 블루스계를 뜨겁게 만들었던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스티비 레이 본 (Stevie Ray Vaughan)의 이니셜입니다.
 
어이쿠.. 사진이...
 
사실은 이런 멋진 모습입니다.

3살많은 형님인 지미 본(Jimmy Vaughan, 이분도 유명한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영향을 받아 기타를 배우게 된 스티비는 중학생때부터 여러 밴드를 전전하다가 부모의 극렬한 반대에도 결국 기타리스트로의 꿈을 버리지 않고 17살때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뮤지션의 길을 걷습니다.

텍사스의 여러 블루스 밴드를 전전하다 당시 그동네에서 유명했던 로컬밴드인 Cobras에서 활동을 하며 후일 자신의 밴드인 Double Trouble의 멤버들(토미 샤논(b), 크리스 레이튼(dr))을 만나게 됩니다. 81년 오스틴 뮤직 페스티발에서 연주한 실황이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손에 들어가면서 점점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데 정규앨범을 내지 않은 밴드임에도 82년 스위스 몬트뢰이에서 열리는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들의 다분히 록적인 연주는 전통적인 블루스를 원했던 관객들의 야유를 듣게 되지만 이 공연을 통해 두 명의 중요한 뮤지션을 만나게 되죠. 한명은 블루스 팬으로 알려진 데이빗 보위으로 그는 스티비를 자신의 새 앨범인 Let's Dance에 참여시키며 스티비 또한 인상적인 연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다른 한명은 잭슨 브라운인데 그는 이들에게 공짜로 그의 스튜디오를 빌려주어 역사적인 데뷔 앨범인 Texas Flood(1983)를 녹음하게 하죠.

 
82년 몬트뢰이 뮤직 페스티벌 - SRV with Double Trouble / Dirty Pool 관객들의 야유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 중반과 후반에 나오는 기타 솔로가 스티비의 연주입니다.

이후 스티비 레이 본과 그의 밴드 더블 트러블은 승승장구 성공의 길을 걷습니다.
데뷔 앨범인 Texas Flood로 두 부문의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고 저명한 기타 잡지인 Guitar Player지의 독자가 뽑는 Reader's Poll에서 최우수 신인, 최우수 블루스 앨범, 최우수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리스트(이분야는 에릭 클렙튼을 제치고)로 선정되며 최우수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리스트 부문은 1991년까지 연속으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해에 세 분야에서 베스트로 뽑힌 일은 제프 백 이후 두번째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앨범인 Couldn’t Stand The Weather(1984) 역시 성공하여 그에게 최초의 그래미상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1985년 새로운 멤버로 키보드주자인 Reese Wynans가 더블 트러블에 합류하면서 좀 더 풍성한 사운드가 가능하게 됩니다. 이 멤버로 발표한 Soul to Soul(1985)는 이들에게 세번째 골드레코드를 선사하며 역시 그래미에 5번째로 노미네이트됩니다. 이들은 다시 스위스의 몬트뢰이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하는데 이번에는 온갖 박수와 환호로 환영받게 되죠. 82년과 85년의 몬트뢰이 재즈 페스티발의 실황은 두장짜리 DVD로 나와있어 두 공연의 차이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85년 몬트뢰이 재즈 페스티벌 - SRV with Double Trouble / Scuttle Buttin' & Say What!

그러나 이듬해인 1986년 스티비는 그동안 계속된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인해 독일 투어중 결국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거의 죽음의 문턱 근처까지 갔던 그는 베이시스트인 토미 샤논과 함께 재활치료를 통해 마약과 알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발표한 In Step(1986)은 이러한 그의 성숙된 모습이 한껏 느껴지는 음반이기도 합니다. 이후 형인 지미 본과 함께 Family Style을 녹음하고 MTV의 Unplugged에 조 새트리아니와 함께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가 1990년 에릭 클랩튼과 함께 스키리조트인 위스콘신의 알파인 밸리에서 열린 공연에 참석했다 헬리콥터로 시카고로 돌아오던 중 조종사의 부주의로 인한 추락사고로 그만 유명을 달리하고 맙니다. 달라스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빌리 기본스(ZZ Top), 스티비 원더, 버디 가이, 링고 스타, 닥터 존 등의 여러 뮤지션들과 3000여명의 팬들이 모여 그의 죽음을 추모했습니다.

그의 연주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그 스스로 First Wife라고 부르기도 한 그의 기타 Number One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Number One

70년대 초 오스틴에서 구입한 59년 팬더 스트라토캐스터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기타로서 그의 또다른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합니다. 그는 기타의 1-3번줄을 매우 굵은 스트링으로 장착하여 강력한 피킹으로 연주함으로써 스트라토캐스터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톤에 두텁고 남성스러움을 가미한 고유의 톤을 개발하게 됩니다.

굵은 줄에 따른 (반음 내린 튜닝임에도) 엄청난 장력때문에 스티비 이외의 다른 기타리스트들은 그의 기타로 연주하기가 어려웠다는 에피소드도 남기고 있는데 그의 대단히 큰 손과 센 악력에는 더할 나위없이 잘 맞는 세팅이었습니다. 여기에 대단히 빠른 스피드로 리드와 리듬을 번갈아 연주하며 여기에 다양한 리듬의 변화를 통해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는 블루스 연주에 역동성을 부여했습니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뮤지션으로는 알버트 킹, 오티스 러쉬, 버디 가이 등의 블루스 선배들과 지미 헨드릭스를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지미 헨드릭스의 경우 스티비 스스로가 여러 곡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이분의 스타일은 사실 록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구수한 블루스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습니다만 이분과 동시대에 맹활약했던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Robert Cray와 함께 80년대의 블루스계를 장식하는 중요한 뮤지션이지요. 아울러 80년대가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새로운 테크닉을 들고 나와 거의 기타리스트의 전국시대였음을 기억하면 그와중에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이분의 연주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듣기에는 쉽게 연주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분의 높은 수준의 테크닉까지 겸비한 손맛이 듬뿍 담긴 연주를 똑같이 카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83년 Live at El Mocambo - Voodoo Chile (Slight Return)

 
84년 Rockpalast - Little Wing (+Third Stone From The Sun)

제가 이분의 연주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몇 년에 한번씩은 찾아오는 음악감상의 침체기에 빠져있던 수년 전 우연히 접하게 된 블루스 록 관련 앨범들을 듣다보니 어느새 이분의 음악을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분 외에도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로버트 크레이 같은 분들의 음악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예전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못했던 올맨브라더스나 Gov't Mule 같은 분들의 음악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즐겨 듣게 되더군요. 하지만 그래도 제 MP3 플레이어에는 언제나 SRV의 앨범이 담겨 있습니다. 이분의 걸걸한 목소리와 쫀득쫀득한 기타 소리를 듣고 있자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쨌거나 이분 덕분에 예전에 포기했던 일렉 기타의 세계에 입문해볼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Number One의 리플리카가 팬더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언젠가는 꼭 가지고 싶은 물건입니다. 기타를 잘 치던 못치던 상관없이 말이죠.

 

저도 이런 간지나는 포즈를 잡아보고 싶군요. ㅠ.ㅠ 어울리기나 할려나. 마지막 곡으로는 스티비 레이 본의 대표곡중 하나인 Pride and Joy입니다. 일렉기타가 생기면 꼭 카피해보고 싶어요. ^^;;

 
83년 Live at El Mocambo - Pride and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