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의 어느 해, 무더위와 스모그로 불쾌지수가 점점 올라만 가는 LA에서 유태인들을 배격하고 모욕하는 낙서들이 보여집니다. 그리고 흑인 매춘부를 시작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노파 등 유태인과 유색인종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이 시작됩니다.

이제 50대 중반을 넘기려는, LA 경찰국에서는 거의 전설적인 인물인 잭 골드는 인질을 잡고 있는 은행강도와의 대치중 은행강도를 총으로 사살하면서 이에 놀란 비벌리 힐스에 사는 인질에게 고소를 당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인전담반에서 유대인 관련 낙서와 관련된 임시 부서로 좌천되는데 그러면서 오히려 연쇄 살인과도 엮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외에도 개인적인 다른 문제도 해결해야만 합니다.

소니 워커는 LA 서부지역에서 신문배달을 하는 근육질의 20대 후반의 백인입니다. 그의 유색인종과 유태인에 대한 증오는 거의 병적일 정도입니다.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방송과 신문에 언제나 경도되어 있고 신에게 선택받은 자신의 조국 미국이 유태인과 유색인종에 의해 점점 망해가고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 회당에 낙서로 시작하나 점점 그의 범죄는 정도가 심해집니다.

인터넷을 뒤져도 이 작품의 작가인 마르셀 몬테치노(Marcel Montecino)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단지 그의 원래 직업은 작가가 아니라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것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잭 골드가 재즈, 특히 피아노를 좋아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도 이때문이겠죠. 덕분인지 재즈의 분위기가 한껏 사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전 이 작품을 읽는데에 전 꼬박 2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단 분량도 좀 많은 편이었고 (630페이지)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죠. 하지만 읽는동안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걸려 읽긴 했지만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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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80년대 온갖 인종들이 섞여 사는 LA를 배경으로 인종주의, 마약, 부패한 변호사 등이 등장하고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말그대로 느와르적인 하드 보일드입니다. 독자들은 처음부터 누가 범인이라는 것을 아는 상태이고 이렇다 할 반전 같은 것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지만 꽤나 현실적인 배경으로 꼼꼼하게 짜여진 이야기 덕분에 상당한 긴장감을 느끼며 읽게 됩니다. 특히 80년대와 LA라는 배경을 적절하게 잘 활용했습니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설명되고 묘사되어져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데, 이들이 겪는 개인적인 사건들 또한 작품 속에서 연일 거듭되는 무더위만큼이나 끈질기게 점층적으로 쌓여 처음에는 무관해 보였던 이들이 서로 얽히면서 소설의 절정으로 치닫아 갑니다.

주인공 격인 잭 골드는 마약단속반, 살인전담반 등을 거친 베테랑이며, 현장의 자잘한 증거를 통한 수사보다는 발로 뛰며 탐문을 하는 쪽을 선호하는 전형적인 하드 보일드한 열혈 유태인 형사입니다. 규율 등에는 얽매이지 않고 상사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본능과 주먹이 앞서는 시원시원한 성격이죠. 싸움도 잘하고 총도 잘 쏘며, 스카치 위스키 - 약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소설 속에서 그가 조니 워커 블랙을 몇 병을 비웠는지 모릅니다. - 를 거의 알콜 중독자 수준으로 마셔대지만 가끔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할 줄도 알며 특히 딸에 대한 사랑은 대단히 지극합니다.

비록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지만 만약 이 양반이 이정도 수준의 작품을 몇 편 발표했다면 아마 꽤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 점이 좀 안타깝습니다만 그래서 이 작품의 가치가 더 높아질 지도 모르겠군요.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봐도 한국어로 된 결과가 전혀 나오지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