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내용은 한줄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유니스 파치먼이 문맹이라는 이유때문에 자신이 가정부로 일하던 커버데일 가족을 몰살한다.'

게다가 이 작품은 위의 요약과 비슷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범죄 심리 스릴러물의 대가이신 루스 렌델 여사의 수많은 작품중 처음 접한 이 소설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풀어놓으면 싱거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기더군요.

연달아 읽었던 소설들이 대부분 대작 스타일이라 200페이지가 좀 넘는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많았습니다. 일단은 몇 주전 마사 그라임스의 작품에서 영국 여류 작가에게 한번 쓴 맛을 봤기 때문이고 - 읽다가 지루해서 그만뒀죠. - 배경이 영국 시골에 내용마저 처음부터 다 밝혀놓고 시작하니 겁이 안날 수 없었죠.

이 작품은 소위 '싸이코패스'적인 살인마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누가 죽였는지'는 아예 처음부터 밝혀지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살아서인지 사랑같은 감정을 전혀 가지고 있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래서 인간이라기 보다는 기계에 가깝게 느껴지는 특이한 주인공인 유니스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사이비종교에 빠져 말그대로 미쳐버린 조안이 무슨 이유로 어떻게 커버데일 가족을 죽였는지를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나갑니다. 단지 왜와 어떻게만으로 짜여진 범죄 스릴러 물이지만 곳곳에 깔아놓은 복선과 클라이막스에서의 긴장감은 첫 페이지에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대단한 것입니다. 모든 설정과 묘사는 이유가 있는 것들이고 너무도 일상적인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파국으로 몰고가는 구성은 다른 작가에서 보기 힘든 탁월함 그 자체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쥐었다 놨다하는 공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영화화 하기에 참 잘 맞을 듯한 이야기라 중간정도부터는 머릿속에 콘티가 그려질 수 있을 정도로 시각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벌써 두번이나 영화화 되었던 작품이더군요.

A Judgement in Stone (1986)

La Ceremonie (1995)

첫번째는 듣보잡 감독의 영화이지만 두번째는 끌로드 샤브롤의 작품이군요. 기회가 되면 한번 보고 싶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말고도 영화화된 작품들이 무척 많군요. 이렇게 유명한 분을 아직까지 몰라뵜다니 송구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렌델 여사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특히 Wexford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물이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