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어릴 적부터 단짝이었던 아내를 연쇄살인마에게 잃고만 소아과 의사인 데이빗 벡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과 아내만 알고 있는 비밀이 담긴 이메일을 받습니다. 말도 안되지만 어쩌면 아내가 살아 있을 지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FBI는 자신을 아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를 쫓는 것은 이들만이 아닌 것이 드러납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TV 시리즈 '도망자'가 연상되는 상황 설정(주인공의 직업이 의사!)이지만 실제로는 좀 더 복잡합니다.  시작부분만 해도 로맨스 소설을 연상케해서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싶지만 몇 페이지만에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의 끈적한 흡성대법으로 빨아들이더군요. 자기 전에 몇 페이지 읽으려고 들었다가 결국 150여 페이지를 읽고 말았으니까요. 덕분에 약 삼일 만에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약 3/4정도가 지나면 좀 느슨해지긴 하지만 스피드한 전개와 간결한 문장 덕에 굉장히 빨리 읽힙니다. 마지막 반전은 좀 어이없기도 합니다만 그 전까지의 흥미진진한 엎치락뒤치락 덕분에 눈감아줄 수 있더군요. 읽다보면 대략 결말이 읽혀져 나름대로의 반전들을 늘어놨지만 효과는 의외로 미미합니다.

이 작품은 마치 헐리웃에서 내놓은 블록버스터를 연상케 합니다. 깔끔하고 잘 짜여졌으며 재미도 상당하지만 잘 만들어진 현실감 있는 케릭터라던지 좋은 추리/범죄소설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깊은 통찰력 같은 것은 아쉽게도 거의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긴박한 상황을 꾸며 나가는 빠른 전개와 재미는 상당한 수준이죠. 화면빨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데 좀 피상적인 오락영화를 본 느낌입니다.

독자를 깊이 이야기속으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데에는 독특한 서술 방식도 큰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인 데이빗 벡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있지만 기타 다른 인물들은 모두 3인칭 전지적 시점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시점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여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를 더욱 효과적이고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게 만듭니다. 특히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심리에 동화되어 거의 눈물이 나올 뻔 했답니다. ㅠ.ㅠ (나의 유치한 감성은 아직 살아 있어!) 집도 아니고 사람 많은 곳이었는데 다행히 감정수습을 잘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작가인 할란 코벤은 2001년 이 작품으로 호평을 받으며 추리/범죄 스릴러계의 여러 상을 휩쓸어 더욱 유명해집니다. 물론 그 전에 이미 스포츠 매니저인 Myron Bolitar가 등장하는 시리즈물로 한 이름 날리던 분입니다. 여러 유명한 상도 많이 받으셨군요. 이 작품의 경우는 자신의 인기 시리즈물의 주인공으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쓰게 되었다고 하네요.

영화화 하기 딱 좋을 것 같은 작품이라 혹시나 했더니 역시 이미 영화화가 되었습니다.
Ne le dis à personne (2006)
헐리웃이 아닌 프랑스에서 영화화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군요.

이 작품은 한국에는 '밀약'이라는 제명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심심할 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