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은 공휴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오순절 방학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죠.
아이의 유치원은 이번 주만 방학이긴 합니다만 많은 아이들이 어디론가 가족들과 떠났는지 유치원에 빈 자리가 많이 보이더군요.
어쨌거나 지난 월요일 아이와 단 둘이서만 근처의 수영장에 다녀왔습니다.
벌써 그 전부터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싶다고 몇번이나 졸라서 결국은 갔던 것이죠.
생각해 보니 아이와 함께 수영장에 간 것도 벌써 꽤 오래 전이기도 했구요.
이제까지는 늘 엄마도 함께 갔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아빠와 간 것이라 전 내심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옷을 갈아 입는 것도, 함께 샤워를 하는 것도 모두 잘 따라왔거든요. 그다지 개구진 성격이 아닌 아이이다 보니 무슨 행동을 할지 어디로 튈지 고민해야 할 필요도 없어 저도 편했습니다.
남자 둘이서만 탈의 캐비넷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옷을 갈아 입는 것도 즐거웠고 이젠 제법 혼자서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져 제 말에도 잘 따라 오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간 수영장에는 아주 어린 아이들을 위한 풀과 좀 더 큰 아이를 위한 풀이 모두 있는 곳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노는 풀은 물의 깊이가 기껏해야 무릎까지도 안오는 데다가 물도 은근히 뜨뜻해서 아이들이 놀기에 아주 좋죠. 샤워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가자 아이는 이곳부터 찾더군요. 함께 물 속에 들어가 물싸움도 하고 장난감 배 같은 것을 함께 가지고 놀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이젠 때가 되었다 싶어 아이를 꼬셔 좀 큰 아이들이 노는 풀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곳의 깊이도 80cm가 안되는 얕은 풀이지만 물은 좀 더 차고 거칠게 노는 큰 아이들이 많아 서로 몸을 부딛치는 일이 많은 곳입니다. 물에 뜨는 것을 도와주는 작은 튜브를 양 팔에 하나씩 끼고 아이와 들어 갔습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물에 뜨는 것을 천천히 즐기게 해주었더니 아이도 나름대로 팔을 움직이며 부력을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 입 속으로 물이 들어가긴 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계속 잘 놀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집을 떠나기 전부터 아이와 약속했던 '감자튀김'을 먹기 위해 물에서 나왔습니다. 야외풀이 있는 독일의 수영장은 대부분 그렇듯이 이 수영장에도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있습니다. 구운 소세지나 샌드위치, 샐러드 등을 사 먹을 수 있습니다. 맥주와 아이스크림은 당연한 것이구요.
잘 먹고 내려오니 우연히 친한 한국 가족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 집 아이와 노는 동안 저희 아이는 그 집 아빠와 함께 놀았죠. 나름대로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 아이가 몇번 물을 먹고 말았습니다. 그 집의 둘째는 저희 아이보다 훨씬 더 어리고 여자아이지만 물을 무서워 하지 않고 물에도 곧잘 떠서 돌아다니니 저희 아이도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만 저희 아이가 얼마나 겁이 많은 지를 몰랐던 모양이에요.
물을 먹고 겁을 먹은 아이는 제게 꼭 안겨 작은 풀로 다시 가자고 하더군요. 아이를 가만히 안고 물 속에 있으면서 아이를 진정시키면서 그냥 이 풀에 있길 바랬습니다. 우리 아이보다 작은 저 집 아이는 벌써 저러고 노는 데 우리 애는 아직 이렇게 작은 아이들이 노는 풀로 가자고 하는 것이 순간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지고 싶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구요. 천천히 아이를 설득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는 이미 완고했습니다. 나가겠다는 말을 분명히 하더군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 머릿속은 복잡해졌습니다. 무엇이 아이를 위하는 것일지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죠.
하지만 금방 내린 결론은 '기다리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결국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인데 다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못한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때가 되면 아이가 알아서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구요. 몇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안되던 자전거의 페달 밟기를 이제는 능숙하게 해내고 있는 것만 생각해 봐도 그렇고, 제 스스로부터도 10살이 다 되어서야 본격적인 수영을 배우고 싶어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작은 풀로 갔습니다. 얕은 수심에 따뜻한 수온.. 아이는 다시 신나게 놀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장난도 치고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는' 놀이도 하면서 다시 즐거운 표정을 되찾았습니다. 풀 한구석에 앉아 아이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또 실수할 뻔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가 물을 먹고 겁이 났을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믿고 기댈 수 있는 (부모의) 품이었다는 것을 잊을 뻔 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비록 약간의 갈등이 마음 속에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가장 필요한 것을 해줬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잘못했으면 모처럼의 아빠와의 수영장 나들이가 아이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집에 돌아와 물에 젖은 아이와 제 수영복을 나란히 널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또 잠깐 생각해 봤습니다. 아이가 부족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메꾸어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긴 하겠지만 그것이 부모의 욕심으로 강제되면 절대 안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요. 다음에 또 함께 수영장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왠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사실은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번 아이와 수영장에 놀러 가고 싶어졌습니다. 또 함께 감자튀김을 먹으러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