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디셔 - Kickback (독일 제명: Gier)

Bücher 2008. 5. 20. 22:34 posted by srv
와이어트는 프로 갱스터입니다. 남의 돈을 빼앗거나 훔치는 데 일가견이 있죠.
그는 오랜 시간동안 쌓인 경험과 지식 외에도 냉철함과 차가운 이성을 가진 프로중 프로이죠. 치밀하게 계획해 실행에 옮기던 '비지니스'가 함께 일을 하던 초짜 갱스터인 슈거풋의 어이없는 실수로 실패하기도 하지만 곧 새로운 일거리가 그에게 들어옵니다. 시드니의 어느 변호사가 뇌물용으로 마련한 30만 달러의 거액을 훔치기 위해 옛 동료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죠. 와이어트는 냉철하게 계획을 세워 천천히 작전을 실행시킵니다만 여러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슈거풋이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것에 상관할 와이어트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범죄 스릴러에 가깝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인공이 바로 범죄자라는 것이죠. 보통의 주인공인 경찰은 아주 뒷전입니다.
주인공인 와이어트는 대단히 냉정한 사람입니다. 쓸데 없는 감정으로 일이 망쳐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매우 용의 주도하며 머리 회전도 빠른 사람입니다. 주인공부터가 이렇다 보니 이 소설은 독자를 철저히 구경꾼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 그 누구에도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게 미리 막아놓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그냥 프로 갱스터가 어떻게 범죄를 준비해 실행에 옮기는 지를 담담하게 구경할 수 있을 뿐이죠.

사실 전반적인 제 느낌은 '펄프' 였습니다. 액션 장면도 여럿 등장하고 자극적인 장면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호주 출신의 작가인 게리 디셔는 건조하면서도 치밀한 문체로 꽤나 쿨한 주인공의 활약(?)을 그려 나갑니다. 펄프도 이정도면 명작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은 전형적인 남성 소설이라는 점입니다. 예리한 심리 묘사 같은 것은 절대 나오지 않고 모든 주인공들은 본능에 충실할 뿐입니다.그래서인지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저는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거사를 준비해 나가는 과정은 꽤나 흥미롭습니다만 주인공들의 느낌을 함께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 제게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격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코엔 형제가 영화화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이 작품이 어떤 교훈이나 메시지 같은 것은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쫓고 쫓기는 자들의 숨막히는 대비는 코엔 형제의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두양반의 능력이라면 뭔가 더 재미있는 것들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게다가 원작에는 없는 적당한 유머를 섞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바보 케릭터로 만들 법한 단순 무식한 주인공도 등장하니까요.

작가인 게리 디셔는 호주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분입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와이어트가 주인공인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형사인 할 찰리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최근까지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분은 동화작가로도 명성이 높다고 하는군요. 냉혈한들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시는 분이 동화라니... 게다가 여러 상까지 받았다니... 참 다재다능한 분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