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직 컨디션을 제대로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잘 다녀왔습니다.
충분치 못한 정보에 열몇명의 대인원이 1100km가 넘는 거리를 자동차로 왕복하면서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갔다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성공적인 휴가였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했던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하고 싶었던 것을 충분히 못했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십수년만에 바닷속에서 첨벙거리며 일주일 내내 해수욕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모든 고생(?)이 상쇄되는 것 같습니다.

-1. 처음 친하게 지내는 몇몇 가족들이 모여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자고 결정을 했을 때부터 목적지는 크로아티아였습니다. 그 이유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것과 다른 나라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때문이었죠. 그래서 인터넷으로 모든 인원이 함께 지낼 수 있는 Ferienhaus(별장?)을 찾다보니 결국 슈투트가르트에서 1100킬로가 넘는 거리에 있는 달마티안 해안의 남쪽에 있는 Trogir 지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동은 각자의 차량으로 해결하며 식사를 위한 기본적인 재료도 가지고 가기로 하면서 준비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크로아티아 현지의 각종 정보를 알아내는데 열을 올렸고 아내는 식재료를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시내에 나가 몇몇 옷가지와 물놀이 용품을 사놨습니다. 주소는 있어도 숙소의 정확한 위치도 모르는채 - 구글어스를 아무리 뒤져도 안나오더군요. ㅠ.ㅠ 나중에 알고 보니 워낙 작은 길들이라 그 어느 루트플레너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는. -  인터넷에서 발견한 인근 해변들의 사진을 보며 기대감을 부풀여 가며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아이는 처음으로 가는 바다에 들떠 말할 것도 없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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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요일 저녁에 출발할 때만해도 예상 도착 시간을 다음날 늦은 오후쯤으로 정해놓고 쉬엄쉬엄 가기로 미리 얘기를 했습니다. 각 차량마다 무전기도 나눠주고 크로아티아까지 네비게이션이 작동하는 차량이 길을 안내하는 것으로 했었죠.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독일 국경을 넘을 때까지 벌써 4시간 정도가 걸리더군요. (Stuttgart-Ulm-Augsburg-Muenchen-Rosenheim) 구름도 별로 없는 밤하늘에 둥그런 보름달이 환하게 떠있는 밤풍경을 감상하면서 가고 있는데 달의 모양이 점점 이그러지더군요. 알고 보니 개기월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일그러져 가는 달을 벗삼아 계속 앞으로 나갔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알프스를 넘으며 수없이 만났던 긴 터널들(터널 길이가 7, 8 km씩 하더군요.)을 지나며 가다보니 어느 덧 슬로베니아 국경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차량이 사람과 짐으로 꽉꽉 채워진 상태라 차안에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사치이다 보니 온몸이 쑤시고 허리는 부러질 것처럼 아프더군요. ㅠ.ㅠ 졸음이 밀려오는 운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점점 지쳐가니 휴게소에 들려 쉬는 일이 점점 잦아졌습니다. 그래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혹시나 싶어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ㅠ.ㅠ 운전자를 격려하며 길을 재촉했습니다. 슬로베니아를 지나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자 저 멀리 조금씩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모두 거의 탈진 상태라 긴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한시간씩 눈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가다보니 갑자기 주위 풍경이 황량해지더군요.
저희가 타고 간 크로아티아의 고속도로는(A1) 높은 돌산들 사이의 능선을 따라 나있었습니다. 오른쪽을 보아도 왼쪽을 보아도 말그대로 황량하고 거친 돌산만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삭막한 풍경에 어울리는 가파른 오르막/내리막길이 반복되는 고속도로를 계속 달리다 보니 갑자기 멀리 파란 바다가 보였습니다.


아아.. 드디어 달마티안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여기를 지나 두어시간을 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ㅠ.ㅠ)

아이는 길고도 긴 여정속에서도 별로 지치지 않더군요. 달리는 차안에서도 힘들텐데도 짜증도 내지 않고 힘들다는 소리도 안하고 잘 참으면서 갔습니다. 대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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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돌밖에 안보여요.'


2. 어렵게 어렵게 도착한 숙소는 차한대가 겨우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들이 그물처럼 얽힌 가파른 비탈의 주택가(?) 가운데 있었습니다. 숙소가 있는 동네에서 제가 받은 느낌은 7,80년대 서울의 산동네가 연상이 되었다는 겁니다. 비탈진 동네에 3층 정도의 신축 주택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던 한남동의 어느 지역이 연상이 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정겹기마저 하더군요.
집 전체를 저희 일행이 빌렸는데 저희 가족은 가장 꼭대기 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베란다에 나가 밖을 보니 바다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감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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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아니라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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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너무 부셔요.'


3. 일주일동안 저희 가족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ㅠ.ㅠ 바닷가로 갔습니다. 비록 해가 지기 전 두세시간밖에 못있더라도 말이죠. 여기에 온 목적인 해수욕인데 후회하지 않을만큼 실컷 바닷물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꽤나 까무잡잡하게 탔고 자외선 차단 크림을 범벅이 되도록 발라줬음에도 아이도 꽤 탔습니다. 가장 신경을 쓰신 아내는 결국 별로 안탔지만 나중에는 자기만 하얗다고 투덜거리더군요. ㅠ.ㅠ

월요일 아침에는 Trogir에 시내 구경을 다녀왔고 오후에는 바닷가, 화요일, 수요일은 오전에는 책을 읽으며 빈둥거리다가 오후에는 바닷가, 목요일은 Split에 구경을 갔다 와서 역시 오후에는 바닷가, 금요일은 아예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바닷가에서 살았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바닷가는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밭입니다. 미리 이런 정보를 알고 물속에서도 신을 수 있는 신발(Aqua shoes)를 - 이름은 거창하지만 알고 보면 고무신에 가깝습니다. - 준비했는데 정말 유용하게 잘 썼습니다. 만약 맨발로 다녀야 했다면 고생을 많이 했을 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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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기만한 바닷가

비록 모래사장이 없어 전형적인 바닷가의 놀이들인 모래성 쌓기, 모래찜질하기 등은 하지 못했지만 너무도 맑고 투명한 아드리아해의 바닷물은 그 모든 것을 보상해주었습니다. 수많은 섬들 사이로 들쑥날쑥한 해안선 안에 자리 잡은 곳이다 보니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는 파도도 거의 없이 잔잔했으니 어린 아이와 함께 노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게다가 날씨는 매일 해가 쨍쨍하게 비쳐주니 비가 올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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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Ciovo섬의 Mastrinka라는 동네에서 지냈습니다. 숙소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로 바닷가였기에 다른 곳으로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시장이 있는 Trogir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아 위치는 아주 좋았어요.

아이는 신나게 놀다가 아늑한 바다바람을 즐기며 매번 낮잠을 즐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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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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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바다가 실제로는 이렇군....'

해가 천천히 지는 시간까지 누워서 뜨뜻한 햇볕을 즐기는 기분은 정말 좋았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천천히 읽으며 즐기고 있자니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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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어져도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이 크로아티아 사람들이고 가끔 슴가를 내놓고 일광욕을 즐기는 젊은 언니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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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지 말고 바닷가에서 살아요!'

광합성 놀이가 싫증나거나 몸이 너무 뜨거워지면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맑은 물 속으로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몇마리씩 지나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더군요. 그리고 가끔은 갑자기 작은 물고기떼를 만나 얘네들을 따라 해안선을 따라 둥둥떠서 쫓아가기도 했습니다. 잡아보고 싶은 생각도 들어 곤충망 같은 것으로 훓어보기도 했습니다만 워낙 동작들이 빠른 분들이라 영 잡히지 않더군요. ㅠ.ㅠ

바닷속에서 수영을 해본 지가 워낙 오래되서 깊은 물에 적응하는데는 이틀 정도 시간이 걸리더군요. 도저히 깊이가 가늠이 안되는 어둡고 짙은 파랑색의 바다가 익숙해지자 체력이 되는 한 멀리까지 나가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팔다리를 벌리고 누워 떠있는 상태로 - 제 스스로 제이슨 본 기본 자세라고 명명한. ㅠ.ㅠ - 하늘을 바라보며 잔잔한 물살에 몸을 맡기고 떠있을 때의 기분은 지금 이순간에도 다시 그리워집니다.
다음에 바다로 갈 때에는 꼭 기본적인 스킨스쿠버 장비(스노쿨링+오리발)을 챙겨오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조금만 연습하면 3-4m 깊이로 잠수하는 것도 할 수 있겠더군요.




Trogir와 Split를 구경한 이야기는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