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사실 그 먼 거리를 주파해서 갔는데도 고작 일주일만 머물렀다는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일행 사이에서도 농담으로 '일주일만 더 있다가지?'라는 말이 자주 나왔으니까요. 저 역시 아무 생각없이 푹 쉬기에는 일주일은 아쉬웠습니다. (한국에 있는 분들이 읽으시면 화내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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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쿨쿨~ 바닷가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늦잠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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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때는 이렇게..' (보정을 못했더니 사진이 엉망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쉬움이라면 매끼 식사 준비가 꽤 큰 부담이었다는 것이죠. 각자 식성이 다른 대인원이 먹어야 하니 매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가족만 갔다면 푸성귀만으로도 해결이 되었겠지만 꼭 밥+김치를 드셔야 하는 분들이 계셨기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메뉴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어요. 덕분에 매번 부엌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사람도 생겼고 약간 좋지 않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휴가에는 음식 준비가 필요없는 패키지형을 고려해보려고 합니다. 아침/저녁만 제공하는 정도라면 딱 좋을 것 같아요. 푹 쉬자고 간 휴가에 음식 준비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고민을 해야 했던 상황이 꽤나 아쉬웠습니다.


1.  이왕 먹는 얘기가 나왔으니 계속 해보겠습니다.
출발 전 크로아티아에 가면 무엇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아내와 얘기를 했습니다. 일단 바다에 접한 곳이니 싱싱한 생선이나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 이점은 일행의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싱싱한 활어회를 모두들 꿈꾸고 있더군요. - 아무래도 지중해이니 맛있는 올리브를 비롯한 여러가지 과일과 야채들을 저렴하게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바닷가임에도 생선/해산물을 구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더군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사람의 입맛에 맞는' 생선/해산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가기 전에 꿈꿨던 큼직하고 싱싱한 도미는 구경하기 힘들었고 횟감으로 쓸만한 신선도를 가진 아무 생선을 찾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숙소 인근 지역까지 수소문해서 찾아 다닌 결과 - 네, 일행중에 먹을 것에 목숨을 거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요. - 양식장에서 결국 이름모를 생선을 활어로 구해와 회로 먹었습니다. ㅠ.ㅠ 하지만 맛은..... 그냥 회구나 싶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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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되면 어시장으로 변모하던 곳. 도착해서 여독이 채풀리기도 전 새벽 5시에 나갔다가 크게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홍합은 잔뜩 사다가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반정도 가격으로 살 수가 있어서 두번이나 사다가 먹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도 좋아했습니다.

더 큰 실망은 사실 과일과 야채입니다.
사방에 심어져 있는 수많은 올리브 나무에서 나오는 올리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정도로 올리브가 비쌌습니다. 올리브 기름도 마찬가지였구요. 가격과 품질이 적당하면 큰 통으로 사오려던 꿈을 산산조각내더군요. ㅠ.ㅠ
과일과 야채의 종류는 독일보다도 못하고 질도 형편없었습니다. 온통 돌산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싱싱한 과일/야채를 기대했던 것이 무리였던 모양입니다.

달마티안 지방의 전통 음식은 아무래도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은 베네치아와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의 한계가 분명한만큼 음식들의 수준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생선과 해산물을 많이 먹긴 하지만 가슴을 적실만한 감동이 있는 정도는 아니라 저와 아내는 실망을 좀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가족에게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의 휴가가 필수가 될 모양입니다.

아래는 반나절 놀러갔던 크로아티아 제 2의 도시 Split의 구시가 근처에 있던 시장의 모습입니다.
시간이 넉넉했으면 이것저것 맛을 보며 유유히 놀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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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지는 못해도 노천시장이 주는 느낌은 언제나 각별합니다.



3. 일주일동안 묵었던 Ciovo 섬 주위에서 구경하러 갈만한 곳은 Trogir와 Split가 있었습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Dubrovnik도 가고 싶긴 했지만 200km가 넘는 거리라 엄두를 내기가 어려워 가볍게 포기했습니다.

아드리아의 동쪽 연안, 즉 달마티안 해안은 자고로 해적의 소굴로 유명한 곳입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바람을 의존해 항해해야 했던 시절만 해도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변하는 지중해에서는 연안을 따라 항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하는군요. 여기에 복잡한 모양에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달마티안 해안은 작고 빠른 배를 가진 해적들이 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상선들을 털고 도망가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육지에 상륙해서는 높고 험한 바위산속으로 도망가버리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고대 로마시대때부터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까지 해적소탕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달마티안 지방에는 오래되고 유명한 항구도시들이 많습니다. Trogir, Split 모두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발달한 도시입니다.

Trogir는 중세 시대와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의 오래된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구시가가 유명한 곳입니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인류의 유산 목록에 들어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기껏해야 폭이 500m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오래된 돌집들 사이에 난 좁은 길들을 따라 걷다 보면 때가 덜묻은 오래된 소도시의 매력이 한껏 살아나는 곳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집들은 지중해 연안지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두꺼운 돌을 쌓아 만들었고 안쪽으로는 작은 정원을 꾸며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행을 데리고 다니는 가이드 역할을 하느라 많은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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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성 로렌스 성당' 성당 입구(Portal)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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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지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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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집들의 문과 창덧문들이 이런 색으로 칠해져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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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집들이 덧문까지 닫아놓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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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쪽으로 면한 산책길은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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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외국'같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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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아주 좋아 사진찍기에는 좋았지만 걷기에는 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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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항구지만 수많은 요트, 유람선들이 빽빽하게 정박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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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트를 타고 한가하게 다니는 휴가도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트를 가진 친구를 꼬셔서라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 알고보니 이 친구도 저희보다 일주일 전에 Trogir에 왔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요트를 타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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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느낌이겠죠.


4. Split는 Trogir에서 약 25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크로아티아 제 2의 도시입니다.
역시 로마/베네치아의 영향을 받았고 구시가에 있는 고대 로마 황제의 궁전이 유명합니다. 이탈리아에 가지 않고도 로마 유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간만에 로마식 아치며 코린트식 기둥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하지만 Split가 제게 준 첫인상은 '부산'이었습니다. 국도에서 자동차로 천천히 다가가면서 보니 언덕들을 따라 세워진 높은 아파트며 항구의 정경이 부산을 연상시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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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it도 항구쪽으로 난 산책길이 인상적입니다. 다만 좀 더 큰 도시이다 보니 차들도 사람들도 훨씬 더 많았습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고대 로마 황제 궁전의 외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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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치들이 늘어선 좁은 길을 따라 구시가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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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거처했다던 곳입니다.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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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종탑에 아이를 데리고 낑낑거리고 올라가 바라본 Split의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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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탑입니다. 높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기에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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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유적은 언제나 저를 흥분시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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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큰 돌을 깔아놓은 바닥은 걷기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역시 로마인!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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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Trogir 보다는 좀 더 넓은 바다를 볼 수가 있더군요. 저희 일행은 여기에서 배를 타고 Ciovo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대략 30분 정도가 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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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에서 바라본 Split입니다. 멀리 높은 산맥이 보이십니까? 저 위로 고속도로가 다닙니다. ㅠ.ㅠ


5. 역시 일주일이라는 기간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길게 가야할까봐요. 이번에 함께 했던 일행들과 또 같이 가게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잘 쉬고 비교적 잘 먹고.... 좋은 휴가였습니다. 크로아티아는 다음에 한번 더 가게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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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6. 돌아오는 길은 솔직히 다시 돌이켜 보고 싶지도 않을만큼 괴로웠습니다. ㅠ.ㅠ
토요일 아침 7시에 출발했는데 집에 도착한 시간은 일요일 아침 6시더군요.
좀 막힐 것이라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닥치고 보니 그게 장난이 아니었어요.

처음으로 막힌 것은 크로아티아에서 절반정도를 왔을 때입니다. 아직 미완성인 터널 덕분에 2차선이 갑자기 1차선으로 줄어드는 곳이었지요. 햇볕은 내려쬐고 차는 거북이 걸음으로 엉금엉금. 터널을 지나니 씽씽 잘만 달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까지는 근 한시간동안 꾸물거려야 했죠.

두번째로 막힌 곳은 Zagreb에 거의 다 도착해서 톨게이트였습니다. 그래도 여기는 생각보다 빨리 빠져나갈 수 있었어요.

그 이후 슬로베니아는 아무런 정체없이 무사히 빠져나갔습니다. 중간에 고속도로가 아닌 곳이 갑자기 등장해 조금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이때만 해도 모두들 여유가 있었더랬죠.

세번째로 막힌 곳은 슬로베니아와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에 와서입니다. 유료 터널이 앞에 있었기 때문인데 차들의 정체가 장난이 아니라 옆길로 새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알프스의 고개를 넘으며 국경을 지났습니다. 오스트리아로 들어가니 길은 막히지 않았지만 좁은 산길이라 속력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양 옆으로 펼쳐지는 멋진 알프스의 모습에 모두 감탄하며 갔더랬죠. 그래서 오스트리아에서 1박을 하자는 의견도 나와 거의 실행에 옮겼습니다만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우선은 비가 심하게 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는..

네번째로 막힌 곳은 Salzburg 방면의 오스트리아의 A30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녁을 간단히 먹고 출발했으니 망정이지 1박을 위해 호텔에 가서 저녁을 먹으려 했다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정체는 거의 환상적일 정도였는데 10km를 가는데 무려 두시간반이 걸리더군요! 우리가 가야할 길은 무려 600km가 남아있었는데 말이죠. 나중에는 모두가 지쳐 터널 입구에서 산길로 도망쳤습니다. ㅠ.ㅠ 이미 날은 완전히 져서 컴컴한 밤인데 가파른 산길을 넘자니 아주 죽을 맛이더군요. 결국 1박의 계획은 취소하고 모두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도저히 체력이 따라주질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힘들게 집에 도착해서는 짐도 제대로 안풀고 침대에 누워야 했습니다.
아아... 기껏 잘 쉬고 와서 다시 피곤이라니......

다음 휴가는 꼭 비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