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도 추석이고 음식과 관련된 포스팅이 너무 뜸했던 것 같아 올려봅니다.
아쉽게도 레시피는 없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은 독일어로 Schwaben(슈바벤) 사람들의 지역입니다. 이제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이지만 이래저래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바덴지방(하이델베르크-칼스루에-프라이부르크를 아우르는 지역입니다.)과는 이웃사촌인데도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가진 곳이 뷔르템베르크 지역을 거의 차지하는 슈바벤입니다. 슈바벤 지역은 그밖에도 바이에른의 일부 지역까지도 포함하는데 예를 들자면 뮌헨 바로 옆에 있는 아욱스부르크(Augsburg)와 알고이(Allgaeu)  일부도 사실은 슈바벤 사람들의 동네입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 지금도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은 슈바벤들의 자기 고장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은 정말 대단합니다. 재료와 조리법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기발하고 독특한 발상은 슈베비쉬(schwaebisch) 음식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저는 슈베비쉬 음식과 프랑켄 음식(뉘른베르크-뷔르츠부르크 지역. 지금은 바이에른 주입니다만 바이에른과는 좀 다른 전통과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이 독일 음식중에는 가장 훌륭한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독일 전통 음식은 전반적으로 단순하고 투박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두 지방의 음식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만큼의 흥미로운 맛을 자랑합니다.

Schwäbische Speisekarte (슈베비쉬 음식 메뉴판)

Der wo ons möcht kenne lerna,
onser Wese will erfassa,
der muass mit ons zammasitza
ond mit ons sich schmecka lassa:
Knöchla, Sauerkraut ond Spätzla,
Mutschla, Sääla, Kipf ond Brezla,
Hutzelbrot ond Laugawecka,
Schwartamaga, Peitschastecka,
Gaisburger Marsch ond viel Salätla,
Pfitzauf, Zemmetstern ond Flädle,
Metzelsupp ond Zwetschgaschnitzla,
Schneiderfleck ond Buabaspitzla,
Guatsla, Hefekranz ond -zöpfla,
Fasnetküechla, Gsälz ond Knöpfla,
Streuselkuacha, Supp ond Soss,
Maultascha, Dampfnudla riesagroß!
Guglhopf, Sprengerle ond Waffla,
Leber-, Bachstoi'-, Luckeleskäs.
Älles dees, en Abständ gnossa,
 ischt ons Schwoba artgemäß.


Friedrich E. Vogt

(슈바벤 사투리로 쓰여져 독일어를 좀 하시는 분들도 해석하기가 힘드실 듯합니다.
시의 내용은 여러 슈베비쉬 음식을 운율(Reim)에 맞춰 소개한 것입니다.)


슈바비쉬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매우 축축하다는(nass) 점이고
다른 하나는 계란을 넣은 밀가루반죽 음식(Eierteigwaren)이 발달했다는 것입니다.

축축하다는 얘기는 사실 독일 표현을 직역한 것인데 슈바벤 사람들만큼 국물을 좋아하는 독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들의 음식은 육수에 뭔가를 집어넣던지 아니면 소스를 흥건하게 부어 먹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흥건한 소스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슈베비쉬 국수인 슈페츨레 나 슈바벤식 감자샐러드가 필요한 것이죠. 그 이유는 이것들이 소스와 함께 비벼먹기에(!)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슈바벤식 감자샐러드는 삶은 감자에 옥수수, 오이 등을 넣고 마요네즈를 섞은 북독일식 감자샐러드와는 전혀 다릅니다. 삶아도 부서지지 않는 감자를 껍질채 삶은 후 뜨거울 때 껍질을 벗겨 얇게 썰어 다진 양파를 약간 넣고 여기에 육수, 식초를 부어 섞으면서 소금과 후추로 맛을 내는데 이때 약간 흥건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다 섞은 후에는 적어도 30분 정도는 두어야 제대로 맛이 납니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입니다.

슈페츨레(이동네 사투리로는 Schbäddzle)는 이미 소개한 대로 슈베비쉬 음식에서는 단골 메뉴입니다. 독일의 다른 지방에서는 보통 감자를 많이 먹습니다만 슈바벤 지역을 비롯한 남부 독일에서는 슈페츨레를 비롯한 밀가루음식을 더 많이 먹습니다. 다른 밀가루 누들 음식과는 달리 말려서 먹지 않고 직접 만들거나;; 냉장 판매하는 생면류 밖에는 먹을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수제비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어쨌거나 십년여를 이곳에 살면서 수없이 먹으면서 가까워진 제가 좋아하는 슈베비쉬 음식의 베스트 5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은 슈투트가르트를 비롯한 슈바벤 지방의 토속 음식점에서라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음식들입니다. 다른 지방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맛은 보장하지 못합니다.


5위. Gaisburger Marsch (가이스부르크의 행진)

슈투트가르트 지역의 이름을 딴 가이스부르거 마르쉬는 양지머리와 사골을 베이스로 끓인 육수에 감자, 슈페츨레 그리고 갈색으로 볶은 얇게 썬 양파를 넣은 스튜의 일종입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국물 음식을 좋아하는 슈바벤 사람들은 다양한 종류의 스프와 스튜를 요리해 먹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Gaisburger Marsch

좀 이상해 보이는 음식 이름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슈투트가르트 동쪽의 Gaisburg라는 동네에 'Bäcka-Schmiede'라는 식당에서 근처 넥카강 강변에 주둔중인 군대의 장교 지망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는데 이 식당에서 여러 재료를 넣고 끓인 스튜가 맛이 좋아 많은 병사들이 끼니때가 되면 식당으로 행진해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해 보입니다. 이 식당은 지금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축축하고 으슬으슬하게 추운 겨울에 이거 한그릇이면 속이 뜨뜻해져서 기분이 아주 좋아집니다. 게다가 내용이 푸짐해 한끼 식사로도 그만이죠. 먹다 보면 밥 반공기가 간절히 생각날 때도 있습니다.


4위. Zweibelrostbraten (양파를 얹은 슈바벤식 스테이크)

보통 슈바벤 사람들이 한 식당의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로 삼는다는 음식입니다.


Schwäbischer Rostbraten

소고기나 송아지 고기를 기름을 흠뻑 두른 팬에서 구운 후 검갈색으로 볶은 양파를 위에 얹어 먹는 고기 요리입니다. 여기에 사우어크라우트(독일식으로 절인 양배추)와 슈페츨레를 함께 먹는 것이 보통인데 식성에 따라서는 슈페츨레 대신 볶은 감자를 먹기도 합니다.

굉장히 기름지고 양도 어마어마 합니다만 그만큼 맛이 좋습니다. 슈바벤 사람들도 이 음식만큼은 밖에서 먹는 것이 보통인 것 같고 - 집에서 해먹는 사람을 아직 만난 적이 없습니다. ㅠ.ㅠ - 보통의 식당에서는 가장 비싼 음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기를 사랑하는 분이라면 필히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 하겠습니다. 잘 못하는 식당이라면 고기가 질길 수 있지만 잘하는 식당의 것은 연하면서도 강력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3위.
Schwäbische Maultaschen

마울타쉐는 직역하면 '입구가 있는 주머니'정도가 되겠습니다만 간단히 말하면 슈바벤식 만두입니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에게 마울타쉐는 메르세데스 벤츠(이곳 사람들은 보통 다임러라고 합니다만), 체펠린(비행선을 발명한 체펠린 박사. 독일에서는 그래서 비행선을 그냥 체펠린이라 부릅니다.), 횔데린, 뫼리케 등과 함께 슈바벤을 대표하는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계란을 듬뿍 넣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편 후 여기에 소세지의 속, 다진 고기, 시금치, 파슬리, 양파, 계란에 무스카트, 마요란 등의 향신료를 넣어 만든 속을 올린 후 반죽을 닫아 알맞은 크기로 자르면 됩니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직접 해먹은 적은 한번도 없고;; 보통은 정육점 등에서 사다 먹습니다. 일반 슈퍼의 냉장코너에서 파는 것도 먹을 만합니다.

마울타쉐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슈투트가르트 인근 지역의 Maulbronn의 수도원이라는 설이 가장 유명합니다. 수도원의 수사들이 금육을 해야 하는 금요일이나 사순절때 고기가 먹고 싶어
하느님이 봐도 들통이 안나게;;; 고기를 갈아 밀가루 반죽으로 싸서 숨겨 먹은 것이 마울타쉐라는 우스운 설도 있습니다.


Schwäbische Maultaschen

우리나라에서도 만두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먹는 것처럼 슈바벤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고기국물에 넣어 먹고(en dr Briah),  삶아서 기름에 볶은 양파를 얹어 먹고(gschmälzd) , 토마토 소스와도 먹고(uff Idalienisch),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워 먹고(uff Schweizer Art),  가늘게 썰어 양파, 계란 등과 함께 볶아 먹고(gröschded)... 물론 마울타쉐 속에 무엇을 넣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죠. 야채만 넣기도 하고 연어를 넣기도 하고...

급히 뭔가 먹어야 할 때 편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 저희 집 냉장고에는 언제나 마울타쉐를 사둡니다. 저는 계란과 양파와 함께 볶아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하지만 좋은 고기국물이 있을 때에는 만두국처럼 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맛있는 빵 한조각이라도 있으면 더욱 잘 어울리죠.


2위. Linsen mit Spätzle und Saitenwurst

슈바벤 사투리로는 'Linsa mid Schbäzla ônd Soidawirschd' 라고 말하는 이 음식은 많은 슈바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는 것입니다. 여기서 Linse는 지중해 연안/소아시아지방이 원산이 콩의 일종입니다. 유럽의 동화책 등에서 가끔 보이는 '붉은 콩 요리'가 바로 이 Linse를 가지고 요리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Linsen mit Spätzle und Saitenwurst

여기서는 Linse 콩을 밤새 불려서 고기 육수에 넣고 익을 때까지 끓인 후 - 이때 펄펄 끓으면 절대 안됩니다. - 훈제한 돼지비계, 양파를 넣고 더 끓이는데 기호에 따라서는 마늘, 월계수잎 등을 넣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슈페츨레와 Saitenwurst (독일에서는 보통 Wienerwurst라고도 하는) 라고 하는 소세지를 함께 곁들여 먹습니다.
먹을 때에는 적포도주 식초를 약간 뿌리는데 이는 향미를 돋우면서도 소화 촉진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저 역시도 이 음식을 아주 좋아해서 한달에 두세번은 꼭 먹는 것 같습니다. 그냥 보기에는 별로 맛있을 것 같지 않지만 순박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1위.
Schwäbische Laugenbrezel

저에게 부동의 슈베비쉬 음식 넘버원은 슈바벤식 브레첼입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슈바벤들에게 브레첼이 없는 생활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도 먹고, 간식으로도 먹고, 심지어 회사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어 같은 부서 사람들끼리 간단히 젝트(독일식 스파클링 와인)을 한잔씩 할 때도 라우겐브레첼은 빠지지 않습니다.

이들의 브레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전 슈투트가르트 시장이자 슈바벤출신의 유명인사인 만프레드 롬멜(2차대전 때 롬멜 장군의 아들입니다.)이 지은 다음 시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Der Schwaben Klugheit? Dieses Rätsel,
die Lösung heißt: Die Laugenbrezel.
Schon trocken gibt dem Hirn sie Kraft,
Mit Butter wirkt sie fabelhaft,
erleuchtet mit der Weisheit Fackel,
noch das Gehirn vom größten Dackel !

(슈바벤의 똑똑함? 이 물음의
답은 바로: 라우겐브레첼.
마른 상태에서도 두뇌에 힘을 주고,
버터를 바르면 환상적이며,
지혜의 불꽃이 환하게 켜지는데,
심지어는 커다란 닥켈의 뇌마저도!)

요새는 대형 체인 제빵업체들 덕분에 대부분의 독일에서 브레첼을 먹을 수 있습니다만 진짜 제대로 된 슈베비쉬 브레첼은 작고 오래된 슈바벤 지방의 빵집에서만 먹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슈투트가르트 시내만 가도 이미 체인빵집들이 점령해 버려 제대로 된 브레첼을 발견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전 시내에 살 때 집근처에 있던, 정말 코딱지만한 빵집에서는 정말 제.대.로 된 브레첼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빵집은 토요일 아침에 가면 길밖으로 까지 2,30 미터씩 줄을 서 기다려야 빵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빵집도 100년정도가 되서 정말 맛있는 슈베비쉬 브레첼을 살 수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일요일 아침에는 언제나 빵집에서 갓구운 브레첼을 사다가 먹습니다. 아무리 일어나기가 싫고 나가기가 싫어도 브레첼만큼은 제가 나가 사옵니다. 갓 구워 아직 따끈따끈한 브레첼을 칼로 통통한 쪽을 반으로 잘라 버터를 듬뿍 발라 먹는데, 통통한 쪽은 껍질은 약간 질긴 듯 바삭하며 안은 보들보들 촉촉하며 아주 부드럽지만 다른 쪽(보통 '발'이라고 표현합니다)은 완전히 바삭바삭하면서 고소한 맛이 납니다. 전 바삭바삭한 부분만 잘라 노른자는 거의 익지 않은 계란 반숙과 함께 먹습니다. 저 바삭한 부분으로 노른자를 찍어 먹는 맛이란!!

브레첼에 대해서는 아직 할 얘기가 많이 남았으니 다음에 다시 따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Guten Appetit!


* 이 포스팅을 위해 독일 위키페디아 Schwabissimo 를 참고하고 글과 사진을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