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인 이리나를 잃은 지 얼마 안된 아르카디 렌코는 자신의 오랜 숙적(?)이자 친구인 전 KGB 요원 세르게이 프리불루다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쿠바의 하바나로 옵니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한 익사체만 확인하면 렌코의 일은 끝나는 것이지만 쉽게 죽지 않을 듯 했던 프리불루다의 죽음을 믿기가 어려운 렌코는 세르게이의 임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갑자기 공격을 받아 죽을 뻔 하게 되자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시키기 시작합니다...

사실 지난 휴가 기간동안 읽으려고 크루즈-스미스의 소설들을 몇권 빌려놨는데 이 책만 깜빡 잊고 도서관에 돌려주지 않아 그냥 읽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ㅠ.ㅠ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손도 못대고 그냥 돌려준 'Red Square(독일제명:Labyrinth)가 아쉬워지는군요. 다시 빌려다가 읽어야겠습니다.

이제는 거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버린 아르카디 렌코가 추운 러시아나 베링해가 아닌 하루종일 태양이 내려쬐는 쿠바의 하바나를 배경으로 친구의 의문스러운 죽음 뒤에 얽힌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입니다. 여전히 담배를 많이 피우고 - 이 작품에서는 쿠바산 시가에도 맛을 들이게 됩니다. - 몸은 점점 굼떠지지만 아르카디 렌코의 끈질긴 수사력은 여전히 그 빛을 발합니다. 비록 악당들을 압도적으로 물리치는 일은 없지만 수없이 많은 공격을 받아 곤란한 상황에 놓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단서들을 찾아내 추리의 파편들을 맞춰나가며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냅니다.

이 작품은 콩산주의 국가들이 거의 모두 무너져 내린 시점을 배경으로 아직도 혁명 지도자 카스트로가 여전히 자신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쿠바의 모습을 아주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하바나와 그 항구의 모습들은 물론이고 그곳에 사는 쿠바인들의 느긋한 생활 모습과 이들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쿠바의 음악과 춤 등의 문화에 대한 사실성과 정확함은 거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여기에 작가는 혁명정신 아래 거의 홀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버티고 있지만 사실은 이웃 나라인 미국과 멕시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점점 변해가는 쿠바의 사회상도 잊지 않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이라도 들으며 읽었으면 아마 느낌이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은 푹 빠져서 정신없이 읽어나갔더랬습니다. 지난 번에 읽은 'Polar Star'가 좀 읽기 힘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쉽게 잘 읽혀집니다.

렌코가 활약하는 다른 작품들이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