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의 새로운 여행

Musik 2008. 11. 17. 22:34 posted by srv

70년대 중반 결성되어 80년대 중반까지 Toto, Foreigner 혹은 Boston 과 함께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저니라는 그룹이 있습니다. 음악 좀 들으시는 분들은 이 밴드의 창단 멤버이자 기타리스트인 '닐 숀'의 이름을 떠올리실테고 여기에 전성기 시절 보컬리스트였던 '스티브 페리'의 이름을 떠올리실 껍니다. 여기에 저니를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키보디스트인 '조나단 케인'의 이름도 기억하실 껍니다.


Journey - Open Arms (1982)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저니의 대표곡중 하나입니다.

저니가 81년에 내놓은 'Escape' 앨범은 이 밴드의 역사에서 가장 히트했던 음반입니다.
전 이 앨범을 한창 팝음악을 듣기 시작하려는 무렵에 친한 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이먼 앤 가펑클, 퀸, 프린스를 처음으로 듣기 시작했던 그때 멜로딕하면서 시원시원한 저니의 음악은 말그대로 귀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저니의 데뷔 앨범부터 하나하나 구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제 소니 워크맨의 단골 손님은 역시 Escape 앨범이었고 아마 수백번 이상 듣지 않았나 싶습니다. ^^;;


Journey - Wheel in the Sky (80년대초, 독일 ZDF)
이곡은 지금도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스티브 페리의 호소력 짙고 독특한 음색의 목소리는 거의 저니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었지만 사실 저니의 핵은 어린 10대 시절 이미 에릭 클랩튼의 제의를 받기도 하고 산타나와 함께 작업을 한 기타리스트 닐 숀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에게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사운드의 매력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분이 이 양반의 기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분 연주의 매력은 무엇보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스티브 페리의 목소리만큼이나 호소력 있는 사운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80년대에는 깁슨 레스폴 골드탑을 썼지만 지금은 PRS를 거쳐 잭슨에서 나오는 자신의 시그네처 시리즈도 함께 사용하고 계시답니다.


Journey - Separate Ways (83년, 일본 무도관)
딱 80년대스러운 사운드에 닐 숀의 솔로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밴드가 그렇듯이 저니 또한 고집으로 따지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두 사람인 닐 숀과 스티브 페리의 갈등때문에 충돌도 많았고 따라서 좋지 않은 소문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스티브 페리와 닐 숀의 잦은 충돌은 결국 밴드의 해산으로 이어졌고 저 역시 8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하드록과 헤비메틀의 세계에 푹 빠지면서 저니는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줄기차게 faster, heavier만을 부르짖던 제게 달콤하고 팝적인 저니의 음악은 더이상 귀에 들릴 리가 없었죠.


Journey - Faithfully (1983, 일본 무도관)
저니를 대표하는 발라드곡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나고 나이가 먹으니 예전에 좋아했던 저니의 음악들이 가끔 생각나더군요.
'Don't stop believing'을 들으며 영어 단어를 외우던 시절이나 'Separate Ways'를 들으며 호쾌한 기타에 감동했던 그 시절이 말이죠. 그래서 베스트 음반을 하나 사다가 청소나 정리를 할 때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곧잘 들었습니다. 지금도 라디오에서 가끔 저니의 노래가 나오면 언제나 반가운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경험이란 것은 무척이나 오래가는 법인 모양입니다.

엊그저께 음악듣기를 좋아하는 잘 아는 형님의 자동차를 타고 갈 일이 있었는데 저니의 CD를 듣고 계시더군요. 아니 갑자기 저니는 왜? 하고 묻는 제게 그동안 몰랐던 저니에 대한 기막힌 스토리를 들려주시더군요.

1995년 저니는 재결성하여 새 앨범도 내고 투어도 하면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래미상 후보에도 오를 정도로 멋진 재기에 성공하지만 1997년 건강상의 이유로 스티브 페리는 다시 밴드에서 나갑니다. 이후 Steve Augeri, Jeff Scott Soto 등의 보컬리스트가 페리의 뒤를 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2007년에 닐 숀은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닐 숀은 우연히 YouTube에서 동남아의 나이트클럽에서 저니의 노래를 커버해 연주하는 필리핀 출신의 어느 밴드를 발견합니다. 그는 스스로의 눈과 귀를 믿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이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스티브 페리와 너무도 흡사한 목소리와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 밴드의 다른 연주 모습을 찾아보고 이 친구의 목소리가 진짜라는 것을 확신한 닐 숀은 이 밴드의 클립들을 올린 이와 접촉을 하여 보컬리스트인 Arnel Pineda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그에게 저니의 오디션을 응하지 않겠냐는 내용의 메일을 보냅니다. 하지만 아넬 파이네다는 이 메일이 장난을 치는 메일인 줄 알고 무시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닐 숀의 끈질긴(?) 노력으로 파이네다는 이것이 장난이 아님을 깨달고는 닐 숀과 연락하게 되고 곧 미국으로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떠납니다. 비자를 받으려고 가서 미국에 가려는 이유가 '저니의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함'이라 설명하자 미국 공무원들이 믿지 못하고 x신 취급하기도 했다는 얘기는 거의 클리쉐에 가깝습니다만 어쨌든 그는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고 2007년 저니는 필리핀 출신의 보컬리스트 아넬 파이네다가 새로 영입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합니다.


The Zoo - Faithfully
아넬 파이네다가 어느 나이트 클럽에서 저니의 Faithfully를 부르는 모습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기에 소질이 있었던 아넬 파이네다는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에서는 이미 좀 알려진 보컬리스트였습니다. 하지만 1967년생의 파이네다는 어린 시절 가난에 허덕이다 못해 길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빈병과 폐품을 줏어다 팔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과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십대 시절부터 밴드 생활을 시작해 필리핀에서 열리는 각종 컨테스트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인 음악 생활을 시작합니다. 필리핀과 홍콩을 오가며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하는 생활이 계속되었고 힘든 생활을 견디지 못해 몸이 상하기도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필리핀에서는 나름대로 인기가 있던 실력파 보컬리스트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히트곡은 그다지 많지 않고 에어로스미스, 저니, 서바이버 등 유명한 밴드의 곡을 커버하는 수준이었죠.


The Zoo - Black Dog (2007)
이럴 때는 흔한 카피 밴드를 보는 느낌도 듭니다만 보컬 하나는 제대로군요.

저니의 정식 멤버가 되면서 그는 2008년 2월 저니와 함께 새로운 앨범을 발표합니다.  앨범 발표와 동시에 칠레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발에 저니는 자신들의 새 보컬리스트와 함께 무대에 오릅니다. 저니의 팬들은 반응은 반반이었습니다. 스티브 페리보다 낫다면서 열광하는 팬들과 페리의 목소리와 흡사한 동양인 보컬리스트를 못마땅하게 보는 팬들로 갈린 것이죠. 하지만 새 앨범 'Revelation'은 빌보드 앨범차트에 오르면서 조만간 플레티넘을 기록할 지도 모를 정도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Journey - Faithfully (2008, 칠레)
귀를 감고 들어보세요. 스티브 페리와 구분하실 수 있으신가요?

새 앨범은 11곡의 신곡을 담은 CD와 11곡의 '베스트'를 아넬 파이네다와 새로 녹음해 담은 CD를 함께 묶은 더블 앨범 형식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11곡의 베스트 부분입니다. 닐 숀을 비롯한 기존의 저니 멤버들이 파이네다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정도인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되는데 여기에서 파이네다는 자신의 매력을 한껏 보여줍니다. 미국에는 여기에 라스 베가스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은 DVD가 함께 나왔다고 합니다. 저니는 현재 새앨범의 투어가 한창인데 일본과 필리핀 등에서도 공연을 가질 예정이라 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넬 파이네다는 현재 필리핀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Journey - Separate Ways (2008, 칠레)

이런 사연과 함께 새 앨범에 함께 들어있는 새로 녹음한 '베스트'들을 들었습니다.
그냥 얼핏 듣기에는 스티브 페리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라이브 영상들은 그래도 차이가 좀 느껴집니다만 음반에서는 훨씬 더 깨끗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사실 저도 처음에는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멋지더군요. 어떤 곡에서는 스티브 페리와는 다른 매력을 들려주기도 해서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저니의 음악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겠죠.


Journey - Wheel in the Sky (2008, 칠레)

세상에는 가끔 믿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긴 합니다만 저니와 아넬 파이네다의 스토리는 정말 놀랍습니다.
저에게는 단지 추억의 밴드인 저니가 이런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스티브 페리같은 음색의 목소리라니! 그것도 근 40년의 인생동안 고생만 했던 동양인한테서 말이죠.

아무래도 저니의 새 앨범을 한번 들어봐야겠습니다.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어떤 음악을 들려줄 지 기대가 되는군요. 어쩌면 신곡들 모음보다는 히트곡 모음을 더 자주 들을 지는 몰라도 늦은 나이에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룬 아넬 파이네다의 인간 승리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인생, 정말 모르는 거에요.


Journey - Open Arms (2008, 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