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카터는 30대 초반의 유능한 엔지니어입니다.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공사비 횡령의 누명을 쓰고 실형을 선고 받아 감옥에 갇힙니다. 그 안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잔혹한 세상을 경험한 그가 6년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출옥을 하니 그때까지 자기를 기다리던 아내가 지인과 바람을 피워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을 감옥으로 보낼 지도 모르는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제가 읽은 책은 올해 초에 중고서점에서 별생각 안하고 싸게 줏어온 옛날 것이라 위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가진 책의 표지가 위의 것보다는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군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작품은 제가 처음으로 '읽은' 하이스미스 여사의 작품입니다.
리플리 시리즈는 손에 쥐었다 놓았다 한 것이 벌써 몇번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직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도 참 미스테리 합니다.) 어쨌거나 저의 이상한 하이스미스 공포증(?)을 없애기 위해 하이스미스라는 이름만 보고 읽기 시작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배경이 60년대 초반이다 보니 작품을 읽으며 머리 속에 그려지는 광경들은 마치 고전 영화의 한장면처럼 그려졌습니다. 주인공들도 뭔가 어색한 말투로 대화하는 것 같았더랬죠. 주인공인 필립 카터는 왜 그런지 스티브 맥퀸의 얼굴로 떠오르더군요. 아내인 헤이즐 역으로는 '겟어웨이'에서 맥퀸과 공연했던 앨리 맥그로가 생각났구요. (역시 이유 불문입니다.)
이 작품은 어느 유능하고 선량한 시민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복역하면서 차갑고 냉정한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을 담담하게 그려나갑니다. 특히 감옥에서 출소된 후 카터의 모습은 더이상 작품 초기의 카터와 유사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죠. 하이스미스 여사는 그가 변하게 되는 이유를 비교적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데 마지막 결말은 그다지 공평하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한 사법체제에 대한 풍자로 읽혀집니다. 물론 요새같은 세상에야 CSI가 출동하면 단번에 누가 범인인지 알아낼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의 시대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겠지요.
작품의 절반정도까지는 운이 지지리도 없었던 카터의 감옥 생활에 대해 이야기 되는데 여기에서 카터는 우리가 감옥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어려움들을 모두 경험합니다. 하이스미스 여사는 여기에서 감옥은 사람을 파멸시킬 뿐이지 절대 갱생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카터는 감옥 생활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우면서 치열하고 냉혹한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를 몸에 익히게 되고 출옥하면서 이를 적절히 이용하게 됩니다. 어쨌거나 이 부분을 읽으며 캐쉬의 'San Quentin' 앨범을 듣고 있자니 감동이 두배였습니다.
짧은 분량의 작품이라 그런 지는 몰라도 몇몇 의심쩍은 부분도 있지만 - 예를 들어 카터가 누명을 쓴 것이나 초반부 그가 받았던 고문(?)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없습니다. 또한 그는 감옥 안에서 '유도'를 배우는데 나중에 '손날'을 이용해 사람을 팹니다. 그가 배운 것은 유도가 아니라 가라데가 아니었을까 싶군요. - 일단 하이스미스 작품에 대한 공포증은 많이 없어진 상태입니다. 다음에는 리플리 시리즈에 한번 도전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