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해리스 - Enigma (1995)

Bücher 2008. 12. 9. 21:15 posted by srv




톰 제리코는 캠브리지 출신의 수학자이지만 2차대전이 한창인 1943년 현재 독일군이 통신에 사용하는 암호를 풀기위한 영국 정부의 조직 - 통상 Bletsley Park이라고 불린 곳 -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일 해군이 이용하는 'Shark'라고 불리우는 암호 체계를 풀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휴양중이었으나 갑작스럽게 독일군이 암호를 바꾸면서 다시 블리츨리 파크에 불려 나가게 됩니다. 여기에 자신이 좋아했던 클레어 라는 여인은 별다른 이유없이 그와 이별을 통보하고 행방불명되어 그는 샤크를 뚫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한편으로는 클레어의 행방을 찾아 나서기 시작합니다...

로버트 해리스의 두번째 장편인 '에니그마'의 주인공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운용했던 암호 체계를 의미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통신문을 암호화시키고 이를 해석하는 기계이 이름이 에니그마입니다. Enigma라는 말이 그리스어로 수수께끼라는 뜻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독일군이 에니그마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정도였는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도대체 어떤 원리의 암호이길래 그럴까 해서 위키를 뒤지니 설명이 아주 잘 나와 있더군요. 암호 해독을 위해 왜 수학자가 필요했는지 궁금하신 분이나 2차대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번 찾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덕분에 오랜만에 수학공부(?) 좀 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한국말로 된 글은 없을까 찾아보니 좋은 글들이 많아 그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Periscope의 운영자님이 쓰신 글입니다.
에니그마와 대서양 전투의 정보전 (1)
에니그마와 대서양 전투의 정보전 (2)
에니그마와 대서양 전투의 정보전 (3)
에니그마와 대서양 전투의 정보전 (4)
에니그마와 대서양 전투의 정보전 (5)

하지만 이 작품을 읽는데 에니그마의 원리에 대해서 잘 몰라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작품 속의 스토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주인공인 톰 제리코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독일군의 암호체계를 뚫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잠깐동안 사귀었던 클레어라는 여인의 행방을 찾기 위해 클레어와 함께 살던 해스터 월리스 - 그녀도 마찬가지로 블리츨리 파크에서 일하는 여성이죠. - 과 함께 뛰어다니는 부분이죠. 따라서 이 작품의 스릴은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암호 풀이 작업과 어쩌면 적군의 스파이일지도 모를 클레어의 행방을 쫓아 가는 부분이 교묘하게 얽히면서 생겨납니다.

여기에 로버트 해리스는 오랫동안 끌어온 전쟁이 가져다 준 일상 생활의 어려움도 함께 보여줍니다. 승패와는 관계없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지 모르는 암울하기만 한 전쟁 속의 회색빛 생활에 지친 등장 인물들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길고 반복되는 문체마저 지겹디 지겨운 전쟁의 참상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듯 싶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도대체 에니그마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져 - 작품 속에서는 에니그마나 이를 해결했던 튜링 머쉰 - 일명 Bombe -에 대해 간략한 설명만이 등장합니다. - 결국 인터넷에서 에니그마에 대해 알아보고 나서부터는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아져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후반부의 스릴과 해결은 꽤 마음에 들었으며 작은 반전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이 작품은 이미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영화에 대한 듀나님의 평을 읽어보니 영화도 보고 싶어지는군요.

올해에 마지막으로 읽는 장편 소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연말까지 천천히 읽을 생각이었는데 지난 주말 몸이 아파 드러누으면서 침대에서 후다닥 다 읽어 버렸습니다. ㅠ.ㅠ
올해 시작을 로버트 해리스로 시작해 로버트 해리스로 마무리하는 듯 하군요. (하지만 사실 루스 렌델의 중편 소설을 하나 이미 읽기 시작한 상태이긴 합니다.) 어쨌거나 모두들 한해 마무리 잘 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