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해리스 - The Ghost (2007)

Bücher 2009. 2. 21. 01:02 posted by srv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인 주인공은 어느날 오랫동안 영국의 수상으로 지낸 아담 랭의 회고록을 대필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사실 이 회고록은 랭과 함께 오랫동안 일을 해왔던 맥아라가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맥아라가 죽으면서 다른 대필작가가 필요했던 것이죠. 재임기간동안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인 지지했던 랭은 이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계획이었지만 그의 명령으로 영국 시민이 체포되어 CIA에게 넘겨져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사건이 밝혀지며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주인공은 비교적 쉽게 랭의 회고록을 맡게 되지만 점점 랭의 과거 행적에 대해 파고 들면서 그 역시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키케로 주인공으로 한 로마 3부작을 쓰고 있는 로버트 해리스가 첫번째 부분인 '임페리움'을 내놓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시리즈의 중간에 내놓은 현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치 스릴러물입니다. 해리스의 로마 3부작의 화자가 키케로 자신이 아닌, 그의 노예로 그의 말을 적어 기록으로 남긴 '티로'인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대필가가 즉,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티로의 입장에서 3부작 구상을 하다가 본작의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던 것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본작은 이분의 특기인 역사 픽션이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작가로 일하기 전에 로버트 해리스는 유명한 신문(선데이 타임스,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정치 칼럼니스트였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그가 이런 주제의 작품을 쓰게 된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영국의 전 수상 아담 랭은, 처음부터 부시 주니어와 함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인 참여를 했던 전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를 연상시킵니다. 작가인 해리스는 이 작품 속에서 별 명분이 없는 '전쟁'을 위해 자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아담 랭을, 결국은 토니 블레어와 그의 행정부를, 비판하고 또 조롱합니다. 해리스는 개인적으로도 토니 블레어와 잘 아는 사이라고 하는데,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에 최적의 인물로 떠올라 많은 기대를 받으며 수상으로 취임했던 블레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애초했던 것과는 달리 점점 미국의 하수인('미국의 푸들')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그의 블레어에 대한 실망감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스릴러'물이지 따분한 정치물이 아닙니다. 블레어 대한 해리스의 비판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인 정치에는 별 관심없고 시니컬한 대필작가를 통해 간접적이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며, 랭의 과거와 관련된 비밀들이 드러나는 중반부 이후의 긴장감 넘치는 빠른 전개는 과연 로버트 해리스!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등장 인물들의 구축과 묘사는 간결하지만 감정 이입에 방해되지 않게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장은 쉽고 속도감이 있으며 전반적인 구성 또한 탁월합니다. 또한 대필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정치인과 그 주변인들의 생활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설명은 또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사실은 천천히 읽고 싶었지만 초반부를 넘어가니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 결국은 며칠 안되어 다 읽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키케로 3부작 사이에 나온 작품이라 그런지 분량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2010년에 개봉을 목적으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화하고 있습니다. 아담 랭 역은 피어스 브로스난이, 대필작가는 이완 맥그리거가 맡았군요.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