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는 달리 줄거리 소개가 많이 길어졌군요.)
로버트 해리스의 키케로 3부작중 두번째 작품인 'Conspiracy' (독일에서는 'Titan'이란 제목이 예정되어 있는 모양입니다.)가 올해 10월경에 출간된다고 하니 일단 '폼페이'를 마지막으로 해리스의 작품들은 모두 읽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로마 시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키케로에 대한 3부작을 쓸 결심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작품에서 로마 시대는 그저 배경에 불과한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폼페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베수프 화산으로 대표되는 자연과 어떻해든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들이며 한도 끝도 없는 인간의 욕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전반부는 탐욕스러운 인물의 음모를 파헤치는 스릴이 중심이 된다면 중반 이후부터는 베수프 화산의 분화와 함께 일련의 재난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갑니다. 물론 언제나와 같이 작가인 로버트 해리스는 이 모든 것들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냅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로마시대의 수로 시스템에 대한 설명은 세밀한 묘사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여져 있으며 로마인들의 수준 높은 기술에 대한 이해에 감탄하게 만듭니다.
여러 등장인물중 '자연사'의 저자로 유명한 플리니우스가 직접 등장하는데, 이후 그의 조카인 플리니우스 미노어가 역사가인 타키우스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삼촌의 죽음에 대한 정황을 설명하며 베수프 화산이 어떻게 분화했는지를 자세하게 묘사하여, 이 편지는 베수프 화산과 관련한 중요한 직접적인 사료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아틸리우스는 당시 매우 기능적이었던 로마인으로 그려지며 암플리아투스는 부와 권력을 위해 - 어쩌면 스스로가 노예 출신이라는 컴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함이었을 지도 모르겠군요.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 둘의 갈등과 그 전개는 베수프 화산의 활동과 더불어 이 작품의 긴장감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양이 그리 많지 않고 박진감이 넘치는 전개 덕분에 금방 읽을 수 있는 작품이며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당연히 놓치면 안될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뒷부분의 전개는 일련의 클리쉐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보여지는군요.
본작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의해 영화화할 계획이 있었지만 촬영 시작이 지연되면서 폴란스키 감독은 로버트 해리스의 다른 작품인 'The Ghost'의 영화화 프로젝트로 옮겨가 그를 대신할 감독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감독이 되든간에 작품의 성격상 그냥 평범한 재난영화로 만들어질 위험이 높다고 생각되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