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스카니아 지방의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도시 이스타드의 수사관인 쿠르트 발렌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와 로마에 휴가를 다녀옵니다. 오랫동안 서먹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호전되려고 하는 찰나에, 왕년에 자동차 판매로 많은 돈을 모았지만 혼자 살면서 새들에 대한 시를 쓰는 홀거 에릭손이 대나무창들이 장치된 구덩이에 빠져 처첨하게 죽음을 당한 살인 사건을 조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사를 위한 단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발렌더를 비롯한 이스타드의 경찰들은 말그대로 암흑 속에서 더듬거리듯 힘들게 수사를 펼쳐나갑니다. 그리고 곧이어 또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나며 수사는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동안 꼭 한번은 읽어보고 싶었던, 스웨덴 추리계의 유명인인 헤닝 만켈의 작품을 하나 읽었습니다.
이분의 작품은 독일에서 인기가 매우 높은데, 이미 소개해드린 바 있는 하칸 네서와 더불어 스웨덴을 대표하는 추리작가로 유명합니다.
만켈의 유명한 작품은 소위 쿠르트 발렌더 시리즈라고 불리우는, 이스타드의 수사관 발렌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련의 작품들입니다.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 10권까지 나와 있으며 TV 시리즈로 제작되어 독일 방송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칸 네서 작품 속의 배경이 스웨덴이 아닌 가공의 도시를 중심으로 한다면 헤닝 만켈의 배경은 스웨덴의 남쪽 지방으로 덴마크와 가까운 스카니아 지방의 소도시 이스타드가 중심이 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픽션인만큼 길이름이나 식당 같은 것들은 모두 작가의 창작이라 합니다.
발렌더 시리즈의 특징은 우울한 스칸디나비아의 기후와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한 발렌더 그리고 사건의 잔인함과 이와 관련된 스웨덴 사회의 문제점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발렌더는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남자로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본작에서도 그의 이러한 힘든 상황은 절실함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스웨덴의 사회문제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여자들에 대한 성적 학대와 스스로를 지키겠다며 경찰의 영역을 침범하는 보수적 집단의 등장 등을 지적합니다. 이런 주제들은 직접적으로 또 여러가지 장치를 통한 은유와 상징으로 작품 속에 잘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초반부분의 호홉이 꽤 긴 편이고 전반적으로 침울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여지도 있고 - 게다가 경찰의 수사는 난항을 거듭합니다. - 자잘한 논리상의 문제 등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피디한 전개와 명확한 결론을 원하는 분들께는 그리 권해드리고 싶지 않군요. 만텔의 작품은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다시 한번 접해보고 싶습니다.

의외로 한국에도 발렌더 시리즈가 번역 출간되어 있더군요.
독일 출신의 작가로 알고 있는 분들이 있는 모양인데 이분은 스웨덴 사람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