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안 다이슬러는 우울증을 겪었으며 그때문에 프로 선수로서의 경력을 끝내야 했다.

(역자 주:
한때 독일 축구계 최고의 유망주였던 다이슬러가 젊은 나이에 은퇴한 뒤 8개월 후에 타게스슈피겔과 가졌던 인터뷰입니다. 이 인터뷰는 타게스슈피겔에 2007년 9월 30일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난 인터뷰이지만 그가 가졌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한 고백이 매우 인상적이라 긴 분량임에도 옮겨 봅니다.)


27살의 세바스티안 다이슬러는 그의 독일 축구 선수 세대에서 가장 재능 있는 선수였다. 그의 여정은 묀헨글라드바흐와 베를린을 거쳐 FC 바이에른까지 이르렀고 그곳에서 은퇴했다. 타게스슈피겔과 그는 처음으로 그의 결정에 대해 밝혔다.

다이슬러씨, 8달 전 당신은 선수로서의 경력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후 더이상 언론과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으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고맙습니다. 전 잘 지냅니다. 우선 저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했고 그동안 조용히 휴식을 즐겼습니다. 이런 방침에는 지금도 변할 생각이 없습니다. 절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전 제가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꺼리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제 전 스스로 결정하는 인생을 꾸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스스로를 조금 열고 저에 대해 약간은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선수 생활을 접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당신은 축구선수로서는 절정의 나이인 27살에 은퇴했습니다. 축구가 아쉽지는 않습니까?

제가 아쉬워하는 축구는 제가 떠났던 축구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전 제 자신이 그 세계와는 전혀 어울리는 타입이 아님을 모든 것을 겪은 지금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에 전 공허했고, 늙었으며, 피곤했습니다. 전 제 다리가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달렸고 결국은 더이상 달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잠깐 정리해주시죠. 당신의 은퇴는 올해 초 FC 바이에른이 전지 훈련을 하고 있는 두바이에서 결정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이외의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실망을 했고 저도 스스로에 대해 그랬습니다. 사람들에게 저를 이해해달라고 더이상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천천히 저는 스스로에게 움츠려들었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언론과 접촉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이런 결정을 존중해주시길 부탁할 뿐입니다.


당신의 결정 이후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요?

전 기뻤고 한시름 덜었음을 느꼈습니다. 전 여러 부상들 이후 자주 스스로와 싸워야 했고 마지막에는 더이상 힘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리듬을 찾기 위해 두어달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었습니다.


당시 울리 회네스는 "우리는 세바스티안 다이슬러를 둘러싼 싸움에서 졌다."고 말했습니다. 당신도 이렇게 생각하시나요? 당신은 스스로를 둘러싼 싸움에서 졌나요?

아뇨. 전 다르게 봅니다. 전 이미 오랫동안 스스로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전 저와 전쟁을 벌였고 더이상 그걸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지부를 찍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제 의견을 들어주고 이해해준 울리 회네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 그러니까 저의 아픔과 꿈 모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 과도하게 무리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마르세이유와 가졌던 두바이에서의 마지막 연습 경기에서 전 다시 한번의 큰 부상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습니다. 간신히 현상유지만을 할 수 있었죠.


지금에 와서 그 결정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요?

하나의 승리죠. 하지만 좀 넓게 본다면 역시 실망스럽긴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치열하게 제 과거의 시간에 대해 숙고해 봤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많은 것들이 분명해졌습니다. 이제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네, 결국엔 왜 제대로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당신의 깨달음을 우리도 나눌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습니까?

그것을 위해선 제 삶의 한참 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전 제 과거에 이유가 있다고 믿고 있기에 당신에게 이에 대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 그러니까 다리 한쪽만 가지고 집에서 나온 셈입니다. 제 고향인 뢰어라흐에는 마당에서 함께 축구를 하던 제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전 언제나 제일 작았죠. 우린 그때 14살, 15살쯤 되었을 껍니다. 전 그때 키가 160cm도 안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축구를 잘했죠. 그리고 언젠가부터 친구들이 저를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제 작은 키를 가지고 비웃었습니다. 새로운 메이커 제품을 가지는 것에도 전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었죠. 왜냐하면 제 부모님이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전 그분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것때문에 전 많이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이잖습니까.

네, 하지만 저도 그들중 하나였죠. 그 일들이 제게는 아주 크게 작용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 장난이라는 것을 저도 압니다만 당시 제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당신의 부모님은 뭐라 하셨나요?

전 좋은 가정의 일원이었지만 제 부모님은 당시 제게 큰 도움이 못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당신들만의 문제가 있었고, 그런 문제는 많은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죠. 당시 저희 집은 제가 피신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집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전 그것만이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런 일들이 저를 집에서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그게 너무 일렀다는 것을 압니다. 전 당시 제 친구들에서 탈출해서 스스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과 부담을 함께 가지고 나왔던 것이군요.

맞습니다. 부담을 가지고 말이죠. 그리고는 제 욕심과 재능이 더해졌죠. 전 마치 로케트처럼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90년대 말입니다. 지금 보면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정말 너무너무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변화의 물결이 밀려왔지만 전 감당할 수 없었죠.


당시 독일 축구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죠. 당신은 축구계의 희망이었습니다. 온 나라에서 그들의 소망과 희망과 기대를 당신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네, 상상을 해보세요. 전 독일 축구의 구세주로 불렸습니다. 전 19살이었다구요!


그리고 당신은 그와중에 묀헨글라드바흐를 거쳐 베를린까지 왔습니다.

오, 맞습니다. 베를린. 그곳은 모든 것이 평범하지 않았죠. 베를린에서 저와 관련된 것들은 0에서 1000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두가 제가 어떤 청바지를 입는지 어떤 향수를 쓰는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전 사생활이란 것이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슈프레(역자 주: 베를린에 흐르는 강이름)의 베켐으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려고 했습니다. 전 뭔가 다른 방향의 좋은 쪽으로 가려 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말입니까?

사인회때 저는 뭔가 저만의 것을 함께 전달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두번째 질문은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자동차를 탑니까? 돈을 얼마나 법니까? 오직 그런 것들에 대한 것만이 전부라면 정말 끝이죠. 멋진 자동차를 타고 다녀 좋습니다. 전 오늘날 제가 가족들을 서포트할 수 있는 것이 기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저를 매우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나는 그 세계와는 전혀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그 세계에 속하고 싶었습니다. 축구 안에는 지위, 타이틀, 자아, 그리고 권력 등이 큰 역할을 합니다. 전 그 세계에서 그런 것들을 봤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런 것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전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안에서 모든 것에 반항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들을 추구하려 했습니다.


어떤 것들을 추구했나요?

저는 재미와 기쁨을 전하려 했습니다. 제게 구찌 안경이나 프라다 티셔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 역시 겉모습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려고 노력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결국 우습게 보였습니다. 당시 저는 베를린에 있는 제 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전 온 독일에 유명했죠. 그리고 문밖에는 메르세데스가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봤죠. 지금 이게 뭐냐고? 전 정말 불행했습니다.


왜 거기에 맞서 뭔가 하지 않았나요?

그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베를린에서 전 벽에 들이박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베를린에 그 수표와 관련된 일이 있었습니다.


2001년 10월 빌트지에는 당신 구좌 내역의 일부가 공개되었습니다. FC 바이에른이 당신을 2002년 여름에 뮌헨으로 이적시키려고 당신에게 2천만 마르크를 보냈습니다...

네, 빌트지와의 일은 오전에 일어났고 그날 오후 HSV와의 시합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매우 심각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몇달 전인 2001년 여름 저는 헤르타의 단장인 디터 회네스에게 2002년 여름에 뮌헨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반년만 언론에 알리지 않고 기다려주길 부탁 했습니다. 전 이해할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 클럽에 여러가지로 고마웠습니다. 당시 저는 대표 선수가 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은 제게 매우 힘들었습니다. 매일 저는 팬들과 기자들과 동료 선수들로부터 질문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10월에 일이 터졌죠. 그리고 전 배신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갑자기 모든 베를린이 저를 미워했습니다. 경기에 나가지 못해 목발을 짚고 관중석에 앉아 있는 동안에 전 욕을 먹었습니다. 전 그때 그만두었어야 했습니다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이야기 해주세요...

전 물러나고 싶지 않았어요. 전 높이 추앙받는 존재로 베를린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남아있는 몇개월동안 이 클럽을 위해 제가 전부를 바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때 전 부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때 제 마음 속에 있었던 것들을 다 말했어야 했다고. 전 그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때문에 뭔가 빚을 졌습니다. 그때 어떻게 미쳐버리지 않았는지 지금 봐도 신기합니다.


왜 안그랬죠?

그때 전 완전히 제 안으로 움츠려 들었습니다. 그 누구도 더이상 가까이 오게 하지 않았어요. 전 제 평안을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3주 전에 어떤 사진 한 장을 봤습니다. 그것은 베를린에 있는 어느 그리스 식당에 걸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 예전 헤르타 동료인 코스타스 콘스탄시니디스가 그때, 아마 2001년 무렵이었을텐데, 절 데리고 갔던 곳이죠. 우리는 식당 주인과 사진을 찍었더랬습니다. 그 사진을 이제서야 본 것입니다. 그 사진 속 저는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저의 모습입니다. 전 그 사진 속에서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아픔과 모든 문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것들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전 아주아주 우울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느새 FC 바이에른에 왔습니다.

네, 저는 많은 스타들 사이에 묻혀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뮌헨으로 간 것입니다. 제 무릎은 망가졌고 제 머리도 망가졌습니다. 나중에 알려졌듯이 나중에 전 우울증을 치료하려 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다시 뭔가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전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많은 것들을 하려고 했습니다. 세상에나, 저는 유토피아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저는 FC 바이에른의 중심에 있으려 했고 팀에 새로운 기를 불어넣으려 했고, 경기에서 이기적이지 않으면서 다른 선수들과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자 했습니다.


당신같은 선수가 FC 바이에른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나이브했던 것이 아닌가요?

헤르타와 대표팀에서는 제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팀을 이끌었고 방향을 정했습니다. 중앙에서 뛰는 선수라면 그런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전 제 주위의 선수들이 돋보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제 옆의 선수가 뭔가 긍정적인 것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전 언제나 돌려줬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그를 위한 포지션을 가지지 못했고 더이상 그를 위한 전제조건을 가지지 못했으며 결국에는 더이상 힘도 없었습니다.


포기했군요?

제게는 처음부터 뭔가 단단하고 강한 토대가 부족했습니다. 전 15살에 모든 것을 축구에 걸었고 너무도 일찍 부모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때 벌써 문제를 가지고 있었죠. 축구에 있어 저의 재능은 저의 보호막이었습니다. 그리고 축구계에도 뭔가 다르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로케 산타 크루즈를 저는 그가 가진 토대때문에 부러워했습니다. 전 스스로 자유롭게 헤엄치려 노력했습니다. 2002년 전 제 삶의 동반자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서 전 기댈 곳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아들을 얻었고 이제 세살반이 되었습니다. 그 둘은 제게 힘을 주었고 어쩌면 축구를 하면서 동시에 나만의 세계를 가진다는 꿈을 이루게 해주었습니다. 전 대가족에서 쉽게 생활하는 로케를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는 자기의 마음을 열었지만 전 제 것을 닫았습니다.


무엇때문에 그랬나요?

저는 15살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제 목표에서 크게 빗나가고 말았죠. 그때 제 몸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을 숨기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꿈을 향한 투쟁을 포기했나요?

다른 축구선수들처럼 저는 오랫동안 시도해봤습니다. 올리버 칸이 일전에 말했습니다. 이 세계에서 사람은 뭉뚝해진다고.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 그걸 못했어요. 축구선수로서 인간으로서 저는 제 직감과 제 느낌으로 살아습니다. 경기장 위에서 저는 어떤 고정된 계획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제 동료들의 장점들과 단점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공을 어떤 패스를 누가 필요해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것이 제 직감이고 제 창의력이고 저의 환상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전성기에 어떻게 그런 멋진 축구를 했는지의 이유입니다.


당신은 예리함을 잃고 축구경기에서 패배할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졌나요?

마지막에 전 오른쪽 측면에서만 뛰는데 온생각을 집중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수가 전 절대 아니었습니다. 사이드라인에서 1미터 떨어진 공간은 제게 너무 좁게 느껴졌습니다. 전 그런 제한을 견딜 수가 없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 무릎으로 여전히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더이상 힘이 없었습니다.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그만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의 결정이 부끄럽지는 않았나요?

오, 아뇨. 처음에는 여러가지 것들이 올라왔습니다. 이제는 이미 다르게 생각합니다. 전 그냥 슬슬 쫓아만가는 타입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너무 잘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전 에펜베르크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축구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했고 단단하고 냉정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아닙니다. 전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오래 전에 제 스스로를 열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 두려웠습니다.


당신은 너무 나약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어주세요. 어쩌면 전 이쪽 세계에 있기에는 약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이쪽 세계에 있는 모든 이가 경험해보지 못하는 뭔가를 해냈고 참아냈습니다. 당시의 헤드라인을 상상해 보세요. 독일 축구의 구세주가 구원을 받아야한다. 이 세계에서는 아무런 약점을 보여주지 않아야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기던지 아니면 지던지입니다. 저는 때로는 잠깐 기대어 쉬었어야 했습니다. 제가 이런 것에 대해 빌트지에 얘기했어야 했나요?


지금은 얘기하고 있잖습니까.

네, 그리고 이게 마지막입니다. 그 비지니스는 제게서 너무 빨리 많은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제게는 성장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성인이 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실수를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FC 바이에른에 있을 때 제게 시간을 주려 노력했습니다. 그것에 저는 울리 회네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그는 저를 믿어주었지만 더 이상은 힘들었습니다. 모든 게 좀 잘못되어 버렸습니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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