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don't remember 2007!

Fussball 2009. 4. 29. 02:19 posted by srv

클린스만의 해임이라는, 독일과 분데스리가에서는 거의 핵폭탄급의 사건이 터져버리니 다른 팀들의 뉴스나 소식들을 신문에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군요.
많은 바이에른의 팬들은 이 소식에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편은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다른 팬들은 하루종일 온갖 미디어에서 바이에른과 관련된 소식만 동어반복으로 쏟아내니 어쩔 수 없이, 바이에른과 관련된 뉴스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의 와중에도, 스테파노비치의 유명한 말("Läbbe geht weider")처럼, 삶은 계속되는 법이죠.

VfB 슈투트가르트는 지난 토요일, 프랑크푸르트와 있었던 홈경기를 무난한 승리로 이끈 후 팀의 분위기 메이커인 루도빅 마넝의 서른번째 생일에 팀 모두가 초대되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시내의 큰 공원안에 있는, Nil이라는 까페이자 디스코를 통째로 빌려, 요새 락커룸의 DJ로 활약중이라는 마리오 고메즈가 음악을 맡아 모두가 즐겁게 놀았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이 파티가 열리기 몇시간 전, 그러니까 경기가 끝난 직후 VfB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고 있자니, 모두가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아하는 눈치였습니다. 벌써 5연승이고, 경쟁팀들은 제대로 승점을 쌓지 못했고, 여기에 언제나 VfB를 도와주는 코트부스 덕분에 - 두 팀의 팬들은 매우 가까운 사이입니다.- 1위와의 승점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수중 어느 누구도 '마이스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냥 다음 경기에만 신경쓰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모두가 똑같이 반복하더군요.

일요일 밤에 지역방송인 SWR-BW에서 방송되는 Sport im Dritten이라는 스포츠 프로그램에 초대손님으로 VfB의 오른쪽 수비수인 크리스티안 트래쉬가 초대되었습니다. 이번 시즌 마이스터가 어떤 팀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아니고... 내 생각에는 볼프스부르크가 될 것 같다.'라는 대답하더군요. 또한 스스로를 주전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도 '절대 그렇지 않다. 좀 더 노력해야 한다'며 수줍게 대답했습니다.

크리스티안 트래쉬는 이번 시즌 슈투트가르트가 거둔 젊은 수확중 하나입니다. 1860 뮌헨에서 보상 선수로 데려온 이 선수는 그동안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담석 제거 수술로 결장하고 있는 주전선수 오소리오의 빈 자리를 훌륭하게 채우고 있고, 덕분에 팬들 역시 호펜하임으로 이적해 대표팀 명단에까지 이름을 올린 안드레아스 벡을 아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트래쉬의 활약과 발전을 보고 있으면 슈투트가르트가 확실히 올바른 길을 선택해 나가고 있음을 깨달게 됩니다. 이번 시즌 VfB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더이상 선수들을 감싸주지 못하는 아르민 페의 전격적인 해임, 그리고 신속하게 의외의 해법인 마르쿠스 바벨을 결정하고 이후에는 감독 라이센스와 관련해 DFB와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슈투트가르트는 더이상 내부의 문제를 시끄럽게 밖으로 들고 나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하지만 재빨리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조용히 일을 해결하면서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꾸준히 승점도 챙기고 있습니다.

현재 VfB의 모습은 2년 전 같은 시기와 매우 비슷합니다. 고메즈는 마음 먹은대로 골을 넣기 시작하고, 그의 공격수 파트너인 카카우는 시즌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반기 초까지만해도 덜컹거리던 수비는 이제 자리를 잘 잡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제는 다양한 루트의 공격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선수들은 이제 하나의 팀으로 뭉쳐 잘 짜여진 조직력과 사기마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그에서 가장 골을 많이 넣고 있는 미드필드의 공격력도 여전합니다.

그러나 VfB의 그 누구도 다른 팀에서 2007년의 모습을 떠올리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볼프스부르크, 샬케, 바이에른 등의 어려운 팀을 상대로 경기가 남아 있는 슈투트가르트로서는 자력의 힘으로 마이스터를 차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몇몇 전문가들은 VfB의 우승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하고 있으며, 현재의 주전 선수 11명중 8명이 마이스터팀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경쟁팀들 또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이런 생각을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을 뿐, 행여나 다른 팀의 경계의 수위를 높일까봐 절대로 밖으로 드러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2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매경기마다 최선을 다하고, 나오는 결과에 겸허하게 승복하려 합니다.

그렇지만 저같은 팬들의 눈에는 2년 전 슈투트가르트 시내의 슐로스플랏츠 Schlossplatz를 가득 채우고 VfB를 연호했던 수십만명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어쩌면 이번 5월이 VfB의 팬에게는 또한번의 최고의 시간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비록 현실적이 아니더라도 팬들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꿈을 꿀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