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us Babbel의 비책?

Fussball 2009. 5. 14. 23:16 posted by srv

Sports News - December 01, 2008

VfB의 마이스터 트레이너 아르민 페가 경질되고 그 후임으로 마르쿠스 바벨이 결정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꽤나 의아해하면서 놀랬던 기억이 난다. 페의 경질은 사실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었는데, 페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나 자신부터도 떨어질 데로 떨어진 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에는 페가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페는 이전까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 선수들을 비난으로부터 막아주고 오히려 힘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했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좋지 않은 성적에 대한 핑계를 자질이 충분하지 못한 선수들 탓으로 돌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나 역시 그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접어가야만 했다. 어쨌거나 페는 물러나야 할 시기에 잘 물러난 셈이다. 하지만 그의 후임지가 다름 아닌 페의 코치진중 하나였던 바벨이라니..

처음 가졌던 나의 인상은 후임자를 몰색하다 도저히 적당한 사람이 구해지질 않아 임시로 가장 가까운 인물을 앉힌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바벨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리 좋은 편이 못된다. 그 이유로는 90년대말에서 2000년대초까지, 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독일 축구계의 암흑기때 독일 대표팀의 주전 선수중 하나로 당시 대표팀 감독인 - 사실 아무리 좋게 봐도 무능력 덩어리였던 - 에리히 리벡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었던 선수중 하나였다는 사실과 VfB에서 선수 시절 당시 감독이었던 지오바니 트라파토니를 물러나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는 공공연한 소문 덕분이다. 물론 바벨의 선수로서의 경력은 말할 것도 없이 화려하지만 내게는 반골정신이 너무 강해 팀내 분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그가 다름 아닌 바이언 뮌헨의 골수 출신이라는 것도 그다지 호감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던 요인이었다.

어쨌거나 그가 VfB를 총감독(Teamchef)라는 명목으로 맡게 되었을 때 그에게 기대를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은 나뿐 아니라 많은 VfB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코치로 일했다고는 했지만 도저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감독이라는 일은 초짜인 그에게 뭔가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2008/2009 시즌을 고작 2게임 남겨놓은 지금 시점에서 마르쿠스 바벨에 대한 평가는 작년 11월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선 다음의 표를 한번 보자.

   승점  승-무-패  득점:실점
1. VfB Stuttgart
43 13-4-1
41:20
2. VfL Wolfsburg 41 13-2-3 38:18
3. Bayern München 35 11-2-5 34:18
4. Hertha BSC 35
11-2-5 27:19
5. Hamburger SV 32 10-2-6
24:22
6. Borussia Dortmund 31
8-7-3
28:18
7. FC Schalke 26 8-2-8
23:19
8. Hannover 96 26
7-5-6 32:35
9. Werder Bremen 25 7-4-7
30:16
10. TSG Hoffenheim 20 4-8-6
21:25
11. Borussia M'gladbach 19 5-4-9
23:29
12. Bayer Leverkusen 18 4-6-8 22:26
13. VfL Bochum 18  5-3-10 19:31
13. Energie Cottbus 18  5-3-10 19:31
15. Eintracht Frankfurt 17 4-5-9 18:32
16. FC Köln 16  4-4-10 18:29
17. Arminia Bielefeld 15 2-9-7 13:25
18. Karlsruher SC 13  3-4-11 11:28

이것은 마르쿠스 바벨이 VfB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의 18 경기의 성적만으로 만든 순위표이다.
슈투트가르트는 가장 많은 승점을 올렸을 뿐 아니라 가장 적은 패와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덕분에 순위도 14라운드 당시 11위에서 32라운드 현재 4위까지 올라왔는데, 당시 VfB보다 높은 순위에 있던 쾰른, 레버쿠젠, 호펜하임, 브레멘, 샬케 같은 팀들이 올린 승점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의 성적을 올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감독 데뷔 성적은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라고 한다. 스포츠 세계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세우면 안되는 것이겠지만, 만약 바벨이 시즌 처음부터 감독이었다면 어떤 성적을 올렸을지 상상만 해도 즐거울 정도이다. (그래서 많은 VfB 팬들은 다음 시즌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벨은 무슨 비책을 썼길래 전반기 내내 부진했던 VfB를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최근 Zeit Online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Z: 어떻게 당신은 VfB 선수들을 강하게 만들었습니까? 당신은 심리적인 면이나 매일 있는 훈련에 좀 더 중점을 둡니까?

B: 그 두가지 모두를 섞은 것입니다. 전 선수들에게 그들이 클럽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를 설명했습니다. VfB는 그들이 무진장 친절한 남자라서 데려온 것이 아니라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데려온 것입니다. 우리는 훈련 내용을 조금 바꾸었고 이를 통해 선수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축구 자체를 새로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감독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바로 선수 개개인과의 면담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4-4-2 다이아몬드에서 4-4-2 플랫으로 포메이션을 바꾸었다. 수비 라인 앞에 혼자 서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VfB를 마이스터로 이끌었던 파르도를 과감히 벤치에 앉히고 대신 히츨스페르거와 케디라라는 공격적 능력이 있는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중앙에 포진시키며 상대에게 어이없이 공간을 내주는 것을 막았다. 여기에 그동안 선수들 몸에 무리가 간다면서 하루에 두번 있던 훈련을 한번으로 줄이면서 대신 시간을 좀 길게 하던 페의 방법을 버리고 예전처럼 하루 두번 훈련을 하는 것으로 돌아갔다.

바벨은 선수들과의 면담을 통해 그는 선수 개개인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었고 또 훈련 방법을 바꾸면서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반기의 마지막 경기였던 바이언과의 홈경기는 선수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며 휴식기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놀라운 것은 겨울 휴식기가 끝나면서 가졌던 첫번째 공식경기인 바이언과의 DFB 포칼 경기에서 1:5로 대패했음에도 팀 전체가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이후 연승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비록 브레멘과의 어웨이 경기에서 4:0으로 패하면서 그 시리즈는 깨졌지만)

바벨 부임 이후 슈투트가르트는 지고 있거나 박빙의 상황 속에서도 경기를 뒤집는 일이 많아졌다. 바이언과의 리가 경기가 그랬고, 마지막까지 0:0으로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다가 막판에 골을 넣으며 이겼던 함부르크와의 경기도 그랬다.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그리고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용상으로는 별로인 경기를 하지만 결과에서는 언제나 승리를 거두는 바이언을 두고 그들에게는 '바이언 유전자'(Bayern-Gen)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골수 바이언인 바벨이 이런 바이언 유전자를 슈투트가르트에 심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말에 대해 케디라는 '우리에게는 VfB의 유전자가 있다"며 반박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제 슈투트가르트는 경기 종료 직전까지도 끈질기게 승부를 걸어보는 끈끈한 승부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팬들은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열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의 멘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바벨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은 바로 선수들의 멘탈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데 있다고 본다. 선수로서 여러 팀을 통해 겪은, 또 우수한 감독들 밑에서 뛰면서 얻은 경험은 그 어떤 것보다도 바벨을 좋은 감독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선수 생명을 포기할 뻔 했던 그의 개인적인 경험 또한 한몫을 했을 것이다. 화려한 선수 생활이 좋은 감독을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바벨의 경우를 통해 볼 때 훌륭한 선수가 좋은 감독이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바이언과 브레멘의 경기에서의 대패, 아쉬움이 많이 남는 호펜하임, 빌레펠트의 경기, 그리고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경고 누적 등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요인들이 수없이 다가오는데도 바벨은 훌륭하게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고 자신감 있게 경기에 임하도록 만들고 있다.

바벨은 얼마 전까지 현역 선수로 뛰었다는 점을 십분 이용해 선수들과의 거리를 좁히며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클린스만이 이야기 했던 "매일 각자 선수들을 조금씩 개선시키는" 것을 오히려 바벨이 해냈다. VfB의 골게터 마리오 고메즈는 바벨 부임 이후 18경기동안 17골을 넣었다. 불안불안하던 수비진은 라운드가 계속될 수록 안정되어졌고, 이제 겨우 첫번째 분데스리가 시즌을 보내고 있는 오른쪽 측면의 젊은 수비수인 크리스티안 트래쉬는 리카르도 오소리오의 공백을 메우고도 남을만큼 실력이 향상되었다. 슈투트가르트의 기본 방침인 자체 유스팀 출신 선수들의 자연스러운 융합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어, 고메즈 이외에도 타스키, 케디라는 이제 명문 클럽들의 주목을 받는 선수들로 성장했다. 모든 선수들은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훈련에서 온 힘을 다하고 있으며 한두명의 주전급 선수가 빠져도 백업 멤버들이 이들의 공백을 훌륭하게 채워넣고 있다. 한마디로 팀 전체가 하나로 뭉쳐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VfB가 가지고 있는 현재 가장 큰 무기이다.

결국 바벨이 슈투트가르트를 변화시킨 것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서로 도와 하나의 팀으로 뭉치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흔하게 듣는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감독으로서의 경력이 일천한 젊은 감독이 짧은 시간에 이루어냈다는 점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바벨은 이제 다음 시즌이면 감독 라이센스 취득을 위해 일주일의 반정도를 쾰른에 있는 감독 학교에서 지내야 한다. 이번 시즌 VfB가 어떤 성적으로 시즌을 마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시즌에도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그와 그의 선수들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