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밤새 내리던 비가 새벽이 되니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이층침대의 윗쪽에서 자겠다고 방방 뛰던 아이는 언제나와 같이 엄마품에 안겨 잠을 잤습니다. 그렇잖아도 좁은 1인침대에서 잠버릇이 꽤나 심한 아이와 함께 자야했던 아내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었겠죠. 하지만 그래도 많이들 피곤했는지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잤습니다. 서둘러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어 모두가 부지런히 나갈 준비를 합니다.
2. 어제 저녁 아내와 맥주를 마시면서 오늘의 스케쥴을 정했습니다.
일단 비가 오는 것은 확실한 날씨라 추크슈피체를 올라가는 것은 별로일 것 같아 비를 맞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정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우선 어제 무거운 짐때문에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가르미쉬 시내를 잠깐 둘러보고 기념품도 사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오늘의 주목표인 파르트나흐클람 Partnachklamm을 포함한 하이킹의 출발점인 스키점프대가 있는 쉬슈타디온 Skistadion까지 가는 버스의 환승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중간에 비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약 6km 정도의 코스인 파르트나흐클람을 포함한 코스를 걷습니다. 날씨에 상관없이 걸을 수 있는 안전한 코스인데다 볼 거리도 상당하다는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의 말때문에 정하게 되었죠.
날씨도 그렇고 아이의 체력도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은 거기까지만 정해놓고 어차피 저녁시간인 18시까지는 숙소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 남은 오후 시간은 유동적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3. 어제 저녁 식사도 매우 만족스러웠는데 이 유스 호스텔의 아침 식사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비록 커피는 좀 별로였지만 - 분말 커피더군요. ㅠ.ㅠ - 그밖에는 넉넉하고 맛도 나쁘지 않아 평소보다 많은 양을 먹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잠이 덜 깨었는지 먹는 속도가 지지부진. 역시 낯선 주위 환경을 타는 듯 합니다. 다른 투숙객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족단위가 제일 많았습니다. 이제 겨우 걷기 시작하는 아이를 데려온 부모도 있더군요. 주위의 아이들 덕분에 아침 식사 자리는 적당히 소란스러웠습니다. 평소보다도 아이는 천천히 먹었지만 다행히 버스 시간에 늦지 않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사진을 위주로 쓰겠습니다. 사진이 많아 접습니다. :-)
4. 가르미쉬 시내
시내라고 말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가르미쉬는 작은 곳입니다. 그러나 유명한 휴양지이다보니 동네 규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고급 의류를 파는 상점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겨울에는 눈으로 덮이는 고장답게 가파른 각도의 지방과 유난히 넓은 처마를 가진 집모양이 이곳이 알프스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아 우산을 쓰지 않아도 견딜만 합니다. 몇년 전부터 모으고 있는 작은 기념품도 잊지 않고 사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남은 버스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난 널 무서워하지 않아...
참 근사한 멧돼지로구나 하면서 지나가는데 우연히 눈에 들어온 길이름..
미하엘 엔데 플라츠 Michael-Ende-Platz..?
왜 이런 곳이 여기에....?
알고보니 '모모'와 '네버 엔딩 스토리'의 작가인 미하엘 엔데의 출생지가 바로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이었습니다. 공원 안에 있는 전시장에서는 그와 관련된 상설 전시도 열리는 모양이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냥 통과..
시내 구경을 하는데 유독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에 대한 것들이 많아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슈트라우스가 말년을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에서 보내고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더군요. 그를 기념하는 음악회나 페스티벌을 알리는 포스터가 많이 붙어 있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5. 파르트나흐클람 Partnachklamm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약 15분정도를 가니 스키점프대가 있는 쉬슈타디온 Skistadion에 도착합니다.
스키점프대에 대해서는 나중에 모아서 이야기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
잠깐 구경을 하고 쉬슈타디온 옆을 돌아 오늘의 메인인 파르트나흐클람으로 발길을 올깁니다.
아까보다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걷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세식구가 나란히 자기 우산을 쓰고 손을 잡고 '더위 먹은 갈매기'를 함께 부르며 ㅠ.ㅠ 걸었습니다.
저 뒤편에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비에도 아랑곳않고 아이는 잘 걷습니다. 과연 시골소년!
어느덧 파르트나흐클람의 입구에 도착합니다.
파르트나흐클람은 수백만년 전인 삼엽기에 생긴 지층이 융기하여 올라온 곳에 빙하 녹은 물 등이 지하에서 솓아나 흐르게 된 파르트나흐 강(이라고 하기에는 개울에 가깝습니다.)에 침식되어 만들어진, 약 700m 길이의 좁은 골짜기입니다. 지층이 만들어진 당시 해저에 살던 조개류의 껍질이 주성분이라 쉽게 침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지금도 잘 보면 당시 생물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높은 암벽 옆에 붙은 좁은 통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게 됩니다. 혹시라도 미끄러질까봐 아내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앞으로 갑니다. 하지만 길은 꽤 안전해서 아이들이 함께 가도 큰 위험은 없습니다. 아이가 혼자 돌아다니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파르트하흐클람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합니다. 눈이 녹아 수량이 갑작스럽게 많아지는 봄에만 잠시 통행이 금지될 뿐 그외에는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죠. 얼음으로 덮인 계곡의 모습도 근사할 것 같습니다.
어느 모퉁이를 도니 갑자기 이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후 어느 암벽 모퉁이를 돌거나 암벽에 뚫은 작은 터널을 지날 때마다 멋진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머리 위에서는 비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계속 물이 떨어집니다.
애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좀 더 스펙타클한 풍경입니다.
게다가 박력있게 흐르는 물소리가 골짜기를 울려 조용조용한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중간계의 한부분 같습니다. 반지 원정대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
왼쪽으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시죠? 이런 협곡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박력있게 흐르는 파르트나흐.
터널 안에 이렇게 창문처럼 뚫려 있는 곳이 몇군데 있었습니다.
거세게 흘러 내리는 파르트나흐를 가까이에서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협곡은 끝이 납니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통과하는데 30분이 채걸리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빠져나오니 주위가 갑자기 고요해집니다. 비도 더 내리지 않는군요.
협곡의 시작은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날씨만 좋다면 물가에 앉아 발을 담그며 놀았을 법한 곳입니다.
파르트나흐클람의 입구입니다.
좁은 협곡이 시작함을 볼 수 있습니다.
밖으로 나와 벤치에 잠깐 앉아 숨을 돌렸습니다.
컴컴한 터널을 몇번이나 통과해야 했던 아이는 약간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아내의 얼굴도 지친 기색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앉아 있을 수는 없죠. 파르트나흐클람으로 다시 들어가 돌아가는 루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협곡 위로 올라가서 산중턱을 따라 걷는 원래 생각했던 하이킹 루트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산중턱으로 오르는 길은 정비가 아주 잘 되어 있었습니다.
계단이나 난간도 잘 되어 있고 경사도 적당해서 걷기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좀 지쳐보이던 아내와 아이도 힘을 내어 잘 올라 갑니다. 운동 신경은 평균 이하이지만 걷는 체력만큼은 우수한 가족답습니다.
산중턱을 올라와 숲을 벗어났습니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따라 걸으면 됩니다. 비가 그친 숲의 공기는 매우 향기롭고 청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슬슬 점심을 해결할 시간입니다.
점심 시간
길은 어느덧 작은 마을로 이어집니다. 어디 앉아서 먹을 곳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결국에는 평소라면 토산품을 팔았을 간이매점의 처마 밑으로 갔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날씨와 어울리게 컵라면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준비한 보온병이 좀 작아서 아무래도 물의 양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일단 아이 것부터 채워주고 아이 것의 면이 먹을 수 있게 되자 그 국물을 아내가 받아서 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로 받은 저도 물이 꽤 모자라는 지경이 되어 따뜻한 국물이 있는 컵라면이 아닌 거의 비빔라면의 수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식은 아이의 국물로 어떻게 해보려던 아내는 더 심란했습니다. 물의 양도 너무 모자라 결국은 라면이 아니라 불린 과자로 먹어야 했으니까요.
제껀 맛만 있구만요.
그러나 이런 어려움이 오히려 즐거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옷은 온통 젖었고 제대로 앉을 자리도 없어 처량해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셋이서 히히덕거리며 처마 밑에 서서 라면 혹은 물에 불린 과자를 먹었습니다. 약간 모자란 양은 준비해온 과일로 보충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먹었다고 몸이 따뜻해지고 다시 힘이 생깁니다.
산중턱을 따라 걷는 길을 걷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걷기도 쉬웠구요.
그리고는 산 밑으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죠.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꽤 급해서 비에 미끄러운 길을 내려갈 때에는 조심조심 발길을 떼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없이 하산할 수 있었습니다.
6. 스키점프대 Schanze
이미 위에도 적었지만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은 1936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겨울 스포츠로 유명한 곳입니다. 특히 매년 연말/연초에 위치가 가까운 독일의 오버스도르프 Obersdorf,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Innsbruck, 비쇼프스호펜 Bischofshofen의 네 곳에서 연달아 펼쳐지는 스키 점프 대회인 피어-샹첸-투르네 4-Schanzen-Tournee는 매우 유명합니다.
오버스도르프는 예전에 가봤는데 스키점프대는 스키장으로 올라가는 곤돌라 안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키점프대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에어버스 A380의 크기와 비교해놨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밑에서 볼 때는 그저 대단히 높고 크다는 느낌만 받습니다.
나치시대에 지어진 경기장이라서 그런지 경기장에 붙어있는 부조가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전체주의적인 엄숙함을 표현하고 있군요.
바로 밑에까지 가봤습니다.
사실 이때는 파르트나흐클람에서 내려온 직후라서 저 위로 올라갈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길죽한 인조잔디로 덮여 있는 점프대의 착지부분을 실제로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위로 올라가자며 사진 오른쪽에 볼 수 있는 지그재그 모양의 계단으로 달려갑니다.
아니, 이녀석이 아직 힘이 남아 있다니... ㅠ.ㅠ
생각보다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올라갑니다. 그리고 점프대의 착지 부분 - 저 흰 선들은 점프한 거리를 알아내기 위한 것입니다. - 의 경사가 밑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점프하는 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착지도 보통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TV에서 볼 때에는 - 독일은 피어-샹첸-투르네 등의 큰 스키 점프 대회는 모두 중계를 합니다. - 쉬워 보이기만 하더만 실제로 보니 대단하군요.
좀 더 위로 올라와 봐도 경사는 여전합니다.
적어도 파란 부분에는 착지를 해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데 저기까지 어떻게 날아가는지.. ㅠ.ㅠ
그리고 점프대 바로 옆부분까지 올라와 밑을 봅니다.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의 전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는 마치 플레이모빌이나 레고 마을을 보는 것 같다고 좋아합니다. 이런 높이에서 점프를 한다면 정말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7. 다시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가르미쉬와 파르텐키르헨의 중심부를 돌아다니다 보니 건물에 그림을 그려 장식한 것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의 주제는 종교적인 내용이거나 혹은 신화 등의 모티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림 자체의 수준은 대단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워낙 많은 건물화를 볼 수 있어 다 소개는 못하겠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만 올려 봅니다.
한가하게 전원 생활을 만끽하는 바이에른 사람들의 모습
서로 브레쩰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두 사자. 빵집 건물이었습니다.
피신하는 아기 예수와 그 가족.
건물의 일부에도 이렇게 그림을 그려놨습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여러 신들의 모습.
8. 그리고는...
비에 젖고 지친 몸을 끌고 숙소로 돌아와 따뜻한 샤워를 하고 옷도 갈아 입은 다음 좀 쉬었습니다.
일기 예보대로 늦은 오후에 접어들면서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더군요.
숙소에서 바로 보이는 앞산.
산중턱에 보이는 암벽의 하얀 부분은 폭포가 있는 곳입니다.
날씨가 좋아지니 산봉우리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험난해 보이는 산세가 인상적입니다. 정말 알프스에 온 것 같습니다.
매우 만족스러웠던 저녁을 먹고는 잠깐이지만 산책도 다녀오고 리셉션에서 탁구라켓과 공을 사와 아이와 처음으로 탁구도 쳤습니다.
처음에는 공도 전혀 못맞히더니 좀 지나니 라켓에 공을 맞추기까지는 하더군요. 엄마, 아빠를 닮아 오래 걸을 수 있는 체력 이외에는 그다지 좋지 못한 운동 신경을 타고난 아이지만 그래도 약간의 가능성을 보여주어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줍니다.
더 크면 이런 것도 더 잘하게 되겠죠?
예전 같았으면 올라갈 엄두도 못내던 아이가 이젠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는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놀다 보니 하루의 해가 집니다.
오늘도 역시 맥주를 마시며 내일의 계획을 짰습니다. 내일은 드디어 산악열차를 타고 추크슈피체로 갑니다.
날씨는 쾌청할 예정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