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아침을 일찍 시작합니다.
어제 비를 맞으며 힘들게(?) 걸어다녀서 몸이 괜찮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삐걱거리는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내와 아이도 푹 잘 잔 모양입니다. 창 밖을 보니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의 일정에 딱 맞는 날씨가 될 것 같습니다.

2. 독일의 최고봉인 추크슈피체 Zugspitze의 등반은 어느 수준 이상의 경험과 장비를 갖춰야 본격적으로 도전할 수 있다 합니다. 해발 2962m의 높이로 알프스 산맥 최고봉인 해발 4811m의 몽 블랑 Mont Blanc 같은 험난한 고봉들과 비교하자면 3000m도 안되는 꼬마;;이지만 그래도 알프스다운 험준한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체력도 장비도 시간도 안되는 관광객들은 산악 열차와 케이블카만으로도 정상 근처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기도 합니다. 전 아직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본격적인 알프스는 아직 제대로 경험하질 못해서 - 3200m 좀 넘는 오스트리아의 외츠탈 Ötztal의 죌덴 Sölden에 스키를 타러 갔던 것이 다입니다. ㅠ.ㅠ 다들 간다는 융프라우 Jungfrau도 아직 가보질 못했습니다. (나 뭐한거니?) - 내심 기대를 가졌습니다.

추크슈피체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추크슈피체반 Zugspitzebahn이라는 산악 열차/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합니다. 정상까지 갔다오는 왕복표가 있는데 성인의 경우 약 50유로 정도합니다. 출발은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의 역이며 그라이나우 Grainau를 지나 Eibsee 아잎제부터 본격적으로 올라가죠. 아입제에서는 케이블카로 갈아타서 정상까지 바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산악열차를 계속 타고 올라가면 추크슈페츠플랏트 Zuspitzplatt라 불리는, 추크슈피체 정상 바로 밑의 고원지대까지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다시 정상 전망대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됩니다.

추크슈피츠플랏에서는 해발 2000에서 2650m사이에 위치한 고원지대인데 이곳에서는 슈네페르너 Schneeferner라 불리우는 빙하를 볼 수 있습니다. 빙하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한여름에도 기온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날의 짐은 두꺼운 옷들을 충분히 챙기느라 부피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 가르미쉬 지역은 낮 최고기온이 25도 정도인데 추크슈피체는 3도 정도라 나와 있더군요.

3. 약간의 추가 지불을 하면 유스호스텔에서 제공해주는 점심 도시락을 받아서 일찍 출발했습니다. 양도 넉넉하고 아주 마음에 드는 서비스입니다.
하늘은 청명하고 햇살도 따가워 추크슈피체 정상에서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루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산 정상에만 슬슬 갔다 오기에는 아쉬움이 있어서 오후에는 수영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수영장에 필요한 물건들은 아이 가방에 챙겨 나와 역에 있는 코인 로커에 넣어두고는 산악 열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으로 갔습니다.

역시 사진이 많아 접겠습니다.


꽉 찬 메모리 카드때문에 이후로는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었죠. ㅠ.ㅠ

8. Eibsee -> Garmisch-Parthenkirchen

아잎제까지 케이블카로 내려오면 다시 산악열차로 갈아타고 가르미쉬 방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표를 보니 약 한시간 정도 시간이 남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보았던 파란 아잎제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경황이 없어 호수의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아잎제는 다음에 여름 휴가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멋졌습니다. 물은 바닥이 보일만큼 맑아 한쪽편에는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많이 보였고 남은 계획이건 뭐건 그냥 주저 앉아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작품인 'Das doppelte Lottchen'에 보면 뮌헨에 사는 Lotte(사실은 Luise)가 엄마와 함께 주말동안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에 놀러가 아잎제에도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전에 읽을 때는 어딘지 감도 안잡혔던 곳을 실제로 구경하게 되는 날도 오는군요. ^^;;

호수에서 배를 빌려 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자 아이는 배를 타자고 조릅니다. 자기가 노를 저을테니 걱정말라고 하면서 말이죠.;;; 분명 저 혼자 노를 저어야 할텐데 대학생 MT 온 것도 아니고 저를 빼고는 수영을 못하는 두 식구를 데리고 노를 젓는 배를 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페달 보트를 타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페달 밟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이걸 타자고 하느냐 했지만 노 젓다가 힘빠져서 호수 가운데에서 조난 당하고 싶냐는 제 말에 결국 페달 보트로 결정. 아이는 왜 노 젓는 보트를 안타냐고 난리였지만 노 젓는 보트가 고장나서 오늘은 어쩔 수 없다고 설득해(?) 30분동안 페달 보트를 타기로 했습니다.

막상 배에 올라타니 정말 페달질이 그리 쉽지 않더군요. 저와 아내가 페달을 밟고 아이에게 운전을 맡겼는데, 이 녀석이 다른 구경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배가 어디로 가는지는 신경을 안써 물위에서 방향을 못잡고 이리저리 다녀야 했습니다. 자전거와는 좀 다른 느낌이고 게다가 이미 추크슈피체에서 꽤 걸어 다녀 다리에도 힘이 많지 않았습니다. (아.. 저질 체력..) 그래도 맑은 호수 위에서 철벅대며 보트를 타는 재미는 예상보다 근사했습니다. 아.. 이런 물에서 수영을 못하다니... 아쉬움이 가득 남더군요.

시간이 되어 힘들게 보트를 반납하고 기차에 탔습니다. 자리에 앉으니 잠이 저절로 쏟아지더군요. ㅠ.ㅠ
잠시나마 눈을 감았다 떠보니 벌써 도착.
아침에 맡겨둔 짐을 찾아 역 근처에 있는 수영장으로 향합니다. 처음 유스호스텔에 체크인할 때 받은 쿠어카르테 Kurkarte는 이때에도 또 활용됩니다. 쿠어카르테로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의 시내 버스를 공짜로 타고 다닐 수 있었고, 주크슈페치 산악기차도 할인을 받았는데 수영장도 한번은 공짜로 들어갈 수 있더군요.

수영장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꽤 한산했습니다.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십대 아이들만 바글거리더군요.
별로 기대를 안했는데 수영장 시설은 괜찮았습니다. 좀 낡긴 했지만 아이들 풀도 잘 되어 있고 긴 미끄럼틀도 있었습니다. 기차 안에서는 피곤해 보였던 아이가 물을 만나니 다시 힘이 솟아 오릅니다.
아이와 함께 몇번이나 미끄럼을 타고 - 저와 타면 속도가 더 빠르다고 좋아하더군요. - 물 속에서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9.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산->수영장으로 이어지는 나름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몸이 많이 피곤합니다.
그래도 저녁을 먹고 아이와 탁구놀이도 좀 하고 - 어제보다 공을 맞추는 기술이 늘었습니다. - 짧은 산책도 한 다음 아내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내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지만 이른 오후까지는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어 가까운 곳으로 하이킹을 가기로 했습니다. 두어시간만 걸으면 작은 호수까지 걸어갈 수 있는데 그곳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고 들어 일단은 그곳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오늘 봤던 아잎제를 생각하고는 수영을 할 준비도 함께 하기로 했죠.

이렇게 휴가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