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마지막 날입니다.
돌아가는 기차의 출발 시간이 오후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계획은 잡지 않았습니다.
숙소에서 출발해서 서너시간 걸을 수 있는 트래킹 코스를 리셉션에서 추천을 받아 도시락을 싸들고 가기로 했습니다. 다른 짐은 숙소에 맡겨 놓을 수 있어 좋더군요.

1. 원래의 계획은 두시간반정도 걸어 올라가면 산중턱에 있다는 작은 호수에서 함께 헤엄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전날 아잎제 Eibsee의 아쉬움도 남아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호수라니 먼저 그곳으로 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올라가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우선 길이 정비가 잘되어 있어 어렵지가 않았고, 거리도 생각보다 짧아 한시간반만에 목적했던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약간 가파른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아이도 문제없이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아이가 비록 순발력은 떨어져도 지구력은 괜찮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햇살이 꽤 따가웠지만 대부분 숲속에서 걷는 것이라 그리 덥지는 않았습니다.
호수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물 색깔도 탁하고 (짙은 초록색이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도 맑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군요. 그래도 이왕 왔는데 들어갈까 했지만 아내가 극구 싫다고 반대해 호수 앞에서 물 한모금 마시며 숨을 돌리고 그냥 다른 목적지를 정해 이동했습니다. 배낭 속에는 수영복, 수건 등이 잔뜩 들어 있었는데 그냥 들고 다닌 셈입니다.

2. 새로 정한 목적지는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부르크 베르덴펠스 Burg Werdenfels 라 불리우는 중세때 성의 유적입니다.
아이가 중세 시대의 기사에 꽤 빠져 있기도 해서 한번 갈까 하고 물어보니 흔쾌히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왔던 길을 조금 거슬러 가서 아까 숲속에서 봐두었던 샛길로 나가 유적으로 향했습니다.

길은 역시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고, 이정표도 잘 되어 있어 헤매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트래킹을 하는 그룹을 보니 GPS 장치를 이용해 미리 입력한 루트를 따라 다니더군요. 예전처럼 지도와 나침반으로 트래킹을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난 모양입니다.
약 한시간 정도를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으니 어느새 옛 성벽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길의 정비가 참 잘되어 있습니다.


나는 창을 든 기사다!



Burg Werdenfels는 1200년대에 처음 지어져 1600년대까지 사용되었던 성입니다. 이 지역을 관할했던 베르덴펠스가의 성이었는데 재정 문제가 생기면서 관리가 소홀해지고 성의 벽돌을 인근 교회를 짓는데 가져다 쓰면서 지금처럼 폐허가 되고 맙니다.

나를 이겨야 여기를 지나갈 수 있다!



유적 자체는 그다지 볼 거리가 아닙니다만 성위에서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의 전경을 볼 수 있어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잘 보면 멀리 스키점프대도 보입니다. 겨울이 되면 저 앞의 산등성이는 스키장으로 변하겠죠.


히히.. 재미있어요.



3. 다시 돌아오는 길 역시 수월했습니다. 성반대쪽으로 나가는 길로 빠져 나오니 길이 좁고 제법 경사가 있습니다. 다행히 내리막이라 크게 힘이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만약 이쪽 방향으로 올라왔다면 고생을 좀 했을 듯 싶어집니다. 계획보다 훨씬 더 빨리 도착할 것 같아 지난 3일동안 매일 발을 담그며 놀았던 개울가로 갑니다. 여전히 물은 맑고 매우 차갑습니다.

이미 탁족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어린이



4. 숙소로 돌아와 야외에 마련된 식탁에 앉아 들고만 다녔던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따뜻한 햇볕 아래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하고 또 아이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놀기도 했습니다.



5. 돌아가는 기차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뮌헨까지는 기차 안이 좀 덥다는 것 외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뮌헨에서 기차를 갈아타니 자리가 없더군요. 무거운 짐을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앉았습니다. 자리가 넉넉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ㅠ.ㅠ




6. 그래도 집에 돌아오니 역시 집이 제일 편합니다. :-)
이번 휴가도 별문제없이 즐겁게 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휴가지로 바다뿐 아니라 산이라는 옵션도 추가가 되겠네요.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더 재미있는 코스로 트래킹할 수 있겠죠.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