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Soul Food

Geschmacksache 2010. 2. 11. 22:42 posted by srv

흔히들 누구에게나 소울 푸드, 그러니까 여러 추억과 상념이 담겨 있어 먹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음식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내에게 당신의 소울 푸두가 무엇이냐 물어보면 술이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네요. ㅠ.ㅠ

저에게 있어 소울 푸드로 여겨지는 음식은 '카레라이스'입니다.
보통은 어렸을 때 할머니 혹은 어머니가 해주셨던, 손맛이 가득 담긴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은 맛보기 힘든 가정음식을 이야기할텐데 저는 이상하게도 그런 음식은 별로 생각나지 않고 - 물론 몇가지 생각나는 것들이 있긴 합니다만 이곳에서 해먹기 어려운 것들이라.. - 만들기도 어렵지 않고 맛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카레라이스라는 것이 제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합니다.

하지만 카레라이스는 제게 참 신기한 음식입니다.
혼자 생활하던 때에도 어쩌다가 카레를 해먹었는데 이때는 맛있는 김치가 생겼을 때입니다.
그러면 정말 한냄비 가득 카레를 만들어 놓고, 밥 역시 한통 지어놓은 다음 (그래봐야 당시 가지고 있던 전기밥솥은 두그릇반밖에 안되는 작은 것이었습니다만)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그릇을 꺼내어 평소 양보다 두배이상은 많은 양의 밥을 퍼놓고, 그위에 카레를 정말 듬뿍 올린 다음 한그릇 가득 김치를 꺼내놓고 열심히 먹었더랬습니다.

결혼 후에는 아내가 어렸을 때의 좋지 않은 추억때문에 카레를 좋아하지 않아 사실상 제게 있어 카레라이스는 연례음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내는 언젠가 갔던 수련회에서 식사로 나온 카레를 먹고 심하게 채한 이후로 카레를 절대 입에 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간절히 부탁해야 선심 쓰듯, 정말 일년에 한번정도 카레를 만들어주곤 했습니다. 물론 제가 혼자 만들어 먹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내의 눈치를 봐가면서 먹을 생각까지는 들지 않아서 그냥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이제 아이가 많이 자라 좀 자극적인 음식도 즐겨 먹는 편인데 - 그래도 김치는 못먹어요. ㅠ.ㅠ -  운좋게도 카레라이스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연례행사로의 카레였는데 아이가 카레의 맛을 알게 되어 자주 해달라고 부탁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아내도 아이까지 좋아하게 되니, 그리고 만들기도 간단한 음식이니만큼 이제는 선뜻 자주 만들어줍니다.
역시 남편보다는 아이의 입맛이 더 중요한 모양입니다...

어제 저녁 아내가 준비해놓은 카레를 아이와 함께 먹으며 도대체 왜 저의 소울 푸드가 카레라이스일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무슨 추억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카레가 특별히 더 맛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하지만 생각하기 시작한지 얼마 후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저와 동생이 국민학교 고학년정도의 나이일때, 저희 어머니는 많이 바쁘셨습니다. (지금도 바쁘시긴 마찬가지입니다만..)
평일에 강의를 나가시는 것은 물론이고, 토요일에도 무슨 여러 모임에 참석하시느라 집에 계시지 않을 때가 많았죠.
그런 토요일 점심은 당시 신제품이었던 '3분카레'가 될 경우가 많았습니다. 끓는 물에 데워, 한방울의 소스라도 버리지 않으려고 젓가락으로 꼭꼭 짜내어 먹었던 3분카레.. 참 많이 먹었더랬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어머니께서 3분카레가 아닌 진짜 카레를 해놓고 나기신 날이면 그 카레의 맛은 유난히 좋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결국 제게도 카레가 소울 푸드인 이유는 추억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식어서 데워 먹어야 했던 카레지만, 그를 통해 어머니의 따뜻함 같은 것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도 비어있는 집에서 어떤 따뜻함 같은 것을 찾고 싶어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깨끗하게 먹은 그릇을 보여주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도 분명 카레... 또 크게 한그릇 먹어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