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Fussball 2010. 5. 11. 00:10 posted by srv

  이번 시즌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를 아이와 함께 가려다가 못 가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제 슬슬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를 VfB의 팬으로 완전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데리고 가려 했던 것이다. 이미 아이를 데리고 슈타디온에 간 적이 물론 두어 번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아이에게 VfB에 대한 좋은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 전용 구장 공사때문에 관중석의 규모가 대폭적으로 줄어들어 이번 시즌 내내 표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는 문제와 주말마다 몰려드는 이런저런 스케쥴때문에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안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여 년전 VfB가 클럽 수뇌진의 말도 안되는 개삽질과 무능한 감독들의 대활약 덕분에 강등위기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강등 위기에 빠진 팀을 구원하는 소방수로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던 '크벨릭스 Quälix' 마가트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팀은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졌다. 그는 새로운 선수를 데려 올 자금을 제공받지 못하자 팀을 유스팀 출신의 젊은 유망주들을 아예 바꿔버렸다. 얌생이 수염에 삐쩍 말라 볼품 없는 외모였지만 펑펑 골을 넣으며 팀의 주 공격수로 떠오른 케빈 쿠라니, 금발의 미남으로 여성팬들의 급증가를 만들어낸 티모 힐데브란트,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와 팀의 오른쪽 풀백을 책임지며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안드레아스 힌켈, 비록 바이언에서 임대되었지만 완전 이적을 간절하게 바랬던 필립 람, 그리고 앳된 얼굴이지만 놀라운 테크닉과 무지막지한 스피드의 알렉산더 흘랩이 있었다.

이들은 소위 '융에 빌데 Junge Wilden'라 불리우며 하위권에서 맴돌던 팀을 중위권으로 올려놓았고, 나중에는 결국 챔피언스 리그 진출까지 성공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매 주말 순위표에서 팀의 순위를 확인하며 기뻐하는 것보다 흘랩의 활약을 보고 보고 또 보면서 어디에서 이런 선수를 데려왔는지 참 기특하다면서 혼자 실실 웃었더랬다. 그에게는 당시 분데스리가 그 어느 선수도 가지지 못한 놀라운 테크닉이 있었고, 그가 공을 몰고 상대 진영을 향해 돌진할 때면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기대를 하며 미리 환호성을 질러대었다. 그리고 그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언제나 멋진 장면을 연출해내곤 했다.




나중에는 마가트의 전매 특허가 되어비린, 든든한 수비를 기반으로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기본 전술의 정점에는 흘랩이 있었다. 아무리 상대 수비수들이 그를 에워싸며 막으려 하더라도 그가 몸을 가볍게 움직이면 어느새 골키퍼와 1대1 상황이 되었고, 아무 것도 아닌 상황에서 수비의 숲을 뚫어 버리는 그의 패스 하나에 우리 공격수들은 결정적인 찬스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그렇잖아도 유망주 육성으로 유명한 VfB의 상징 같은 선수로 자라게 되었고, 챔피언스 리그를 통해 독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슈투트가르트 근교에 아예 집을 사놓고, 슈투트가르트는 자기에게 제 2의 고향 같은 곳이라 언제나 말해 팬들을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젊은 팬들이 입고 있는 VfB 유니폼의 등에는 당시 4인방의 그 어떤 이름보다 HLEB의 네 글자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져 있었으며 흘랩과 관련된 이적 루머가 나올 때마다 팬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를 팀에 잔류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적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설사 어디를 가던 슈투트가르트에 꼭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었다.

그가 슈투트가르트를 떠나면서 당시까지 클럽 역사상 가장 많은 이적료를 팀에게 안겨주었다. 팬들은 더이상 흘랩을 흰 바탕에 가슴에 붉은 줄이 새겨진 유니폼 아래 볼 수 없게 된다는 점에 많이 슬퍼했으나 그를 통해 얻은 이적료로 좀 더 강한 팀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다른 한편으로 흘랩은 아스널의 젊고 빠른 축구에 잘 적응할 것이며 곧 프리미어 리그의 큰 스타가 될 것이라는 점에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팬들은 뜨거운 눈물과 박수로 그를 런던으로 보내 주었다.

그리고 VfB는 흘랩 뿐 아니라 결국에는 보르돈, 쿠라니, 힌켈 등의 주축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고 말았다. 돈이 워낙 없는 상태였으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렇게 된 과정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2004년에는 갑작스러운 펠릭스 마가트의 바이언 행으로 실망을 넘어 아예 좌절해야 했다. 마가트의 이적 소식이 전해지며 챔피언스 리그를 바라보던 팀의 순위는 그만 아래로 밀리고 말았다. 그것도 가장 마지막 라운드에. 이듬해 마티아스 잠머를 감독으로 데려와 준수한 성적을 시즌내내 올리기도 했지만 또다시 마지막 마무리를 제대로 못해 챔피언스 리그가 아닌 UEFA 컵 순위로 밀려나야만 했다. 그리고 쿠라니, 흘랩이 모두 떠난 자리는 토마손이니 그론키에니 하는 이름만 요란했지 실제로는 기대 이하였던 선수들로 채워지고 말았다. 지오바니 트라파토니라는 이름에 온갖 기대와 상상을 다했던 팬들의 절망과 아픔은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 후 흘랩은 기대대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젊은 유망주가 1부팀으로 올라오기만 하면 흘랩의 생각을 하며 기대를 하였지만 번번이 흘랩의 후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팀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력도 형편없었지만 트라파토니의 얼굴이 크게 찍힌 광고판을 사방에서 봐야만 했던 그 무렵 언제인가 챔피언스 리그 중계를 TV에서 보면서 나는 다시 흘랩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젊은 동료들을 이끄는 팀의 중추가 되어 있었다. 멋진 드리블은 여전했고 스피드도 발군이었다.




다만 이제 그를 TV 화면으로만 지켜봐야 한다는 회한은 생각보다 작지 않았고, 아스널의 멋진 경기를 보다가 주말에는 VfB의 막장 같은 경기를 봐야 한다는 점 또한 결코 견디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스널의 유니폼을 입은 흘랩의 모습이 점점 서먹해질 무렵 트라파토니는 슈투트가르트를 떠났고 아어민 페라는 듭보잡의 인물이 감독이라며 팀을 맡게 되었다. 다른 팬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기대치는 바닥을 보일만큼 떨어졌고 의도적으로 팬포럼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팀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 영입한 멕시코 듀오의 활약은 놀라울만큼 좋았으며, 툭하면 넘어지고 기회를 말아먹는다며 팬들의 조롱을 받던 아마팀 출신의 젊은 공격수 고메즈는 갑자기 골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반기... VfB는 달리고 이기고 또 이기기를 거듭했다. 연승 가도를 달리며 그동안 꿈도 꾸지 못했던 마이스터가 점점 가능성 있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리고 보훔에서의 말도 안되는 역전승... 얼마나 기뻐서 뛰어다녔는지 아내는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쳤고 아이는 아빠가 미쳤나 싶은 눈으로 쳐다봤다. 마이스터를 향한 경쟁자였던 샬케는 라이벌인 도르트문트에게 패하면서 VfB의 우승은 이제 코앞까지 밀어닥쳤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코트부스와의 마지막 경기. 성당에 가야했기에 경기를 볼 수는 없었지만, VfB 팬임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던 독일 성당의 주임 신부님마저 경기장에 가야 한다며 미사를 다른 신부님께 맡겼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 역시 틈날 때마다 경기 상황을 문자로 체크했더랬다. 그리고 마이스터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날 저녁 확인할 수 있었던 히츨과 케디라의 멋진 골 장면.. 슈투트가르트 시내는 기쁨에 넘치는 팬들로 가득 차 지금까지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장관을 연출했다. 슐로스플랏츠 Schlossplatz에서 열린 축하식에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유명 뮤지션들인 Die Fantastishcen Vier까지 등장하는 세기의 장관이었다다 한다...

그리고 또 두 시즌이 지났다. 감독은 아어민 페에서 마르쿠스 바벨로 바뀌었고 VfB는 또다른 후반기 질주를 선보이며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정식 감독 자격증이 없는 바벨은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며 감독 자격증 교육 코스까지 병행해야 했고, 이제는 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한 마리오 고메즈를 최고의 이적료를 받으며 바이언으로 이적시키며 클럽의 자금 구사 능력을 엄청나게 올려놨다. 이제 팬들의 기대치는 유로파 리그 진출로는 만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고, 클럽의 수뇌진이 더이상은 바스튀어크 같은 황당한 영입은 하지 않길 강력하게 바라고 있었다. 또한 거의 혼자서 팀의 득점을 책임지다시피 했던 고메즈의 빈 자리를 적절하게 채워줄 뛰어난 공격수의 영입을 바라고 있었다. 매일매일 아무개와 협상이 이루어진다는 소식들만 들으며 초조해하던 팬들은 갑작스러운 뉴스를 접하게 된다. 아스널에서 큰 뜻을 품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으나 부상과 부진으로 팀에 자리를 못잡은 알렉산더 흘랩이 VfB로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나온 것이다. 여름내내 기다렸던 새 공격수의 이름은 파벨 포그레브냑이라는, 기대치에 약간 못미치는 이름으로 결정되었지만, 그 누구도 아닌 흘랩이 그의 제 2의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팬들의 가슴은 다시금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몸상태가 아직 좋지 않긴 했지만 챔피언스 리그 본선 진출을 위한 플레이 오프 경기에서 흘랩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잃었던 아들이 돌아온다면 이런 기분일까...꿈에도 잊지 못했던 그 드리블과 그 스피드.. 이것이 과연 꿈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비록 완전 이적이 아니라 임대이긴 하지만 이번 시즌에 흘랩과 함께 또다시 멋진 시즌을 보낸다면 그의 완전 이적 역시 꿈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규 시즌이 시작되면서 마주해야 했던 것은 흘랩의 환상적인 활약이 아니라 체력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피곤하고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다른 선수들과의 컴비네이션은 기대하기도 어려웠고, 탑스타에게 기대하는 그 무언가를 결코 발견할 수 없었다. 그의 드리블은 번번이 상대 선수들의 수비에 막혔고, 그의 패스는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으며, 팀에 융화하지 못하는 모습을 점점 더 많이 보여주며 이도저도 아닌 선수가 되어 버렸다. 흘랩의 부진만큼 팀 전체도 부진하여 결국 팀은 강등권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참담한 팬들은 다분히 폭력적인 모습까지 보여주며 클럽 수뇌진에 항의를 하였고 결국 마르쿠스 바벨은 부진의 책임을 가지고 팀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바벨의 사퇴 기자 회견이 열린지 수 시간만에 VfB는 새 감독으로 스위스 출신의 크리스티안 그로스를 선보인다. 그 무엇보다 팀의 기강을 새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로스는 그동안 팀의 결속력에 큰 저해 요인이었던 일부 주축 선수들의 단속하는데 노력한다. 그리고 그 대상에 흘랩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로스는 흘랩을 주전으로 내보내긴 했지만 60여분이 되면 어김없이 교체를 시켰고 이에 불만을 품은 흘랩은 다음 시즌 VfB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0퍼센트라고 말하며 노골적으로 감독에게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전임자인 바벨과는 달리 풍부한 경험으로 다져진 일관된 축구 철학을 가진 그로스는 이에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흘랩에게 벤치 달구기로 응답했다. 그리고 흘랩이 팬들과 작별할 수 있었던 마지막 홈경기에 그는 아예 경기에 나오지도 못했다. 이에 흘랩은 큰 불만을 표했으나 이에 대해 동정심을 표하는 팬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리고 흘랩은 임대 계약이 만료되어 다시 팀을 떠나게 되었다. 애당초 기대했던 완전 이적은 커녕 적지 않은 임대료에 엄청난 연봉을 지급했지만 결과는 시들어가는 오만한 스타를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팬으로 일생동안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나와 흘랩은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다음 시즌에는 슈타디온에 꼭 가려고 한다. 아이와 함께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새로 만들어진 관중석에 서면 정말 멋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