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적어놨던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 경기에 대한 소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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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조 조별예선 경기
1. 독일 - 호주 소감
독일 대표팀이 남아공으로 떠나기 직전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졌던 보스니아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보여주었던 기세가 그대로 이어지는 듯한 경기였습니다. 팀의 가장 큰 주축인 발락이 빠진 데다 독일 축구 역사상 평균 연령 최연소팀이라는 말이 증명해주듯 큰 대회 경험이 적은 선수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월드컵 같은 대회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중요한 경험이 적다는 면에서 많은 이들이 우려를 했으나 일단 뚜껑이 열리고 나니 독일스럽지 않은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독일 감독인 요아힘 뢰브는 지난 시즌 리그에서 매우 부진했던 클로제와 포돌스키를 공격수로 발탁하며 많은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만 이 경기를 통해 일단은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기의 주인공은 역시 메수트 외질입니다. 독일이 오랫동안 그토록 염원했던 진정한 10번을 드디어 손에 넣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외질이 이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 스타일은 절대 아닙니다만 지난 2008 유로에서 독일팀에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을 훌륭하게 메꿔주며 독일의 공격력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습니다. 볼핸들링과 키핑, 스피드, 시야와 패스능력 모두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으며 순간적으로 상대의 수비진을 허물어 버리는 그의 플레이는 독일 축구가 아름다워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고 또 기대해서도 안되었을 토마스 뮐러의 활약 또한 빛났습니다. 그는 지난 시즌 루이 반 할이 지속적으로 경기에 내보내기 전까지 3부리그에서 뛰던 10대후반의 풋내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성적에 대한 정신적 압박 없이 자유롭게 플레이를 펼치며 지난 시즌 바이언 뮌헨의 좋은 성과에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제는 독일 대표팀에 발탁되어 바로 첫번째 월드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경기에서 골까지 성공시켰으니 이보다 더 좋은 케리어 스타트는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발락을 대신해 6번 역할을 맡고 있는 슈바인슈타이거에 대해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는 더이상 '슈바이니'라고 불리면 안될만큼 성숙하고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소속팀에서 이미 포지션을 중앙으로 옮기면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능력을 드러내었는데 대표팀에서도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드리블과 볼키핑이 우수한 선수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으면 경기를 얼마나 수월하게 전개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경기의 흐름을 생각하며 전반적인 리듬이나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첫상대인 호주가 너무 수비적으로 나왔음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애당초 호주가 크게 승산이 있는 경기는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모든 선수가 좀 더 공격적인 마인드로 나왔더라면 경기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그런 모험을 하기에는 호주의 감독인 베어벡의 성향이 너무 안전위주이긴 합니다.
일단 독일은 첫번째 단추를 멋있게 끼우며 이번 월드컵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 경기는 아마 조별예선에서 가장 강력한 상대인 세르비아.. 어쩌면 독일의 진짜 실력을 엿볼 수 있는 경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 세르비아 - 독일 소감
중요한 일정이 있어 후반 중반까지만 볼 수 있었습니다. ㅠ.ㅠ
나중에 하일라이트를 보니 위험한 장면들이 더 연출되었더군요...
일단 가장 큰 패인은 심판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클로제의 두번째 파울은 센추리 클럽 가입을 앞둔 베테랑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의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리그 경기라면 경고를 받을 반칙은 아닙니다만 이 경기의 전반은 거의 대부분의 반칙에 카드가 나오는 듯한 양상이었기에 특별히 더 조심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게다가 위험한 상황도 아니고 센터써클 부근에서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초반부터 심판의 경고가 마구 나오자 선수들이 많이 당황하는 것이 눈에 뜨였습니다. 여기에 세르비아는 매우 지능적인 플레이로 독일의 공격을 막았죠.
현재 독일의 가장 큰 약점은 수비입니다. 스피드나 위치선정에서 문제가 있어 털털 털린 바트슈투버만 문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을 잡았을 때 전방으로 공격 전개에 문제가 있는 두 센터백이나 신장이 작아 큰 공격수를 붙이면 거의 어김없이 헤딩을 따낼 수 있는 람도 문제가 있죠. 이 모든 문제는 사실 호주와의 경기에서도 어렴풋이 나타났었는데 세르비아는 이를 놓치지 않고 철저히 이용하더군요. 실점 장면에서 스피드에 밀리며 크로스를 내준 바트슈투버의 실수를 시작으로 2미터의 장신 공격수와 람이 헤딩 경합을 벌이게 생겼는데 이를 뒤늦게 알고 자기 자리를 떠나면서 상대 공격수를 놔준 메르테사커나 메르테사커의 움직임을 보고도 그 자리를 메꾸지 못한 프리드리히까지 수비수 4명이 연속적으로 실수를 하면서 어이없는 골을 내주었죠. 여기에 메르테사커나 프리드리히가 공격적인 전진 패스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대는 철저하게 공을 람의 방향으로만 유도하면서 독일의 공격을 한 방향으로 묶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독일은 공격의 실마리를 도저히 풀어가지 못하더군요.
공격에서는 클로제가 퇴장당하면서 최전방에 크로스를 받아줄 선수가 없는데도 가운데로 계속 크로스 시도를 하더군요. 도대체 뭘하자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뮐러나 포돌스키를 빼고 제대로 된 공격수를 넣는 쪽이 좀 더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어제 뢰브는 선수들의 총체적 부진에 충격을 받았는지 마찬가지로 제 정신이 아니더군요. 교체 타이밍이 모두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돌스키의 실축은 아쉬움이 많긴 하지만 그보다 이 경기때문에 모처럼 좋은 컨디션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더 걱정이 됩니다. 경기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자 포돌스키가 급해지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던데 결정적인 기회까지 날렸으니 다음 경기에서 부진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외질-케디라-슈바인슈타이거의 미드필더진은 준수한 모습이었다는 점입니다. 전반 케디라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는 장면은 무척이나 아쉽더군요.
한마디로 이 경기는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엉망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운도 지지리 없었고 수비의 실수는 거의 언제나 연쇄적인 실수로 이어지면서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죠. 이제 뢰브는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된 수비진을 어떻게든 변화시켜야 합니다. 과연 왼쪽 측면에 어떤 선수를 놓아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겠죠. 아오고나 얀센 어쩌면 람까지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전술적 카드가 가능한 공격진과는 상반되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수비진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의 성적을 좌우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3. 가나 - 독일 소감
이 경기 직전까지 독일은 세르비아 경기에서의 패배의 충격에서 아직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성급한 미디어들은 조별예선 탈락이 되었을 때를 가정하며 뢰브 체제 이후를 벌써부터 예상할 정도였죠. 벌써 어느 클럽과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었습니다.
경기 전날 빌트에서 예상한 선발 포메이션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클로제를 대신해 카카우가 나올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바트슈투버를 대신해 보아탱을 집어 넣은 것은 빌트만의 상상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발표된 엔트리는 빌트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빌트가 다시 대표팀과 은밀한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일까요..?
이 경기에 대한 선수들의 정신 자세는 한가지 뿐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이긴다는 것이죠. 미국의 막판 득점으로 C조의 결과가 의외로 나왔는데도 독일은 가나와 비기며 잉글랜드를 피할 생각은 애당초부터 없었습니다. 그러기에는 선수들의 패배에 대한 충격은 너무 컸으니까요. 게다가 주심이 브라질에서 악명이 높은 인물로 선정되면서 세르비아 경기의 악몽이 솔솔 되살아났습니다. 이 심판은 브라질 축구 협회에서조차 피파에 재고를 요청할만큼 좋지 못한 평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기는 예상대로 느슨하게 시작되었습니다. 독일 선수들은 쓸데없는 파울을 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듯 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몸이 무거워 보여 고지대에서 열리는 경기에 힘들어하는 듯 했습니다. 가나 역시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며 무리하지 않고 경기를 풀어나가려 노력하더군요. 하지만 경기력 자체로 보자면 사실 세르비아와의 경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어떻게든 이기는 것이 중요했기에 모헙을 하지 않았으며 지극히 독일적인 방법으로 경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전반에서 외질의 좋은 찬스와 후반에서의 득점 장면을 제외하고는 독일은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수비에서 메르테사커가 계속 실수를 범하면서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죠. 노이어와 프리드리히 그리고 람은 이런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비록 스펙타클한 장면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경기였습니다만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힘든 유형의 경기였습니다. 가나는 쓸데없이 전방으로의 긴 패스를 사용하지 않고 파워를 앞세워 득점을 노렸습니다만 아프리카 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좋은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는데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독일은 공격시 서로 호홉이 잘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카카우가 공을 받기 위해 미드필드나 사이드로 빠졌을 때 전방을 채워주는 선수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뮐러는 감독의 지시가 있었는지 사이드 라인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했고 포돌스키는 초반에는 의욕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프리카 팀들이 조예선에서 탈락한 상태이기에 가나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호주가 골을 넣으며 앞서간다는 소식은 가나 선수들에게도 빨리 전달이 되어 이후 경기가 더 루즈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결국 이들은 이기기보다는 크게 지지 않으려 노력한 셈입니다.
외질의 득점 장면은 그가 이번 월드컵에서 놓친 결정적인 기회들에 대한 아쉬움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멋진 것이었습니다. 슬쩍 골키퍼의 위치를 보고 아무런 주저없이 날린 강력한 왼발슛은 가나의 골키퍼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미 리그의 경기를 통해 그가 좋은 득점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종종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대표팀에서는 좀 더 많은 득점에 성공해주길 바랍니다.
뢰브의 선수 교체는 그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보아텡과 슈바인슈타이거의 교체는 이들이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고 트로코프스키의 투입은 이기고 있는 경기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는 옌센을 처음부터 넣지 않는 것은 수비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포돌스키때문이며, 크로스의 투입은 슈바인슈타이거/케디라를 대신할 선수를 테스트하는 듯 했습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허벅지 근육이 뭉치는 부상을 입었는데 그 경중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경기 직후에는 근육 파열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그정도의 심각한 부상은 아닌 모양입니다. 외질은 근육에 무리가 온 상태지만 심각한 것이 아니기에 따로 치료를 받지는 않는다 합니다.
16강 경기
독일 - 잉글랜드 소감 : 웸블리 골의 복수
1966년 7월 30일, 런던 교외에 위치한 그 유명한 웸블리 경기장에서는 잉글랜드와 독일(당시는 서독이었습니다만)의 월드컵 결승 경기가 열렸습니다. 12분에 독일의 헬무트 할러가 잉글랜드의 수비수가 헤딩으로 걷어낸 공을 슛으로 연결해 첫번째 골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18분에 잉글랜드는 보비 무어의 프리킥을 지오프 허스트가 머리로 골을 넣으며 1:1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립니다. 양 팀은 팽팽한 접전을 벌이며 결국 후반전 종반까지 점수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78분 코너킥에 이어 페널티 에어리어 경계 부근에서 잉글랜드 선수의 슛을 독일 수비수가 걷어내려 했지만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해 오히려 뒤로 가볍게 뜨고 말았고 이를 잉글랜드의 마틴 피터스가 놓치지 않고 머리로 받아 넣어 골을 성공시킵니다. 경기 종료가 가까워지자 잉글랜드는 경기의 속도를 늦추려 노력합니다만 종료 직전 독일은 잉글랜드 진영의 좋은 곳에서 프리킥을 얻어냅니다. 직접 슛으로 연결되었으나 이는 골문 앞에서 혼전 양상으로 이어지고 이 와중에 오른쪽으로 흘러나오는 공을 독일의 볼프강 베버가 골대 안으로 차넣으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98분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크로스를 지오프 허스트가 받아 강슛을 때립니다. 공은 골키퍼 머리위를 지나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근처에 떨어졌다가 튀어나오며 이를 독일의 수비수인 볼프강 베버가 머리로 골아웃을 시킵니다. 그러나 스위스 출신의 주심 고트프리트 딘스트와 소비에트 연방 출신(정확하게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이죠)의 선심 토픽 바라모프는 무어라 의논을 한 후 이를 골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후 만회골을 넣기 위해 독일은 공세에 나서고 경기 종료 직전 텅 빈 독일 진영을 허스트가 공을 몰고 들어가 추가골에 성공해 결국 경기는 4:2로 잉글랜드가 승리하며 처음이자 지금까지 마지막으로 월드컵 우승을 합니다.
98분 허스트의 골은 이후 수십 년동안 골이냐 아니냐를 놓고 꾸준히 논란이 있었습니다. 문제의 판정을 내린 선심 바라모프는 아제르바이잔어와 러시아어만 구사할 수 있었고 주심인 딘스트는 이 두 언어를 전혀 몰랐기에 골판정은 제스추어만으로 이루어진 의논으로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바라모프는 회고록에서 골이 골라인을 분명하게 넘은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고 심지어는 공이 그물에 맞아 그물이 흔들리는 것까지 봤다고 주장했지만 여러 기록 필름들을 통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잉글랜드의 공격수인 로져 헌트는 분명히 공이 골라인을 넘었다고 확신했기에 뒤로 돌면서 환호를 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머리로 분명하게 골대 안으로 밀어넣었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독일의 대통령이었던 하인리히 뤼프케는 '공이 안에 들어갔었다.'고 말해 대단한 구설수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90년대 들어 옥스포드 대학에서는 당시 사진들과 미디어 자료를 통해 '웸블리 골'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데 공이 골대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결론을 냅니다. 그리고 이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다른 각도에서 찍은 영상 자료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영상을 찍은 카메라는 거의 골라인과 같은 높이에서 위치해 공이 분명하게 골라인을 넘지 못하고 라인 위를 맞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34년이 지난 2010년 6월 27일, 이번에는 웸블리가 아닌 남아공의 블룀폰테인에서 열린 독일과 잉글랜드의 월드컵 16강 경기에서 다시 비슷한 장면이 벌어집니다. 프랭크 램파드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번에는 여러 카메라를 통해 분명히 공이 골라인을 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앞에 떨어지는 것을 독일의 골키퍼인 마누엘 노이어가 잡습니다. 노이어는 공을 잡자 마자 길게 앞으로 던져 경기를 계속 이어가는데 우루과이 출신의 주심 호르헤 라리온다나 선심인 마우리치오 에스피노사나 공이 골라인을 넘은 모습을 보지 못해 골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축구의 신은 정말 얄밉도록 못되었습니다. 계속 수세에 몰리던 잉글랜드가 모처럼 좋은 기세를 잡아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는 그 순간, 그동안 몇십년동안 논란이 많았던 웸블리 골의 장면을 재연시키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누구나 바로 인정할 수 있는 분명한 골이지만 심판은 또다시 이를 보지 못하고 노골로 선언하고 맙니다.
만약 이것이 골로 인정되었다면 경기는 어떻게 흘러갔을지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잉글랜드가 경기를 뒤집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경기 내내 좋은 공격력을 보여주었던 독일이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승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34년 전 웸블리에 있었던 경기 역시 마찬가지였겠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심판의 잘못된 판정은 그만큼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며 그런 점들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은 축구에 대한 이야기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이번 월드컵에서 봐야 했던 심판들의 수준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에는 저 역시 동감합니다. 이는 현/전 심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으며, FIFA내 심판 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심판 선발 과정과 교육 과정을 이해할 수 없게 바꾸어놓아 생겨난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논란의 장면을 잠시 옆으로 치워놓고 경기를 살펴 본다면 잉글랜드의 주력 선수들의 부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BBC에서 전문가로 나온 알란 쉬어라나 게리 리네커 모두 경험이 미천한 독일 애송이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잉글랜드의 베테랑들을 강력하게 비난했습니다. 수비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루니는 제대로 된 슛하나 보여주지 못했고, 경기를 조율해야 할 주장인 제라드는 한번의 찬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비진을 이끌던 테리 역시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값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독일은 시작부터 매우 공격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습니다. 허벅지 근육 부상으로 경기 출전 자체가 어려우리라 예상되었던 슈바인슈타이거는 외질, 케디라 등과 함께 멋진 컴비네이션 패스를 선보이며 잉글랜드의 미드필드를 유린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클로제, 포돌스키, 뮐러로 이어지는 세 명의 공격수들은 수비진을 흔들며 계속 좋은 기회를 만들며 잉글랜드의 골문을 위협합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강한 상대에 대해 기죽어 있는 모습이라곤 독일의 젊은 선수 그 누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잉글랜드 선수 개개인의 높은 수준은 매번 독일을 위협합니다만 독일의 수비수들이나 골키퍼인 노이어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선방합니다. 특히 아르네 프리드리히는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프리드리히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젊은 수비라인을 지켜내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동안 불안정하던 메르테사커 역시 몇번의 실수를 범하긴 합니다만 이전 경기들보다는 훨씬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리그에서 부진의 부진을 거듭했던 클로제와 포돌스키를 대표팀에 포함시킨 뢰브의 결심을 의구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미디어와 팬들은 이제 더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상으로 빠진 발락의 공백을 젊은 선수들이 메우기는 어려울 것이라 보았던 전문가들 역시 겁없이 줄기차게 밀어부치는 이 젊은 팀을 보며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뢰브는 독일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무엇보다 강팀을 상대로도 멋진 축구를 선보이며 앞으로 이 팀이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해 큰 기대를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경기 후 뢰브의 말대로 만약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도 이런 경기력을 선보인다면 독일은 어떤 팀에게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축구의 신이 또다시 못된 장난을 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8강 경기
마라도나 - 독일 소감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0년 6월 20일은 독일 축구의 생일로 정해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이날을 계기로 독일 축구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는 첫번째 걸음을 뗄 수 있었고, 우리는 지금 월드컵에서 그 첫번째 수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열린 2000년 유로의 A조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은 2진으로 구성된 포르투갈을 맞이하여 0:3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합니다. 그리고 독일은 수십년만에 토너먼트 대회에서 조별 라운드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당시 감독이었던 에리히 리벡은 바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리벡이 감독직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발탁되었던 로타 마테우스는 길고 긴 대표 선수 경력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이날의 충격은 100여년의 독일 축구 역사에 있어 최저점을 찍었다고 말해도 문제가 없을만큼 독일 축구 암흑기의 정점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 축구 연맹은 젊은 유망주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이미 독일보다 선진적인 유소년 시스템을 구비한 프랑스를 롤모델로 독일 전역에 양성소를 설치하면서 유망한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 성장시키는데 많은 투자를 합니다. 그리고 이 혜택을 받은 첫번째 세대가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독일의 젊은 선수들입니다.
이들은 비록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지만 실제 플레이는 백전노장도 혀를 내두르게 할만큼 서두르거나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것이 특징이죠. 이들은 기본적인 테크닉은 물론이고 전술적인 이해 역시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잘 배웠으며 - 케디라는 지금 내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슈투트가르트의 유스팀에서 배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 분데스리가의 소속팀에서도 대부분 주전급이기에 실전의 경험 역시 적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국제적인 큰 무대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는데 오히려 패기를 무기로 자신의 기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감독인 마라도나는 이런 독일의 젊은 선수들을 너무 얕보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스타 선수들을 너무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감독이 메시나 테베즈 같은 선수의 능력을 믿지 않겠습니까만은 그것이 믿음을 넘어 광신이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광신이 아니라 오만이겠군요.
마라도나는 선수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면 어떤 팀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며 그들이 자유스럽게 공격적인 축구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상대팀이 어떻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상대에 따라 그에 맞는 작전을 세운다는 것 또한 불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감독으로서 가장 이상적으로 팀을 끌고 나가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팀간의 격차가 현저하게 줄어든 현재의 축구에서 이러한 마라도나의 생각은 너무 나이브하고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작금의 축구 세계에서의 실력 차이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그는 결코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상대하는 팀이 다른 팀도 아닌 독일인데도 말이죠. 마라도나가 맞상대인 독일의 뢰브는 아르헨티나의 약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이후 독일에서는 뢰브의 대표팀 감독 유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그의 능력과 결과에 대한 찬사는 모든 매체에서 터져 나오고 있으며 독일의 축구 전문가들 역시 극찬에 극찬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오늘 있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패한다 하더라도 뢰브는 앞으로도 계속 독일 대표팀을 맡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는 재능 있는 젊은 선수들을 모아 충분한 동기 부여와 뚜렷한 역할 분담을 통해 하나의 팀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냥 말로 쓰기에는 간단하지만 사실 이는 감독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입니다. 우리는 분데스리가의 일상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실패한 감독들을 자주 보고 있으니까요. 뢰브는 발락의 부재로 생겨난 권력의 공백을 여러 명의 선수에게 권한을 나누어 주면서 팀의 구조를 수평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오랜 합숙 기간동안 생겨날 수 있는 선수간의 갈등이나 반목을 적절하게 예방하면서 선수들 스스로가 좀 더 책임감을 가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르헨티나를 대비해 선수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경기의 모습을 정확히 알려주었고 선수들은 이것을 보기 좋게 실제로 옮겼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컴비네이션 패스를 이용해 풀어 나오고, 상대의 주공격패턴들을 사전에 읽어내 협력 수비로 이를 막아내며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빨리 전환해 스피드가 약한 상대 수비진을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패배는 감독간의 싸움에서 결정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독일의 젊은 선수들이 아르헨티나의 베테랑들을 맞아 당당하게 잘 맞서기도 했습니다만 마라도나가 자신이 고집하는 전술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 순간부터 아르헨티나의 패배는 사실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그의 발언은 결국 그의 생각이 어떻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라도나는 독일을 얕보았고 자만했기에 패한 것입니다. 변명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있을 스페인은 전혀 다른 팀입니다. 스페인을 이기기 위해 독일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야 할 것이며 팀으로써 진정한 실력을 끌어내야만 할 것입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좋은 경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임:
1.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이후 한국 언론들의 기사들은 읽고 있기가 거북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독일 대표팀이 강한 이유가 '애국심이 강해서'라는 - 오마이뉴스의 이준목 기자의 기사 '단기전 강한 독일의 '무기'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 - 기사를 보고는 너무 황당해서 기자에게 항의 메일이라도 쓰려고 했더랬습니다.
독일은 애국심이 절대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애국심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프랑스쪽이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 가깝겠죠. 이런저런 역사적 배경때문에 독일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나라입니다. 독일에도 애국심, 충성 운운하는 사람들이 물론 있긴 있습니다. 바로 네오 나치들이죠.
2. 독일의 공격 축구에 대해 놀랐다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러나 분데스리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공격적인 축구가 리그 경기에서 그리 낯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클린스만이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역설했던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축구'는 이제 독일 안에서는 적어도 그 결실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결과 중시 축구'의 대명사인 바이언까지 이제는 재미있고 볼만한 축구를 구사하는 시대이니 말입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DFL은 분데스리가의 중계와 관련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분데스리가 경기는 본 적도 없으면서 독일 축구가 이러니 저러니 하는 기사를 써대는 우리나라 기자들의 수준 향상을 위해서라도 필요합니다.
4강 경기
독일 - 바르셀로나 소감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경기를 보면서 아.. 역부족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독일의 젊은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모두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즉, 다 보여주지 못했기에 아쉽습니다.
놀라운 패스웍을 통한 공점유의 유지는 워낙 스페인 축구의 대명사였지만 - 최근에는 바르셀로나만이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 이를 뚫을 방법을 이렇게 찾지 못했다는 것 역시 아쉽습니다. 역시 국제적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에게 숙명적인 '풋내기'들의 불안 요소때문이었을까요? 독일 선수들은 스페인에게 너무 많은 '존경심'을 표시했고, 때문에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경기에 못했습니다.
어쨌든 독일팀은 경기 후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한대로 너무 겁을 많이 먹었습니다. 20분정도까지는 그래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결국에는 마지막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더군요. 실수를 해서 실점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차 있는 모습이 계속 보이더군요. 스스로를 온전히 믿고 위험에 도전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겁없는 플레이를 보여줬던 선수들이라 이에 대한 실망은 안가질 수가 없군요.
끝나고 하는 푸념이지만 왜 트로코프스키를 처음부터 뛰게 했을까요? 전반내내 힘겨워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정도였던 보아텡을 왜 후반 시작부터 바꾸지 않았을까요? 왜 마지막 공격의 카드를 80분이 넘어서야 써먹었을까요? 왜 수비라인이 평소와 달리 그렇게 뒤로 물러서 있어야 했을까요? 왜 하필이면 최근 몇년 동안 실점하지 않았던 셋트 피스 상황에서 골을 먹어야 했을까요? 아니 그 무엇보다도 크로스는 왜 인스탭킥(Vollspann)이 아니라 인사이드킥으로 슛을 했을까요???
스페인은 어제 이번 월드컵에서 자신들에게 있어 가장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었고 승리했습니다. 이들의 공격 패턴은 한정되어 있지만 이 팀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사비-이니에스타가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공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이라면 독일팀의 장래를 생각하면 많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어제 종료 휘슬이 울리자 바닥에 쓰려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던 슈바인슈타이거의 모습은 이들이 가졌을 슬픔과 안타까움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패배를 통해 이들은 이제 절대로 지고 싶지 않다는 승리로의 의지를 다지게 되겠죠. 이 젊은 선수들에게 이것은 나중에 큰 경험으로 그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인생은 계속 굴러가는 것이니까요.
Das Leben geht we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