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도 어김없이 하위권에서 시작하는 모습은 말할 것도 없이 실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그다지 큰 위기 의식을 느끼지는
않았더랬습니다. 이유는 지금의 부진이 VfB만의 문제가 아닌 월드컵때 선수 차출이 심했던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과 지난
여름의 훈련 기간동안 크리스티안 그로스의 팀운영을 보면서 팀을 이끄는 그의 능력에 대해 신뢰감을 쌓은 상태였기에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VfB의 팬들이 크리스티안 그로스를 '최근 몇년만에 처음으로 얻은 감독다운 감독'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림없이 침착하게 자신의 구상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그로스가 가졌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많은 젊은
유망주들을 본궤도에 올려놨던 그의 경력 역시 VfB의 노선과 잘 맞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해임 소식을 듣게 되자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분노와 실망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소식을 들은 롯데팬들의 마음이 이와 비슷할까요? 물론 그 충격의 크기는 이런 소식이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중간에 나왔어야 제가 받은 충격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만. 나름대로 오랫동안 VfB의 팬질을 하면서 팀수뇌부에 이렇게 큰 실망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렇게 발전의 가능성이 풍부한 팀을 축구에 대해서는 x도 모르는 인간들이 말아먹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당수의 VfB 팬들이 이번 일로 클럽 멤버쉽을 버리겠다는 말을 하는 것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VfB의 팬들이 아닌 분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이에 대해 좀 긴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야기는 거의 10년전부터 시작됩니다.
VfB 슈투트가르트를 오랫동안 이끌었던 인물은 전 독일축구협회 회장인 게하르트 마이어-포어펠더 Gerhard Mayer-Vorfelder 입니다. (흔히 MV로 줄여서 부릅니다.) 그는 1968년부터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축구협회의 이사로 일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유력한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76년부터 78년까지는 주정부의 재무부 장관이었고 80년부터 91년까지는 스포츠,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했습니다. 그가 VfB의 회장이 된 것은 75년인데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42살밖에 안되었습니다. VfB의 회장으로 초창기에는 2부리그 강등의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했지만 MV 회장 재임기간동안 VfB는 두번의 마이스터와 한번의 DFB 포칼 우승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꽤나 독선적인 스타일의 인물이라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와 관련한 비리 스캔들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테니스의 여제 슈테피 그라프의 부친이 저지른 세금포탈과 관련된 것이죠.) 그가 VfB와 이룬 성과만큼은 어느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VfB 회장으로서의 말년인 90년대말 연이은 감독 선임 실패(DFB 포칼 우승 등의 준수한 성적을 거둔 요아힘 뢰브를 자기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쫓아내고 팬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천지 원수인 칼스루에 출신의 비니 쉐퍼를 감독으로 데려 왔습니다만 실패. 이후 당시 이름을 얻기 시작한 랄프 랑닉을 데려오지만 역시 실패) 및 스카우팅 실패(에이전트의 농간으로 발라코프와 터무니 없는 고액의 계약을 맺었던 사건이나 거액의 이적료를 내고 데려온 유고 출신 선수들이 유고 2부 리그의 무명 선수들이었던 사건)로 그만 VfB는 스포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MV는 회장직을 그만두어야 했고 (그가 이미 DFB쪽의 일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회장 사퇴는 본인 스스로에게 큰 타격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팀은 2부리그 강등위기라는 어려운 난국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었죠.
MV의 후임으로 VfB의 회장을 맡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 은행 출신의 만프레드 하스 Manfred Haas 는 클럽의 재정적 재건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동안 MV 아래에서 방만하게 운영되던 클럽의 조직을 일신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절대적으로 줄이며, 수입의 증대를 위해 다양한 스폰서를 유치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죠. 그렇기에 당시 팀을 가까스로 강등에서 구해낸 감독인 펠렉스 마가트는 어쩔 수 없이 클럽의 유스팀 출신의 젊은 선수들을 기용할 수 밖에 없었고, 2002년에는 재계쪽의 인맥이 풍부한 독일 고용주 연합(우리나라로 치자면 전경련 같은 조직)의 회장인 디터 훈트 Dieter Hundt 가 클럽 이사회의 의장으로 취임합니다. MV는 크게 비교될정도로 조용한 성격의 하스가 추진한 이런 노력들은 팀이 절은 돌풍 Junge Wilden 을 일으키며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고 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멋진 승리를 거두면서 스포츠적인 면이나 재정적인 면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둡니다. 2003년 독일 IBM의 사장 출신인 에르빈 슈타우트 Erwin Staudt 가 하스의 뒤를 이어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VfB의 조직은 지금까지 똑같은 수뇌진을 구성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MV가 회장이던 당시에는 선수 영입과 계약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이 MV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슈타우트, 훈트 그리고 20년째 클럽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울리히 루프 Ulrich Ruf의 이사회에 의해 결정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사회의 일원으로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판매/마케팅 사장단의 일원, EnBW(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대규모의 전력회사)의 대변인, 포르쉐의 마케팅 총책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은행의 이사 등 지역 경제계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상태입니다. 이사진의 이름만 놓고 본다면 어느 축구 클럽의 이사회라기보다는 무슨 대기업의 이사회를 연상케 만듭니다. 그리고 여기에 바로 VfB의 현재 문제가 있습니다.
눈썰미가 있는 분이라면 이미 문제를 파악하셨을 것 같습니다. 네, 축구 클럽인데 이사진에 축구계 출신의 인사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바로 문제입니다. 회장인 슈타우트나 이사회 의장인 훈트나 모두 재계 출신이지 축구계 출신이 아닙니다. 즉, 이들에게는 축구와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업인 출신들답게 이들은 VfB 슈투트가르트라는 '회사'를 매우 건실한 재정을 가지도록 훌륭하게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나 VfB는 어디까지나 '축구'클럽이지 일반 기업이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VfB가 축구 클럽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이나 축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아쉽게도 결여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러한 약점을 보완시켜줄 전문가가 그들 곁에 없습니다. 어차피 팬의 입장에 가까운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슈타우트는 본인 스스로가 축구 자체에 대한 코멘트는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니 상관없습니다만 디터 훈트는 본인 스스로 전문가를 자칭하고 있어 큰 문제입니다. 지난 몇시즌동안 이와 관련된 비판이 계속 제기되어 왔지만 시즌이 끝나고 나면 팀의 순위가 썩 나쁘지 않은 상태였기때문에 언제나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티안 그로스의 해임으로 인해 그동안 묵혀두었던 염증이 갑작스럽게 터지듯 VfB 수뇌진의 문제를 만천하에 알리고 말았습니다.
슈타우트, 훈트 그리고 루프 모두 백퍼센트 슈바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슈타우트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슈바벤 액센트가 강하게 섞여 있음을 알 수 있죠. 돈 모으는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슈바벤들이기에 이들은 10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클럽의 재정을 흑자로 돌리는데 성공함은 물론이고 그동안 클럽과 팬들의 숙원 사업이었던 축구 전용 구장의 확보에도 성공했습니다. (현재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죠.) 그리고 스포츠적인 측면에서는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이른바 '슈투트가르트의 길 Der Stuttgarter Weg'이라는, 유스팀을 통한 유망주 발굴을 통한 선수의 수급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냥 결과로만 보자면 이들의 매니지먼트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앞으로도 전도유망해야 옳겠습니다만 축구팀이라는 관점을 보자면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매우 신중한 성격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열려 있는 사고를 가진 회장 슈타우트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만 고집이 세고 강도높은 발언도 서슴치 않는 훈트는 현재 VfB 팬들에게 있어 클럽의 미래를 좀먹는 암적인 존재로 낙인 찍히고 말았습니다. 대단한 희망을 가졌으나 실망감만 주었던 지오바니 트라파토니 감독의 후임으로 감독직을 맡은 아어민 페를 가르켜 '임시처방'이라는 딱지를 붙였다가 큰코를 다쳤던 인물도 훈트이고, 수뇌진의 일원으로 스포츠적인 부분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하던 호어스트 헬트가 gg 치고 샬케로 가버리는데 공헌을 한 것도 훈트이며(이사회에서 헬트의 선수 수급을 비롯한 여러 제안을 반대한 사람이 바로 훈트) 이번 크리스티안 그로스의 해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훈트입니다.
VfB가 스포츠적인 면 그러니까 축구 클럽으로서 가진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 인적, 재정적 자원이 달리는 스카우팅팀
- 장기적인 안목으로 팀을 운영해 나가는 능력이 부족한 매니저 (+감독)
선수의 영입과 관련되어서는 스카우팅팀뿐만이 아니라 감독과 매니저의 의견이 중요시 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이 둘을 묶어 (프로 야구식으로 말하자면) '프론트'의 문제라고 말해도 무방해 보이는군요. VfB에게 있어 지난 몇년동안 3mio 유로 이상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데리고 온 선수들중 성공적인 영입이라 부를 수 있는 선수가 정말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계약 만료로 이적료 없이 '프리'로 데려온, 비싼 연봉의 선수들 중에도 성공적인 영입은 거의 없습니다. Vfb 팬들에게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그 금지어 이름들을 한번 볼까요? 욘 달 토마손(7.5mio), 일디라이 바스튀르크(그는 팀내 최고의 연봉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마르코 슈트렐러(3mio), 예스퍼 그뢴키어(3mio), 하칸 야킨(2.5mio), 센트리온(2mio), 알렉산더 파르네루트(2mio), 라파엘 쉐퍼(2mio), 알리엑산드르 흘랩(2mio, 임대료가 이렇다는 얘기고 연봉이 어마어마했었죠.) 등이 그렇습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치프리안 마리카(7mio), 칼리드 불라르즈(5mio), 파벨 포그레브냑(5mio), 아르투어 보카(3mio) 등의 선수들은 이제 슬슬 '실패한 영입'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무방해 보이고, 즈다라프코 쿠즈마노비치(8mio), 티모 겝하르트(3.2mio) 역시 딱히 성공적인 영입이라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안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둘은 아직 젊은 선수들이니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말입니다.
예외라면 페르난도 메이라(7.5mio), 리카르도 오소리오(3.5mio) 정도만이 있겠군요. 게다가 메이라는 이적료도 꽤 받으면서(5mio) 팔 수 있었으니까요. 오소리오는 이적료에 비하면 좀 아쉬운 활약일 수도 있겠지만 파르벨 파르도(1mio) 덕분에 모든 것이 상쇄됩니다.
보다시피 선수 영입에 꽤나 많은 돈을 투자했습니다만 결과물은 매우 미미했습니다. 오히려 팀에서 성공한 선수들은 모두 클럽의 유스 출신들이었고 이들은 모두 상당한 이적료를 클럽에 안겨주며 다른 팀으로 떠났습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짓입니다만, 만약 VfB가 분명한 노선과 목표를 가지고 팀을 꾸려나갈 능력과 선수를 보는 안목을 겸비한 감독과 매니저 그리고 좀 더 넓은 스카우팅 네트워크와 체계적인 스카우팅 시스템을 가졌더라면 아마 저렇게 수많은 돈을 성과없이 날려먹은 영입의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선수 영입은 언제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팀이나 영입의 실패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VfB의 최근 10년 동안의 선수 영입은 대외컵 진출과 유스 출신의 선수를 이적시키며 벌어들인 돈을 허공에 날려 버렸다는 표현이 어울릴정도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는 아쉽게도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최근 몇 시즌의 영입만 보더라도 긴 시간동안 필요한 선수의 프로필을 만들어 시장을 탐색하고, 적당한 선수를 발견했을 때 이적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접촉을 시작해 영입해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갑작스러운 필요에 의해(예: 고메즈의 이적, 라니히의 부상), 갑작기 찾으려다 보니 선수의 몸값이 비싸니까 영입 시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몸값이 떨어지길 기다리다가 마감 직전이나 되어서 갑작스레 영입한 경우가 허다한(예: 흘랩, 포그레브냑, 쿠즈마노비치, 카모라네시, 오델) 실정입니다.
감독의 잦은 교체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VfB가 전통적으로 감독의 생명이 짧은 클럽이고 (분데스리가가 시작된 63년부터 무려 38명의 감독이 거쳐갔습니다) 3년 이상 버틴 감독이 겨우 두 명(크리스토퍼 다움, 펠릭스 마가트) 밖에 없긴 합니다만 최근 매 시즌 새로운 감독으로 교체되는 현상은 결코 팀의 발전을 위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선수들의 큰 변화는 없어 보이는데 성적이 나빠져 감독이 자꾸 바뀌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는 성적과 무관하게 장기적인 계획 하에 팀을 끌고 나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또 팀의 주축들을 붙잡아 두지고 못하고 결국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게 되는 것 역시 또다른 이유입니다. 바벨의 경질은 마리오 고메즈를 제대로 대체시키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로스의 경질은 케디라와 레만을 제대로 대체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팀의 조직이 무너지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친 것이죠. 게다가 컨셉 없이 질질 시간만 끄는 영입 작전으로 시즌이 시작되어서야 겨우 팀이 완성되니 팀웍을 맞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또다른 이유가 됩니다. 이 '제대로 팀웍이 완성된 팀을 가지지 못한 채' 시즌을 시작했던 것이 이번 시즌이나 지난 시즌의 초반 부진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전 매니저인 호어스트 헬트는 이런 문제를 몰랐을까요? 펠릭스 마가트 시절부터 단장일을 함께 해왔던 요헨 슈나이더가 이런 문제를 몰랐을까요? 당연히 이들은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개선이 절실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헬트는 수 년전 스카우팅 부서를 대폭 개선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계획도 마련했었습니다만 언제부터인가 이는 스리슬쩍 없었던 일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에 볼 수 있었다시피 VfB의 스카우팅팀은 여전히 인원이 부족하고 네트워크도 유럽에 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마저도 프랑스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게다가 스카이팅팀에서 내놓은 의견이나 제안이 '비전문가'인 수뇌진에 의해 거부되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호어스트 헬트가 샬케의 마가트에게 갈 때, 그에게 팀을 옮기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내가 인정받지 못해서'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클럽 사장단의 일원이며 연봉도 두둑한데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팬들의 비난이 거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헬트가 단장으로서 팀의 스포츠적인 부분을 개선시키고자 했던 노력이 이사회에서 훈트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것이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클럽을 재정적으로 안전하게 운영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만, 선수의 영입에 있어 어느 정도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헬트가 준비했던 영입 계획은 비싸다는 이유로 훈트에 의해 반대되었고, 헬트는 좀 더 저렴한 선수를 찾아야만 했고 결국에는 급히 시장을 뒤져 깜짝 영입을 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죠. 지난 시즌이 끝났을 때 크리스티안 그로스는 공식적으로 '두 명의 빠른 윙어 스타일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필요로 함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에 대한 결과물은 여러분들도 모두 아시는 것이죠. 보비치는 선수들의 몸값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그로스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입을 하고 맙니다. 여기에도 훈트의 결정이 뒤에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보비치의 이름이 나왔으니 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군요. 헬트가 갑작스럽게 샬케로 가게 되어 그의 후임을 물색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매니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클럽에 대한 충성도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이해하지 못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후임이 바로 프레디 보비치가 되었을 때 팬들은 사실 꽤나 실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선이 결국 매니저로서 요구되는 역량을 갖춘 인물보다는 이사회의 말을 잘 듣는 꼭두각시를 우선적으로 뽑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슈타우트와 훈트는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단장을 필요했고, 때문에 매니저로서의 경력은 일천하지만 자신들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줄 프레디 보비치를 단장으로 데려 옵니다.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철학이 분명하고, 이를 표현하는데도 직선적인 크리스티안 그로스는 그다지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기에 새로운 단장을 선임하는데 있어 그로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보비치와 그로스는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물론 보비치의 능력에 대해서 벌써 어떤 판단을 내리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행동과 발언 등에서 미루어 볼 때 클럽내 그의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큰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번 시즌 팀의 성적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에는 그로스의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운이 많이 나쁘기도 했지만(월드컵 후유증, 주축 선수들의 부상, 주축 선수들의 이적을 전혀 채우지 못한 영입, 심판의 오심) 전술적인 측면에서 너무 상대편에게 미리 읽힐 수 있는 뻔한 작전을 고집했고, 수비가 안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적인 선수를 기용하는 등 본인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로 여러 차례의 잘못된 판단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난 겨울 그로스 스스로가 계약 연장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돌변하면서 선수들이 감독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순위는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로스나 보비치나 비교적 침착한 모습을 유지해 대부분의 팬들은 곧 좋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역 언론을 비롯해 클럽의 두 보스는 현재를 위기 상황이라 부르면서 오히려 팀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로스가 더이상 팀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담담하게 선수들을 훈련시키던 그로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언제까지 재정적으로 손이 묶인채 팀을 이끌어 나가야 하느냐'며 자신이 요구했던 영입을 반대한 수뇌진을 향해 비판적인 발언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훈트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죠. 그는 '비싼 선수들을 영입해 안겨줬더니 엉망인 성적을 내는 것이 도대체 누구 책임이냐'며 그로스를 직접적으로 비난합니다. 그리고 훈트의 이런 발언이 보도된 다음날 크리스티안 그로스는 VfB의 감독에서 해임됩니다.
그로스가 해임되자 수뇌진은 그의 후임으로 지금까지 코치로 일하던 옌스 켈러 Jens Keller 를 임시 감독으로 임명합니다. 옌스 켈러는 VfB의 유스 출신으로 VfB에서 프로 생활을 했음은 물론이고 유스팀의 감독으로도 일한 바 있습니다. 그는 감독으로 임명되자마자 '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로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고 발언하면서 전임자를 대놓고 디스합니다. 이에 전 VfB 감독인 아어민 페는 켈러의 이런 발언이 옳지 못하다고 발언했으며, 귄터 넷처 역시 칼럼을 통해 이를 비난했습니다. 아무리 그로스의 해임 결정이 갑작스러웠다고는 하지만 왜 하필이면 감독으로의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한 켈러를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감독 자리에 앉혔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보비치가 단장으로 임명된 것과 비슷합니다. 훈트는 자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인물을 감독으로 두고 싶었던 것이죠.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축구라는 비지니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인물들이 감독을 선임하고 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우선시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말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스폰서 유치가 가능한 튼튼한 지역 경제, 깊은 전통과 우수한 시스템을 가진 유스팀, 결코 작지 않으며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팬층 등 지금보다 더 좋은 클럽으로 발전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가졌음에도 가장 중요한 축구에 대해 모르는 인물들에 의해 클럽이 운영되면서 그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 모습이 저는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많은 VfB 팬들은 벌써 다음 총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클럽 수뇌진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조용히 칼을 갈면서 말입니다. 저 역시 그분들과 같은 마음입니다.
덧붙여..
지금 훈트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감독 후보가 누구라는지 아십니까?
크리스토퍼 다움이랍니다. 크리스토퍼 다움!!!!!
지금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가요? 이건 같이 망하자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다움은 현재 마가트가 샬케에서 가지고 있는 시스템을 원하고 있답니다. 즉, 감독 겸 단장으로 일하는 것을 말이죠. 프레디 보비치는 자칫하면 부메랑 맞게 생겼네요. 하긴 그게 꼭두각시의 운명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해임 소식을 듣게 되자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분노와 실망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소식을 들은 롯데팬들의 마음이 이와 비슷할까요? 물론 그 충격의 크기는 이런 소식이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중간에 나왔어야 제가 받은 충격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만. 나름대로 오랫동안 VfB의 팬질을 하면서 팀수뇌부에 이렇게 큰 실망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렇게 발전의 가능성이 풍부한 팀을 축구에 대해서는 x도 모르는 인간들이 말아먹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당수의 VfB 팬들이 이번 일로 클럽 멤버쉽을 버리겠다는 말을 하는 것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VfB의 팬들이 아닌 분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이에 대해 좀 긴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야기는 거의 10년전부터 시작됩니다.
VfB 슈투트가르트를 오랫동안 이끌었던 인물은 전 독일축구협회 회장인 게하르트 마이어-포어펠더 Gerhard Mayer-Vorfelder 입니다. (흔히 MV로 줄여서 부릅니다.) 그는 1968년부터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축구협회의 이사로 일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유력한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76년부터 78년까지는 주정부의 재무부 장관이었고 80년부터 91년까지는 스포츠,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했습니다. 그가 VfB의 회장이 된 것은 75년인데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42살밖에 안되었습니다. VfB의 회장으로 초창기에는 2부리그 강등의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했지만 MV 회장 재임기간동안 VfB는 두번의 마이스터와 한번의 DFB 포칼 우승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꽤나 독선적인 스타일의 인물이라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와 관련한 비리 스캔들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테니스의 여제 슈테피 그라프의 부친이 저지른 세금포탈과 관련된 것이죠.) 그가 VfB와 이룬 성과만큼은 어느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VfB 회장으로서의 말년인 90년대말 연이은 감독 선임 실패(DFB 포칼 우승 등의 준수한 성적을 거둔 요아힘 뢰브를 자기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쫓아내고 팬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천지 원수인 칼스루에 출신의 비니 쉐퍼를 감독으로 데려 왔습니다만 실패. 이후 당시 이름을 얻기 시작한 랄프 랑닉을 데려오지만 역시 실패) 및 스카우팅 실패(에이전트의 농간으로 발라코프와 터무니 없는 고액의 계약을 맺었던 사건이나 거액의 이적료를 내고 데려온 유고 출신 선수들이 유고 2부 리그의 무명 선수들이었던 사건)로 그만 VfB는 스포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MV는 회장직을 그만두어야 했고 (그가 이미 DFB쪽의 일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회장 사퇴는 본인 스스로에게 큰 타격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팀은 2부리그 강등위기라는 어려운 난국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었죠.
MV의 후임으로 VfB의 회장을 맡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 은행 출신의 만프레드 하스 Manfred Haas 는 클럽의 재정적 재건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동안 MV 아래에서 방만하게 운영되던 클럽의 조직을 일신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절대적으로 줄이며, 수입의 증대를 위해 다양한 스폰서를 유치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죠. 그렇기에 당시 팀을 가까스로 강등에서 구해낸 감독인 펠렉스 마가트는 어쩔 수 없이 클럽의 유스팀 출신의 젊은 선수들을 기용할 수 밖에 없었고, 2002년에는 재계쪽의 인맥이 풍부한 독일 고용주 연합(우리나라로 치자면 전경련 같은 조직)의 회장인 디터 훈트 Dieter Hundt 가 클럽 이사회의 의장으로 취임합니다. MV는 크게 비교될정도로 조용한 성격의 하스가 추진한 이런 노력들은 팀이 절은 돌풍 Junge Wilden 을 일으키며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고 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멋진 승리를 거두면서 스포츠적인 면이나 재정적인 면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둡니다. 2003년 독일 IBM의 사장 출신인 에르빈 슈타우트 Erwin Staudt 가 하스의 뒤를 이어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VfB의 조직은 지금까지 똑같은 수뇌진을 구성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MV가 회장이던 당시에는 선수 영입과 계약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이 MV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슈타우트, 훈트 그리고 20년째 클럽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울리히 루프 Ulrich Ruf의 이사회에 의해 결정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사회의 일원으로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판매/마케팅 사장단의 일원, EnBW(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대규모의 전력회사)의 대변인, 포르쉐의 마케팅 총책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은행의 이사 등 지역 경제계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상태입니다. 이사진의 이름만 놓고 본다면 어느 축구 클럽의 이사회라기보다는 무슨 대기업의 이사회를 연상케 만듭니다. 그리고 여기에 바로 VfB의 현재 문제가 있습니다.
눈썰미가 있는 분이라면 이미 문제를 파악하셨을 것 같습니다. 네, 축구 클럽인데 이사진에 축구계 출신의 인사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바로 문제입니다. 회장인 슈타우트나 이사회 의장인 훈트나 모두 재계 출신이지 축구계 출신이 아닙니다. 즉, 이들에게는 축구와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업인 출신들답게 이들은 VfB 슈투트가르트라는 '회사'를 매우 건실한 재정을 가지도록 훌륭하게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나 VfB는 어디까지나 '축구'클럽이지 일반 기업이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VfB가 축구 클럽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이나 축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아쉽게도 결여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러한 약점을 보완시켜줄 전문가가 그들 곁에 없습니다. 어차피 팬의 입장에 가까운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슈타우트는 본인 스스로가 축구 자체에 대한 코멘트는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니 상관없습니다만 디터 훈트는 본인 스스로 전문가를 자칭하고 있어 큰 문제입니다. 지난 몇시즌동안 이와 관련된 비판이 계속 제기되어 왔지만 시즌이 끝나고 나면 팀의 순위가 썩 나쁘지 않은 상태였기때문에 언제나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티안 그로스의 해임으로 인해 그동안 묵혀두었던 염증이 갑작스럽게 터지듯 VfB 수뇌진의 문제를 만천하에 알리고 말았습니다.
슈타우트, 훈트 그리고 루프 모두 백퍼센트 슈바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슈타우트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슈바벤 액센트가 강하게 섞여 있음을 알 수 있죠. 돈 모으는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슈바벤들이기에 이들은 10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클럽의 재정을 흑자로 돌리는데 성공함은 물론이고 그동안 클럽과 팬들의 숙원 사업이었던 축구 전용 구장의 확보에도 성공했습니다. (현재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죠.) 그리고 스포츠적인 측면에서는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이른바 '슈투트가르트의 길 Der Stuttgarter Weg'이라는, 유스팀을 통한 유망주 발굴을 통한 선수의 수급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냥 결과로만 보자면 이들의 매니지먼트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앞으로도 전도유망해야 옳겠습니다만 축구팀이라는 관점을 보자면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매우 신중한 성격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열려 있는 사고를 가진 회장 슈타우트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만 고집이 세고 강도높은 발언도 서슴치 않는 훈트는 현재 VfB 팬들에게 있어 클럽의 미래를 좀먹는 암적인 존재로 낙인 찍히고 말았습니다. 대단한 희망을 가졌으나 실망감만 주었던 지오바니 트라파토니 감독의 후임으로 감독직을 맡은 아어민 페를 가르켜 '임시처방'이라는 딱지를 붙였다가 큰코를 다쳤던 인물도 훈트이고, 수뇌진의 일원으로 스포츠적인 부분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하던 호어스트 헬트가 gg 치고 샬케로 가버리는데 공헌을 한 것도 훈트이며(이사회에서 헬트의 선수 수급을 비롯한 여러 제안을 반대한 사람이 바로 훈트) 이번 크리스티안 그로스의 해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훈트입니다.
VfB가 스포츠적인 면 그러니까 축구 클럽으로서 가진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 인적, 재정적 자원이 달리는 스카우팅팀
- 장기적인 안목으로 팀을 운영해 나가는 능력이 부족한 매니저 (+감독)
선수의 영입과 관련되어서는 스카우팅팀뿐만이 아니라 감독과 매니저의 의견이 중요시 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이 둘을 묶어 (프로 야구식으로 말하자면) '프론트'의 문제라고 말해도 무방해 보이는군요. VfB에게 있어 지난 몇년동안 3mio 유로 이상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데리고 온 선수들중 성공적인 영입이라 부를 수 있는 선수가 정말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계약 만료로 이적료 없이 '프리'로 데려온, 비싼 연봉의 선수들 중에도 성공적인 영입은 거의 없습니다. Vfb 팬들에게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그 금지어 이름들을 한번 볼까요? 욘 달 토마손(7.5mio), 일디라이 바스튀르크(그는 팀내 최고의 연봉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마르코 슈트렐러(3mio), 예스퍼 그뢴키어(3mio), 하칸 야킨(2.5mio), 센트리온(2mio), 알렉산더 파르네루트(2mio), 라파엘 쉐퍼(2mio), 알리엑산드르 흘랩(2mio, 임대료가 이렇다는 얘기고 연봉이 어마어마했었죠.) 등이 그렇습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치프리안 마리카(7mio), 칼리드 불라르즈(5mio), 파벨 포그레브냑(5mio), 아르투어 보카(3mio) 등의 선수들은 이제 슬슬 '실패한 영입'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무방해 보이고, 즈다라프코 쿠즈마노비치(8mio), 티모 겝하르트(3.2mio) 역시 딱히 성공적인 영입이라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안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둘은 아직 젊은 선수들이니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말입니다.
예외라면 페르난도 메이라(7.5mio), 리카르도 오소리오(3.5mio) 정도만이 있겠군요. 게다가 메이라는 이적료도 꽤 받으면서(5mio) 팔 수 있었으니까요. 오소리오는 이적료에 비하면 좀 아쉬운 활약일 수도 있겠지만 파르벨 파르도(1mio) 덕분에 모든 것이 상쇄됩니다.
보다시피 선수 영입에 꽤나 많은 돈을 투자했습니다만 결과물은 매우 미미했습니다. 오히려 팀에서 성공한 선수들은 모두 클럽의 유스 출신들이었고 이들은 모두 상당한 이적료를 클럽에 안겨주며 다른 팀으로 떠났습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짓입니다만, 만약 VfB가 분명한 노선과 목표를 가지고 팀을 꾸려나갈 능력과 선수를 보는 안목을 겸비한 감독과 매니저 그리고 좀 더 넓은 스카우팅 네트워크와 체계적인 스카우팅 시스템을 가졌더라면 아마 저렇게 수많은 돈을 성과없이 날려먹은 영입의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선수 영입은 언제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팀이나 영입의 실패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VfB의 최근 10년 동안의 선수 영입은 대외컵 진출과 유스 출신의 선수를 이적시키며 벌어들인 돈을 허공에 날려 버렸다는 표현이 어울릴정도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는 아쉽게도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최근 몇 시즌의 영입만 보더라도 긴 시간동안 필요한 선수의 프로필을 만들어 시장을 탐색하고, 적당한 선수를 발견했을 때 이적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접촉을 시작해 영입해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갑작스러운 필요에 의해(예: 고메즈의 이적, 라니히의 부상), 갑작기 찾으려다 보니 선수의 몸값이 비싸니까 영입 시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몸값이 떨어지길 기다리다가 마감 직전이나 되어서 갑작스레 영입한 경우가 허다한(예: 흘랩, 포그레브냑, 쿠즈마노비치, 카모라네시, 오델) 실정입니다.
감독의 잦은 교체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VfB가 전통적으로 감독의 생명이 짧은 클럽이고 (분데스리가가 시작된 63년부터 무려 38명의 감독이 거쳐갔습니다) 3년 이상 버틴 감독이 겨우 두 명(크리스토퍼 다움, 펠릭스 마가트) 밖에 없긴 합니다만 최근 매 시즌 새로운 감독으로 교체되는 현상은 결코 팀의 발전을 위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선수들의 큰 변화는 없어 보이는데 성적이 나빠져 감독이 자꾸 바뀌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는 성적과 무관하게 장기적인 계획 하에 팀을 끌고 나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또 팀의 주축들을 붙잡아 두지고 못하고 결국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게 되는 것 역시 또다른 이유입니다. 바벨의 경질은 마리오 고메즈를 제대로 대체시키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로스의 경질은 케디라와 레만을 제대로 대체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팀의 조직이 무너지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친 것이죠. 게다가 컨셉 없이 질질 시간만 끄는 영입 작전으로 시즌이 시작되어서야 겨우 팀이 완성되니 팀웍을 맞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또다른 이유가 됩니다. 이 '제대로 팀웍이 완성된 팀을 가지지 못한 채' 시즌을 시작했던 것이 이번 시즌이나 지난 시즌의 초반 부진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전 매니저인 호어스트 헬트는 이런 문제를 몰랐을까요? 펠릭스 마가트 시절부터 단장일을 함께 해왔던 요헨 슈나이더가 이런 문제를 몰랐을까요? 당연히 이들은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개선이 절실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헬트는 수 년전 스카우팅 부서를 대폭 개선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계획도 마련했었습니다만 언제부터인가 이는 스리슬쩍 없었던 일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에 볼 수 있었다시피 VfB의 스카우팅팀은 여전히 인원이 부족하고 네트워크도 유럽에 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마저도 프랑스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게다가 스카이팅팀에서 내놓은 의견이나 제안이 '비전문가'인 수뇌진에 의해 거부되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호어스트 헬트가 샬케의 마가트에게 갈 때, 그에게 팀을 옮기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내가 인정받지 못해서'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클럽 사장단의 일원이며 연봉도 두둑한데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팬들의 비난이 거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헬트가 단장으로서 팀의 스포츠적인 부분을 개선시키고자 했던 노력이 이사회에서 훈트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것이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클럽을 재정적으로 안전하게 운영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만, 선수의 영입에 있어 어느 정도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헬트가 준비했던 영입 계획은 비싸다는 이유로 훈트에 의해 반대되었고, 헬트는 좀 더 저렴한 선수를 찾아야만 했고 결국에는 급히 시장을 뒤져 깜짝 영입을 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죠. 지난 시즌이 끝났을 때 크리스티안 그로스는 공식적으로 '두 명의 빠른 윙어 스타일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필요로 함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에 대한 결과물은 여러분들도 모두 아시는 것이죠. 보비치는 선수들의 몸값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그로스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입을 하고 맙니다. 여기에도 훈트의 결정이 뒤에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보비치의 이름이 나왔으니 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군요. 헬트가 갑작스럽게 샬케로 가게 되어 그의 후임을 물색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매니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클럽에 대한 충성도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이해하지 못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후임이 바로 프레디 보비치가 되었을 때 팬들은 사실 꽤나 실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선이 결국 매니저로서 요구되는 역량을 갖춘 인물보다는 이사회의 말을 잘 듣는 꼭두각시를 우선적으로 뽑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슈타우트와 훈트는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단장을 필요했고, 때문에 매니저로서의 경력은 일천하지만 자신들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줄 프레디 보비치를 단장으로 데려 옵니다.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철학이 분명하고, 이를 표현하는데도 직선적인 크리스티안 그로스는 그다지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기에 새로운 단장을 선임하는데 있어 그로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보비치와 그로스는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물론 보비치의 능력에 대해서 벌써 어떤 판단을 내리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행동과 발언 등에서 미루어 볼 때 클럽내 그의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큰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번 시즌 팀의 성적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에는 그로스의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운이 많이 나쁘기도 했지만(월드컵 후유증, 주축 선수들의 부상, 주축 선수들의 이적을 전혀 채우지 못한 영입, 심판의 오심) 전술적인 측면에서 너무 상대편에게 미리 읽힐 수 있는 뻔한 작전을 고집했고, 수비가 안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적인 선수를 기용하는 등 본인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로 여러 차례의 잘못된 판단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난 겨울 그로스 스스로가 계약 연장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돌변하면서 선수들이 감독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순위는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로스나 보비치나 비교적 침착한 모습을 유지해 대부분의 팬들은 곧 좋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역 언론을 비롯해 클럽의 두 보스는 현재를 위기 상황이라 부르면서 오히려 팀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로스가 더이상 팀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담담하게 선수들을 훈련시키던 그로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언제까지 재정적으로 손이 묶인채 팀을 이끌어 나가야 하느냐'며 자신이 요구했던 영입을 반대한 수뇌진을 향해 비판적인 발언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훈트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죠. 그는 '비싼 선수들을 영입해 안겨줬더니 엉망인 성적을 내는 것이 도대체 누구 책임이냐'며 그로스를 직접적으로 비난합니다. 그리고 훈트의 이런 발언이 보도된 다음날 크리스티안 그로스는 VfB의 감독에서 해임됩니다.
그로스가 해임되자 수뇌진은 그의 후임으로 지금까지 코치로 일하던 옌스 켈러 Jens Keller 를 임시 감독으로 임명합니다. 옌스 켈러는 VfB의 유스 출신으로 VfB에서 프로 생활을 했음은 물론이고 유스팀의 감독으로도 일한 바 있습니다. 그는 감독으로 임명되자마자 '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로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고 발언하면서 전임자를 대놓고 디스합니다. 이에 전 VfB 감독인 아어민 페는 켈러의 이런 발언이 옳지 못하다고 발언했으며, 귄터 넷처 역시 칼럼을 통해 이를 비난했습니다. 아무리 그로스의 해임 결정이 갑작스러웠다고는 하지만 왜 하필이면 감독으로의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한 켈러를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감독 자리에 앉혔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보비치가 단장으로 임명된 것과 비슷합니다. 훈트는 자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인물을 감독으로 두고 싶었던 것이죠.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축구라는 비지니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인물들이 감독을 선임하고 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우선시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말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스폰서 유치가 가능한 튼튼한 지역 경제, 깊은 전통과 우수한 시스템을 가진 유스팀, 결코 작지 않으며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팬층 등 지금보다 더 좋은 클럽으로 발전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가졌음에도 가장 중요한 축구에 대해 모르는 인물들에 의해 클럽이 운영되면서 그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 모습이 저는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많은 VfB 팬들은 벌써 다음 총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클럽 수뇌진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조용히 칼을 갈면서 말입니다. 저 역시 그분들과 같은 마음입니다.
덧붙여..
지금 훈트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감독 후보가 누구라는지 아십니까?
크리스토퍼 다움이랍니다. 크리스토퍼 다움!!!!!
지금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가요? 이건 같이 망하자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다움은 현재 마가트가 샬케에서 가지고 있는 시스템을 원하고 있답니다. 즉, 감독 겸 단장으로 일하는 것을 말이죠. 프레디 보비치는 자칫하면 부메랑 맞게 생겼네요. 하긴 그게 꼭두각시의 운명이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