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운동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제 와이프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둔한 편입니다.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곤 조깅밖에는 없을 정도니까요.
와이프가 학교 다닐 때 수영, 테니스, 볼링 등등을 배웠다는데
지금 할 줄 아는 운동은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심각할 정도입니다.

어쨌거나 운동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와이프는 이제서야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지하실에 있는 여자애들 자전거(어른이 타기에는 좀 작죠)를 꺼내서 동네 학교 운동장 -이라고 해봐야 작은 공터 수준이죠. 독일 학교는 운동장이 거의 없으니까요-에서 한두번 연습을 했죠.

얼마 전에 아이에게도 새 자전거를 사줬습니다.
아이들 자전거로는 최고의 인기와 품질을 자랑하는 Puky! 비록 중고이긴 했지만 거의 새것 같은 자전거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만 세살이 다 되어가는, 제 부모를 너무도 닮아서 그리 뛰어나지 못한 운동신경을 자랑하는 저희 아이에게 보조바퀴가 달린 두발자전거을 사준 것은 아이가 가지고 싶어해서였다기 보다는 부모의 욕심이 더 컸다고 할 수 있죠. 저희 아이는 아직 세발자전거도 완전히 마스터한 것이 아니거든요. 길이 조금이라도 오르막이다 싶으면 여지없이 포기해버리는 성격이라 -아빠 이제 밀어줘- 사실 꼭 필요해서보다는 Puki라는 상표에 혹했던 것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이녀석이 새 자전거를 잘 타더군요. 가지고 있던 세발자전거가 좀 작아서 페달 밟기가 어려웠는데 새 자전거는 타기가 편한지 자전거를 타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갈 정도도 되었으니까요. 물론 오르막이던 내리막이던 언덕길에서는 여지 없이 막막하지만요. 그래도 그냥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대견합니다.

일요일 오후에 온 가족이 수영장에 갔다 와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이 두 모자를 끌고 예의 학교운동장으로 자전거 연습을 시키러 나갔습니다.
오늘은 아이에게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아이의 자전거의 뒷바퀴 브레이크는 소위 '발브레이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손이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기에는 작고 힘도 약해서 페달을 뒤로 밟아 작동하는 브레이크가 훨씬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니까요. (그래도 앞바퀴의 브레이크는 손브레이크)
그냥 보기에는 어렵지가 않습니다. 페달을 밟는 걸 거꾸로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많은 아빠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오늘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도대체 왜 잘 가는 자전거를 멈추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그냥 앞으로만 가는 것이 신나는 마당에 잘 이해도 가지 않는 방법으로 발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너무도 어렵고 고차원적인 문제였던 겁니다.
처음에는 '네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천천히 가기 위해서' 등등의 설명을 동원했으나 아이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에 저는 '제대로 못하면 앞으로 자전거 타기는 금지'라는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버렸던 것이죠. 그것도 짜증이 섞인 화난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입니다.

혼자서 자전거 연습을 하던 와이프가 제게 얼굴을 찡그리며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아이가 다른 쪽으로 가있을 때 제게 와서는 그렇게 감정적으로 아이에게 말해서 말을 듣겠냐면서 좀 더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천천히 얘기하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칭찬을 해줘야지 그렇게 야단만 쳐서는 안된다면서요. 하지만 저는 이건 안전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인만큼 엄하게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대답을 했죠.

그리고는 마음이 좀 상해서 한쪽구석에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와이프는 여전히 불안불안했고 아이는 아무 생각없이 신나게 넓은 공간에서 자전거 타기를 즐기고 있더군요. 물론 브레이크잡기는 전혀 못하고 있었구요. 그런데 와이프와 아이가 잠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아이가 자전거에서 내려 제게 환한 얼굴을 하며 달려왔습니다.

'아빠 말을 안들어서 죄송해요. 아직은 잘 못하겠어요'
분명히 와이프가 무슨 말을 하라고 얘기해주었겠죠.
하지만 '아빠 그래도 잘 할께요.'라는 말에 -아이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마음이 짠해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존경해마지않는 다른 형들처럼 멋지게 자전거 타기를 즐기고 있는데 -저희 아이의 현재 소망은 '형아'가 되어 학교에 가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쓸데없는 말만 한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되더군요. 애당초 아이가 척척 잘해내리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서요.

서쪽 하늘에서 길게 늘어진 늦은 햇살속에 환한 웃음을 얼굴 가득 채운채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아이와 와이프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오늘도 아이를 가르치려다 또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정말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요.

* 이후 몇번의 반복되는 시도가 있었으나 아이는 아직 자전거를 잘 못탑니다.
자기가 잘 못탄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없는 것인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는 않는군요.
시간을 좀 더 두고 천천히 시도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