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독일의 시사주간지인 Spiegel지에 나온 아이들의 텔레비젼 시청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악영향의 정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텔레비젼이나 컴퓨터(특히 게임류)가 아이들의 교육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는 것이 결론이더군요.
부모들을 위한 조언이라며 실려 있는 박스기사에 3살이하의 아이들에게는 텔레비전은 절대 금지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저희 집이 텔레비젼을 거의 꺼놓고 지내는 집이만 그래도 가끔은 아이가 좋아하는 아침프로 - 토마스와 친구들 등 - 들을 보여주기는 하거든요.
아이에게 처음으로 이런 영상물을 보여준 것은 아마 24개월 이후부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의 또래 아이들이 본다는 뿡뿡이, 뽀로로와 친구들 같은 것을 30분정도씩 보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아이는 토마스와 친구들에 열광하기 시작하더군요. 인터넷의 어둠의 경로를 통해 한국어로 더빙된 것들을 보여줬는데 좀 지나고 보니 이녀석이 매 에피소드의 내용은 물론 등장인물(기차?)들의 대사에 배경음악까지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그래서 혼자 놀면서 상황극 놀이를 - 혼자 대사를 주고 받으며 놉니다. 목소리도 가끔 바꿔요. - 하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죠. 대사야 그렇다 쳐도 배경음악까지 흥얼거리는 것을 보면 모든 부모가 하는 착각을 저도 잠시 하게 되더군요. :-)
토마스와 친구들 이후 아이가 버닝했던 것은 이녀석이 처음으로 본 장편인 '마다가스카르'였습니다. 불행히도 이건 영어판이라 대사를 못 외우더군요. --; 하지만 그림만으로도 상황을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는지 역시 혼자 상황극 놀이를 하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대사는 혼자 만들어 냄) 여기에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주제가를 부르며 몸을 흔들거리더군요. 음.
아이를 위한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오래 전 받아놓은 이웃집의 토토로 한국어 더빙판이 생각났습니다. 이녀석이 이상하게 디즈니 계열은 별로 안좋아해서 - 동물을 좋아해서 라이온킹을 보여줬더니 무섭다고 끄라고 하더군요. 등장인물끼리 싸우거나 갈등상황을 못 견뎌 하는 눈치였습니다. - 어디 한번 하고 토토로를 보여줬더니 그 이후는 토토로의 광팬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 약 4-5번 정도 반복 관람을 한 것 같더군요. 또 혼자 상황극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버닝중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날은 토토로를 보여준다니까 자기 우산을 가지고 와서 - '비가 올 것 같아' - 보는 내내 우산을 쓰고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가 끝나니까 '이제 비 안와' 하고 우산을 접었다네요.
집청소를 마친 일요일 오후, 느긋하게 소파에 녀석과 나란히 앉아 토토로를 봤습니다.
시작하면서 나오는 일본어 주제가를 대단히 그럴 듯 하게 따라부르더니 배경음악, 대사를 모두 외우고 있더군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먼저 말하거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데.. 꽤나 놀라웠습니다. 중간중간 대사가 없는 때에는 제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 고양이 버스는 토토로를 태우고 어디를 가는 거에요 같은 - 던지며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더군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초집중한 상태로 몰입해서 화면을 응시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슈피겔 지에 나온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과연 우리가 아이에게 이런 걸 보여줘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구요. 집에서만큼은 모국어를 가르치고 싶어서, 저희 부부와의 대화만으로는 단어의 양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한국어로 된 영상들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인데 아직 3살도 안된 아이에게(이제 한달 남았군요) 벌써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최근 아이에게 책을 너무 적게 읽어준 것 같기도 하구요. 아빠로서 반성을 팍팍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은 무리하게 조르거나 징징거리는 일도 없고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도 하는 것 같아 중독이라는 말을 꺼내기에는 미안한 형편이지만 그래도 단순히 이런 영화를 보여주는 것 말고도 다른 놀이들을 생각해 내야 할 것 같습니다.
* 최근에는 TV시청이나 영화 관람의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