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꽤나 덥다가도 저녁 7시가 지나면 서늘할 바람이 불면서 쾌적해지는 요즘입니다.
엊그제에도 샌드위치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외출한 아이의 엄마를 마중나갔습니다.
여전히 자전거에 버닝중이시라 당연히 자전거를 태워 나갔지요. (사실은 자전거를 안타면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음. ㅠ.ㅠ) 브레이크님과는 아직 친해질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페달질만큼은 이제 제법 능숙하게 하면서 신나게 타더군요. 내리막길을 빼고는 크게 주의해야 할 부분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동네 중심을 지나 자전거 길이 있는 쪽으로 갔을 때 아이의 엄마가 마침 저쪽에서 오더군요.
엄마를 보니 더욱 흥분한 이녀석. 가벼운 내리막길에서 페달을 마구 밟아대더군요. 옆/뒤에서 조심하라고 소리쳤지만 결과는 화단과 정면충돌. 조금 의기소침해진 것 같아 이젠 천천히 가겠지 생각했더니 다시 한번 페달을 힘껏 밟아주시면서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달리는 자전거의 뒷부분을 잡아 강제로 세웠더니 무슨 이유인지 이녀석의 자존심이 상당히 상했던 모양입니다.

자전거에서 내려 헬멧을 벗으며 '자전거 안타고 갈꺼야.'
네가 자전거를 타고 나오자고 했으니까 끝까지 네가 알아서 해야지. 타고 가던 밀고 가던 네가 해야돼.
한참 고민을 하더니 헬멧을 자전거 핸들에 걸더군요. 그리고는 굉장히 어설픈 자세로 자전거를 밀기 시작.
이 길은 네가 늘 타고 다니는 길이니까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편하지 않겠니?
부모의 꼬심은 아이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페달에 보조바퀴에 발뒤꿈치가 부딪치는 일이 계속 생겼지만-그래서 꽤나 아팠겠지만- 이녀석의 표정은 한결같이 딱딱함을 유지하더군요.
이제 조금 가면 포기하고 자전거에 오르겠지.라고 생각했던 부모의 마음과는 달리 녀석의 고집은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던, 아니면 그냥 걸어도 10분이면 넉넉하게 집에 도착할 거리였건만....
아이는 자전거를 계속 밀었습니다. 밀다가 힘들면 앞에서 끌기도 하고.. 좀 밀다가 요령이 생기면 잘 가다가도 옆에 벽이나 화단에 부딪히면 다시 리셋. 그래도 아이는 도대체 자전거에 올라탈 기미가 안보였습니다.

그냥 포기한 저희 부부는 아이가 자전거를 밀고/끄는 모습을 옆에서 뒤에서 지켜보며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습니다. 아이가 언젠가는 자전거에 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한마디로 아이의 고집 vs. 부모의 인내심의 한판대결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날의 승부는 아이의 고집의 한판승이었습니다.
마지막 난관인 언덕길(기껏해야 30미터도 안되요)구간에서조차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밀고 갔습니다. 집앞까지 죽--.
소요시간은 딱 한시간이 걸렸네요.

자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그렇게 힘을 뺐으니 아이도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림책 두 권을 읽어주고 조금 있으니 한방에 잠에 빠지더군요. (다음 날 아침까지 깨지도 않고 잘 잤습니다) 쌔근쌔근 잠을 자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저희 부부의 고민은 커졌습니다.
'이 고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저는 아이에게 고집을 고스란히 물려준 아이의 엄마가 좋은 해답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집을 부리는 일이 없길 간절히 빌면서요.

짤방으로 이 고집쟁이가 만 한살 무렵의 사진입니다.
녀석이 뱃속에 있을 때 아이엄마가 수박을 굉장히 잘 먹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이곳 터키가게에서 길쭉하고 커다란 터키산 수박을 살 수 있는데, 임신기간동안 아이엄마는 하루에 커다란 수박(정말 큽니다)을 반통씩 드시더군요. 그래서인지 아이도 수박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녀석이 앉아 있는 의자가 (저 밑의 글에도 소개했던) 트립트랍입니다. ^^;;